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꽃이 피는 타이완 문학과 만화 🌼
타이완 작가 양솽즈(楊双子)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臺灣漫遊錄, 타이완 만유록)》가 영국의 ‘국제 부커상(International Booker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타이완 작품이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인데요. 수상작은 오는 5월 발표될 예정으로, 2024년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 전미도서상) 수상에 이어 다시 한 번 쾌거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양솽즈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가 국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 사진: 라이칭더 총통 페이스북
문학뿐만 아니라 만화 분야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타이완 만화가 난난르(南南日)는 《산속의 요리사(Mararum:山間料理人)》로 일본 외무성이 주최하는 제19회 국제만화대상에서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실 《산속의 요리사》는 이미 2025년 타이완 만화대상 ‘금만장(金漫獎)’에서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요. 이번 국제만화대상 심사위원(堀靖樹)은 이 작품을 “기술적인 완성도를 넘어, 만화 특유의 감각과 창작 센스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만화 애호가로 잘 알려진 오노다 키미(小野田紀美) 일본 경제안보담당대신도 이 작품에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45년을 배경으로, 일본 가정에서 일하는 타이완 원주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소녀는 식량배급이 실시된 상황에서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내는데요. 이 과정에서 자연과 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소중함을 조용히 전합니다.
만화 《산속의 요리사(Mararum:山間料理人)》 - 사진: 가이야오(蓋亞) 출판사
난난르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그 뿌리는 모두 내가 자라온 땅에서 비롯되었다”며, “소중한 기억은 일상의 가장자리에서 발견된다”고 말했습니다. K-콘텐츠가 한국만의 정서를 담아 세계로 확장된 것처럼, 타이완 만화 역시 자신만의 이야기와 감각으로 세계 독자들과 만나고 있죠.
그럼 오늘은 원주민 요리의 향기와 함께, 《산속의 요리사》 속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아메이족의 음식 문화 🌱
만화 속 소녀는 타이완 동부 화롄(花蓮) 원주민 아메이족(阿美族) 출신입니다. 바로 몇 주 전 소개해 드렸던 소설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蕉葉與樹的約定)》과도 같은 배경이죠. 소녀는 동생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인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일본 요리와 아메이족의 맛을 하나로 엮어냅니다.
▲관련 프로그램:
타이완 야구의 시작… ‘능고단’과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
아메이족 ‘야구의 마을’, 왜 ‘광복’이라고 불릴까?
아메이족의 요리 문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난난르 작가는 직접 화롄을 찾아 식재료 채집부터 요리까지 꼼꼼한 현장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또 아메이족 어머니를 둔 그는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황등심(黃藤心)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황등은 아메이족이 자주 먹는 식물로, 샐러드나 탕으로 만들거나 구워 먹기도 합니다. 쌉쌀한 맛이 특징있지만 건강에 좋고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어 아메이족 축제나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빠지지 않는 음식입니다. 작품 속에서도 타이완을 떠나게 될 일본인 가족을 위해 소녀가 준비하는 마지막 요리로 등장하죠.
그렇다면 이 ‘문화적 의미’란 무엇일까요? 황등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나무껍질까지 건축이나 가구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귀한 자원입니다. 과거에는 산속에서만 자라 채집이 쉽지 않았고, 게다가 가시가 많아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했는데요. 그래서 아메이족에게는 용기와 협력의 상징이자, 하늘에 대한 감사의 마음 담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죠. 이처럼 땅에서 얻은 만큼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는 타이완 원주민 문화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 만화의 부제도 비슷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Mararum’, 아메이족어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뜻합니다. 작가는 이 한 단어에 토지, 요리, 사람이라는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담아냈다고 합니다.
황등심 요리 - 사진: 농업부
소녀의 요리 솜씨 🍳
이야기 속 일본인 가정은 전쟁을 피해 화롄으로 내려옵니다. 타이베이에서 일하는 남편을 제외하고 아내는 두 아들, 시아버지와 함께 낯선 땅에서 살아가게 되는데요. 하지만 몸이 약한 아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소녀는 아메이족 식재료로 일본 요리를 만들어, 아내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경찰인 이 가족의 큰아들도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처음에는 소녀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심지어 소녀의 원주민 신분을 이유로 해고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장면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소녀가 ‘꽃야생’이라는 식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인데요. 향이 독특한 이 식물은 요리는 물론, 통증 완화에도 쓰이는 귀한 재료입니다. 설명을 들은 아들은 “약용 식물 같네요”라고 말하지만, 그 말에 소녀는 분노합니다. “당신들에게는 그저 약일 뿐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대대로 이어져 온 삶 그 자체입니다.” 이 한마디는 아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고, 그는 비로소 소녀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죠.
이어서 아메이족 출신 가수 우스아이(舞思愛)의 ‘고향(Niyaro’)’을 함께 들어보시죠. 고향의 축복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메시지를 담은 곡입니다.
일본인 경찰과 아메이족 소녀 👮♂👩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잡초’들이 아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그는 소녀와 한께 산속으로 들어가 직접 야채를 수집하는데, 입산 전 기도 의식부터 각 식물에 담긴 의미와 쓰임까지 하나하나 배워 나갑니다. 아메이족 문화에서 중요한 ‘황등’도 눈으로 보고, 그가 지닌 의미도 이해하게 되죠. 소녀는 “많은 야채들이 쓴맛이 있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드러나고, 그 맛이 바로 우리 고향의 맛”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설날이 되면 스키야키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데요. 소녀의 손맛으로 완성된 ‘고향의 맛’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아들은 군에 징집되어 화롄을 떠나게 되고, 이어 일본의 패전과 함께 그의 가족 역시 타이완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들이 떠난 후, 소녀는 아들이 남긴 수첩을 건네받습니다. 그 안에는 화롄의 풍경과 소녀에게 배운 야생 식물들이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었고 짧은 글 한 편도 남겨져 있는데요. “나는 그 꽃에 단지 기능을 부여했을 뿐이지만, 아메이족에게는 삶 그 자체이자 오랜 시간 이어져온 존재다. 앞으로 이 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알려준 ‘땅의 맛’일 것이다.” 아들의 수첩을 읽은 후, 소녀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와 함께 황등심 요리를 만들고 일본인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그 쌉쌀한 맛은 아마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거죠.
식민 정권 아래 문화적 주체성 지키려는 타이완 원주민 💪
일본인 경찰과 원주민 소녀, 곧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자리에 서 있지만, 난난르 작가는 ‘음식’이라는 전 세계가 공유하는 언어를 통해 문화를 넘어선 유대를 그려냈습니다. 시대는 어두웠어도 따뜻한 한 끼의 음식 고된 삶 속에서도 작은 위로와 행복이 될 수 있었겠죠.
비슷한 음식 주제와 일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1938 타이완 여행기》가 계급과 구조의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면, 《산속의 요리사》는 보다 따뜻하고, 어쩌면 동화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빛을 보여줍니다. 소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속에서도 문화적 주체성을 지키려는 원주민의 의지를 만나게 되고, 한편으로는 타이완에서 태어난 일본인의 복잡한 마음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만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타이완의 이야기가 세계로 전해지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죠.
▲관련 프로그램:
양솽즈 《타이완 만유록》, 타이완 최초로 美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자유로운 창작 환경과 다원적인 문화는 타이완 콘텐츠가 가진 큰 힘입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들이 세계 무대에서 빛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타이완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만화로 그 첫걸음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南南日,《Mararum:山間料理人》。
2. 戴雅真,「第19屆日本國際漫畫獎 南南日「山間料理人」獲銀獎」,中央社。
3. 林翠儀,「台灣漫畫家南南日《山間料理人》奪銀獎 小野田紀美很感興趣」,自由藝文。
4. 黃藤,農業知識入口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