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예계 소식’은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하지만 타이완 영화사의 가장 빛나는 별 하나를 배웅하는 마음으로 문을 엽니다. 지난 18일 밤, 타이완 영화의 황금기를 일궈낸 거장, 라이청잉(賴成英) 감독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고가 전해지자 타이완 문화계와 예술계는 깊은 슬픔에 잠겼는데요. 중화민국 외교부 장관 리위안(李遠)은 “라이청잉 감독은 타이완 영화 발전을 이끈 핵심 인물이자 수많은 거장들의 스승이었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정부 역시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국가 차원의 포상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하죠.
타이완 영화계에서 ‘라이상(賴桑)’이라는 애칭으로 통했던 그는, 단순한 촬영 감독이나 연출가를 넘어 타이완 영화 기술의 현대화를 이끈 선구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흑백에서 컬러로, 그리고 ‘건강사실주의’에서 ‘뉴웨이브’로 이어지는 타이완 영화의 파노라마 속에서 그가 남긴 궤적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라이청잉 감독은 1931년 타이중에서 태어났습니다. 1950년, 중잉(中影)그룹의 전신인 농업교육(農教)영화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며 영화 인생을 시작했는데요. 당시는 지금처럼 촬영한 영상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도 없었고, 필름 역시 무척 귀하고 제한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카메라를 세밀하게 조정하며 한 컷 한 컷을 공들여 찍어내야 했죠. 현상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촬영분이 어떻게 나왔을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매 순간이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치열한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오히려 그의 감각을 더욱 단련시켰습니다. 빛과 그림자를 섬세하게 다루는 능력으로 빠르게 주목받은 그는 1958년 일본으로 건너가 컬러 촬영과 현상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요. 그리고 귀국 후 최신 컬러 촬영 기술을 도입하며 타이완 영화의 영상미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1960년대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를 기술적 선구자로서 당당히 이끌었습니다.
라이청잉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타이완 영화의 교부’ 리싱(李行) 감독입니다. 리싱 감독은 《오리 기르는 집(養鴨人家)》, 《가을의 처형(秋決)》, 《소성고사(小城故事, 작은 마을 이야기)》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기며 타이완 최고 권위의 영화시상식 금마장(金馬獎) 최우수 감독상을 세 번, 작품상을 일곱 번이나 거머쥔 거장 중의 거장이죠. 라이청잉은 리싱 감독과 콤비를 이루어 타이완 영화의 황금기를 함께 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이 작품들로 금마장 최우수 촬영상을 세 차례나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1964년작 《오리 기르는 집》은 두 거장이 만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라이청잉은 치밀한 광원 계산을 통해 타이완 농촌 풍경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아냈고, 리싱 감독은 그 안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은 타이완 ‘건강사실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라이청잉에게 첫 금마장 촬영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죠.
여기서 잠시 ‘건강사실주의’에 대해 짚어볼까요? 이 장르는 당시 타이완의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은 민영화되었지만, 당시 중잉그룹은 국민당 정부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요. 그래서 국가 정책에 발맞춰 우리 사회의 밝고 건강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가난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가족 간의 윤리적 가치를 지키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건강한’ 이야기를 담아야 했죠.
80년대 뉴웨이브 영화들이 역사의 상처나 사회적 모순을 냉철하게 바라본 ‘사실주의’였다면, 라이청잉의 시대는 정교한 빛과 화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힘을 보여주려 했던 ‘미화된 리얼리즘’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시대를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수놓았던 거장이었습니다.
특히 리싱 감독과 콤비를 이뤄 작업했던 영화들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타이완 사람들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는 전통 가요들을 영화의 중요한 음악적 장치로 활용했다는 점인데요. 음악을 통해 영화의 감정을 극대화하고 서사와 깊이 교감하게 만든 것이죠.
《오리 기르는 집》에서도 이런 연출이 빛을 발합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며 당시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아주 특별한 선율이 있는데요. 바로 타이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민요입니다. 〈망춘풍(望春風)〉 함께 감상하시죠.
덩리쥔(鄧麗君) - 〈망춘풍(望春風)〉
라이청잉 감독의 위대함은 자신의 성취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 그 자체였는데요.
1970년대 중반, 평생 카메라 뒤에서 빛을 조율하던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바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직접 메가폰을 잡으며 연출가로 변신한 건데요. 최고의 촬영 감독으로 정점에 올랐던 그가 영화 전체를 지휘하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넓히기 시작한 것이죠.
그의 연출 데뷔작인 《도화녀투주공(桃花女鬥周公)》의 제작진 명단을 살펴보면 아주 익숙하실도 있는 이름이 등장하는데요. 당시 신인이었던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이 이 영화의 부감독이자 각본가로 참여한 것입니다.
라이청잉은 그에게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쓸 기회를 주었고, 현장에서 연출의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게 했습니다. 라이청잉 감독 본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던 연출 활동이, 결과적으로는 허우샤오시엔이라는 신인이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발판이 되어준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조카인 천쿤허우(陳坤厚)에게도 촬영 기술을 전수하며 그를 영화계로 이끌었는데요. 천쿤허우는 외삼촌에게 배운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1979년부터 허우샤오시엔과 파트너십을 맺게 되는데요. 두 사람이 감독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선보인 청춘 영화 시리즈는 타이완 뉴웨이브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결국 허우샤오시엔과 천쿤허우, 이 두 주역의 뒤에는 묵묵히 기술을 가르치고 기회를 열어준 스승이자 외삼촌인 ‘라이상’이 있었던 것이죠. 거장이 또 다른 대가들의 시작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리위안 문화부 장관 역시 자신의 첫 시나리오 《소년과 소녀의 전쟁(男孩與女孩的戰爭)》을 연출해준 인물이 라이청잉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그는 수많은 후배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쉬지 않았습니다. 평생 사용했던 카메라와 귀중한 필름 자료들을 국가영화 및 시청문화 센터(國家電影及視聽文化中心)에 기증했고, 구술 역사 기록에 참여해 타이완 영화의 ‘살아있는 도서관’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2022년 금마장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라이칭잉 감독은 2022년 제59회 금마장(金馬獎)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 사진: 제29회 금마장 생중계 화면 캡처
95년의 세월, 그중 대부분을 암실과 촬영장에서 보낸 거장은 이제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60여 편의 촬영작과 16편의 연출작은 타이완 영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스크린 위에서 빛날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곡으로 라이청잉이 연출한 《소년과 소녀의 전쟁》의 OST, 전니(甄妮)가 부른 〈소년과 소녀의 만남(男孩遇女孩)〉 들려드리며 연예계 소식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진옥순이었습니다.
전니(甄妮) - 〈소년과 소녀의 만남(男孩遇女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