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the main content block
::: | 사이트 맵| Podcasts|
|
Language

Formosa Dream Chasers - Programs - RTI Radio Taiwan International-logo

프로그램
| 전체보기
카테고리
진행자 프로그램 편성표
푸시 알림
繁體中文 简体中文 English Français Deutsch Indonesian 日本語 한국어 Русский Español ภาษาไทย Tiếng Việt Tagalog Bahasa Melayu Українська 사이트맵

마음이 머물 곳을 찾아서… 산마오(三毛)의 유랑문학 ⓶ ❤️‍🩹

작가 산마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은, 결국 마음을 내려놓는 것일 뿐이다" - 사진: 안우산
작가 산마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은, 결국 마음을 내려놓는 것일 뿐이다" - 사진: 안우산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은...?❣️

집에 있어도 내 집 같지 않은 느낌, 혹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운 순간, 혹시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1970~80년대 중화권을 풍미했던 타이완 작가 산마오(三毛)는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은, 결국 마음을 내려놓는 것일 뿐이다.(人生最大的事業不過是放心而已)” 마음이 쉴 곳이 없다면, 어디에 있든 우리는 떠도는 것처럼 느끼게 되죠. 겉으로 아무리 풍요로워 보여도, 마음 속에는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어쩌면 삶이란 마음이 머물 수 있는 한 곳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마오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과 소통이 될 때는 정말로 황홀할 만큼 기쁘다.(能和人溝通的時候我是狂喜的)” 이해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거죠.


유랑 작가 산마오 💃

늘어뜨린 긴 생머리, 또렷한 이목구비, 집시(Gypsy)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몸짓… 지구 곳곳을 떠돌며 ‘유랑’의 의미를 찾았던 산마오. 그는 한 편 한 편의 작품을 통해 평범해 보이는 삶을 재미있게 사는 법, 그리고 마음속 초조와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들려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산마오가 기존 체계에서 소외되었다가 문학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되찾던 어린 시절, 그리고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작가 산마오 - 사진: 타이완출판사


전생의 고향처럼 그리운 사하라 사막 🏜️

산마오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머물 수 있었던 곳은 남편 호세와 함께 살던 사라하 사막이었습니다. 당시 산마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관련 소개 글을 읽고,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그 꿈을 유일하게 현실로 믿어준 사람이, 바로 호세였죠. 

산마오와 호세는 주말마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사막을 탐험했습니다. 한 번은 화석을 찾다가 호세가 진흙에 빠져 목슴을 잃을 뻔했고, 산마오 역시 사막 상인에게 위협을 당하는 아찔한 순간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만 몸을 씻는 사하라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현지 주술사의 저주로 “지옥을 다녀왔다”고 회상할 만큼 기묘한 경험들도 이어졌습니다.

사하라 사막에 살던 산마오 - 사진: 타이완문학관

산마오는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막의 아름다움과 온유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두 사람은 아이의 마음으로 사막과 어울리며 자신을 이 낯선 땅에 온전히 맡겼습니다. 또 산마오의 유머스러운 필치를 통해 멀고도 이국적인 사하라는 독자에게 이웃처럼 다가오게 됩니다. 


대서양에 빛나는 다이아몬드 💎 카나리아 제도

3년간의 사막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뜻밖에도 ‘역사의 흐림’이었습니다. 1975년 스페인령 사하라에서 전쟁이 폭발하면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막을 떠나 북아프리카 외해에 떠 있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로 향했습니다. 7개 화산섬으로 이뤄진 이곳을 산마오는 ‘대서양에 빛나는 7개의 다이아몬드’로 묘사했는데요. 자연을 사랑하는 이 부부에게는 아주 적합한 삶의 터전이었죠. 

카나리아 제도에 살던 산마오 - 사진: 타이완문학관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잠수를 좋아하는 호세는 잠수원으로 일하고, 산마오는 마을 곳곳을 탐색하며 창작을 계속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따뜻함은 두 사람을 놀라게 하고, 그만큼 재미있는 해프닝도 끊이지 않았죠. 해 질 녘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세 시간이나 함께 걷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옥상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호세의 가족들이 예고 없이 찾아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했던 소동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허수아비 일기(稻草人手記)》와 《포근한 밤(溫柔的夜)》 등으로 묶여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

그러나 이 소소한 행복을 깨뜨리는 일은 예고없이 찾아왔습니다. 1979년 호세는 잠수 사고로 27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산마오는 차가운 호세의 곁에 기대어, 평소 산책하듯 손을 잡고 조용히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나는 곁에 없지만, 당신은 빛이 있는 방향으로 용감하게 걸어가야 해. 몇 년 뒤면 나도 그곳으로 갈게.”

산마오와 남편 호세 - 사진: 타이완문학관

어린 시절부터 우울을 겪어왔고 이미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산마오에게 이별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죠. 다행히 당시 타이완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그는 끝내 삶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언니에 따르면, 산마오는 직접 손으로 호세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고 주고받았던 편지를 버리며 그 사랑과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산마오가 작사한 노래 ‘꿈의 땅(夢田)’을 함께 들어보시죠.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하나의 ‘꿈의 땅’이 있지만, 그곳에 무엇을 심고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꽃을 피울 수도,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수많은 상실과 고통을 지나온 산마오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유랑 생활의 끝 🔚

마음의 터전을 잃은 산마오는 결국 14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타이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가족, 그리고 글쓰기였습니다. 《연합보》의 초청으로 그는 중남미 12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기도 하고,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학생과 독자들의 응원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죠.

중남미 12개국을 여행한 산마오 - 사진: 타이완문학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 🌟

뿐만 아니라, 작사와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지난주 들려드린 ‘올리브나무(橄欖樹)’와 방금 띄어드린 ‘꿈의 땅’을 포함해, 20여 곡의 노랫말을 남기며, 여전한 창작 에너지를 보여줬습니다. 또 1990년 개봉한 영화 <붉은사랑(滾滾紅塵)>의 시나리오를 맡으며,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40~50년대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린칭샤(林青霞), 친한(秦漢), 장만위(張曼玉)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애절한 사랑을 펼친 작품입니다. 

여주인공을 맡은 린칭샤에 따르면, 산마오는 직접 대본을 들고 몸과 춤으로 현장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또 영화 속 성냥개비를 아이브로우 펜슬로 쓰거나, 곱슬머리를 다리미로 펴는 장면 역시 산마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처럼 소년 같은 순수함과 자유로움, 바로 산마오라는 사람의 모습이었죠. 전체적으로는 산마오 특유의 낭만적 감성이 깊이 스며든 영화입니다.

뛰어난 연출과 문학적인 스토리 구성으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동시에, 그해 금마장(金馬獎)에서 무려 8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금마장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산마오는 베스트 시나리오상 후보에 올랐음에도,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상식 한 달 후, 투병 중인 그는 병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수상 실패가 결정적 계기였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죠. 어린 시절의 억압부터 남편의 죽음까지, 산마오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냈고, 그만큼 깊은 내면의 상처도 끝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결국 이 섬세한 영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한 겁니다.


유랑 작가 산마오(三毛) - 사진: 황관(皇冠)출판사


산마오 작품을 읽어야 할 이유 🔗

시인 야셴(瘂弦)은 산마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산마오를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학 외의 요소를 덜어내고, 그의 미학적 본질과 예술성, 그리고 내면의 생명력을 바라보는 것이다” 산마오 열풍은 이국적인 여행기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중심에는 결국 ‘마음’이 있었죠. 어쩌면 산마오의 마음 자체가 우리를 위로하는 가장 큰 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산마오를 기억하고, 산마오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三毛,《撒哈拉的故事》。
2. 三毛,《稻草人手記》。
3. 三毛,《哭泣的駱駝》。
4. 〈流浪的橄欖樹──三毛逝世30週年紀念特展〉,台灣文學館。
5. 郭璈、楊德涵,「為何我們仍要繼續讀三毛?——與皇冠文化總編輯許婷婷聊三毛」,Verse。
6. 〈撒哈拉沙漠的傳奇女作家─三毛(1943-1991)〉,臺灣女人。
7. 〈永不結束的流浪——三毛逝世30週年紀念〉,皇冠出版社。

為提供您更好的網站服務,本網站使用cookies。

若您繼續瀏覽網頁即表示您同意我們的cookies政策,進一步了解隱私權政策。 

我了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