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1978년 12월 16일, 역사적인 그 날 💥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인 1978년은 타이완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꼽힙니다. 그 해 12월 16일, 미국과 중국이 이듬해 1월 1일부터 정식 수교를 맺는다고 발표했기 때문인데요. 당시 이미 유엔에서 탈퇴했던 타이완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죠.
같은 날, 타이완 최초의 현대무용단 ‘운문무집(雲門舞集)’은 자이(嘉義)에서 대표작 《신전(薪傳)》을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원래는 타이베이 국부기념관에서 초연할 예정이었으나, 계엄령 시기였던 만큼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성과 시대적 메시지가 당국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결국 공연장은 권력의 중심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남부 자이로 변경되었고, 공연 날짜도 역사적인 그날, 12월 16일로 앞당겨지게 되었습니다.
운문무집 대표작 ‘신전’ 🔥
《신전》은 위험한 타이완해협을 건너 이 섬에 온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척박한 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무대 위에 펼쳐지는데요. 외교적 고립감이 짙어가던 시절, 작품 속 인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많은 타이완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하는 동시에, 운문무집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 우연한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31살이었던 운문무집 창립자 린화이민(林懷民)은 무용수들과 함께 강변에서 돌을 나르는 훈련을 했는데, 반복적으로 돌을 옮기는 움직임 속에서 기존 무용 훈련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리듬과 몸의 흐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움직임을 타이완 이민사의 기억과 결합해 결국 《신전》을 완성하게 되었죠.
《신전》 포스터 - 사진: 운문무집
세월은 흘러 어느덧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타이완은 지금도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신전’, 즉 ‘불씨를 이어 전한다’는 이름처럼 선대의 정신과 가치가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진다면, 타이완 역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죠.
린화이민 또한 같은 마음으로 운문무집을 이끌어 왔고, 2019년 은퇴를 선언하며 무용단 운영을 다음 세대에 맡겼습니다. 14살에 첫 무용 수업을 받았던 한 소년이 이후 반세기 동안 타이완 문화예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거죠. 오늘은 작가이자 무용가, 타이완 현대예술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린화이민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문학과 무용으로 구성된 삶 ✨
린화이민은 《신전》의 초연지인 자이 출신으로, 문화적 분위기가 짙은 집안에서 성장했는데요. 아버지는 초대 자이현장과 내정부 장관, 교통부 장관을 지냈고, 어머니는 음악과 회화, 영화에 깊은 관심과 조예를 갖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린화이민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문학과 예술 속에서 자라났죠.
그가 처음 무용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5살 때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영국 영화 《분홍신(The Red Shoes)》을 본 후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무려 11번이나 다시 관람했다고 하는데요. 또 중학생 시절에는 신문에 글을 기고해 원고료를 받은 친구를 보고 투고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원고료로 생애 첫 무용 수업을 듣게 되었죠.
하지만 엄격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예술적 관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학 지원서에는 법학과를 대신 적어냈고, 결국 린화이민은 정치대 법재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보다 자유로운 신문학과로 전과하며, 문학과 무용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소설가 린화이민, 1960년대 청춘들의 이야기 🍏
린화이민의 삶은 곧 운문무집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무용가보다 그는 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습니다. 대학 시절 발표한 단편소설집 《변주하는 무지개(變形虹)》와 《매미(蟬)》를 통해 그는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작품 속 대학생들은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평단에서 “린화이민이 두려울 정도의 재능을 지닌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소설 배경인 1960년대, 세계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히피 문화가 확산되었고, 영국에서는 ‘비틀즈’가 록 음악 열풍을 이끌었으며,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이었는데요. 반면, 계엄령 아래의 타이완 사회는 비교적 안정적, 폐쇄적이면서도 경제 성장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젊은 세대는 서구 문화를 동경하고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뜨거운 청춘을 살아갔죠. 린화이민은 바로 그런 시대 청춘들의 내면과 불안을 작품 속에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문학 대신 무용의 길 💃
졸업 후 그는 시대 분위기에 발맞춰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신문학을 계속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시인 야셴(瘂弦)의 소개로 작가 녜화링(聶華苓)이 설립한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 IWP)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이 경험을 통해 전교에 성공했고, 문학창작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8년 운문무집 《포르모사에 대하여》가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공연되었을 때 만났던 린화이민(우)과 녜화링(가운데). 좌는 작가 장쉰(蔣勳). - 사진: 페이스북@雲門
▲관련 프로그램:
‘타이완 문단의 영원한 어머니’ 작가 녜화링(聶華苓) 99세로 별세
‘현대시의 거장’ 시인 야셴(瘂弦) 92세로 별세
하지만 그의 문학 인생은 이 시점에서 잠시 쉼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현대무용에 대한 열망을 키워왔던 그는 결국 문학보다 무용을 선택했죠. 1973년 타이완으로 돌아온 후 타이완 최초의 현대무용단 ‘운문무집’을 창단했습니다.
이어서 운문무집 창립 전해인 1972년에 발표된 노래, 류자창(劉家昌)과 전니(甄妮)의 ‘우리 집은 거기에 있었다(我家在那裡)’를 함께 들어보시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전원적인 삶에 대한 동경을 담은 곡입니다.
타이완만의 현대무용 ✨
공부를 마친 린화이민은 해외에서 배운 지식들을 고향 타이완으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운문무집의 이름은 중국 문명의 시조 ‘황제(黃帝)’ 시대의 무용 ‘운문(雲門)’에서 따왔는데, 단순히 서양 무용단을 모밤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중화문화와 타이완 이야기에 기반한 현대무용을 만들고자 했던 거죠.
이후 린화이민은《백사전(白蛇傳)》, 《홍루몽(紅樓夢)》, 《구가(九歌)》 같은 중국 고전 작품부터 《신전》처럼 타이완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까지 폭발적인 창작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은퇴 전까지 무려 90편의 작품을 안무했습니다.
창단 5주년이었던 1978년,《신전》의 성공은 운문무집을 세계 무대로 이끌었습니다.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시기에는 더욱 의미있는 일이었죠. 이에 린화이민은 문예지 《500집(500輯)》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파견한 대표는 아니지만, 곧 타이완의 상징이다”고 언급했습니다.
황금빛 물결 속의 무용 🌾
린화이민은 안무만 하는 예술가가 아니었습니다. 무대 연출과 음악, 의상은 물론이고 티켓과 홍보까지 직접 챙겼고,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삶이 일상이었다고 하는데요. 동시에 예술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지방 소도시와 농촌을 찾아 공연했고, 무료 야외 공연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특히 운문무집 창립 40주년이었던 2013년부터는 쌀로 유명한 타이둥(台東) 츠상(池上)의 예술 페스티벌에 참여해, 넓은 논밭을 무대로 꾸몄습니다. 황금빛 벼 물결 속에서 펼쳐진 공연은 큰 화제를 모았고, 농업 중심의 작은 마을 츠상 역시 예술과 문화의 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타이둥 츠상에서 펼쳐진 운문무집 《벼 이삭(稻禾)》 공연 - 사진: 운문무집
포르모사에 대하여 ❤️
46년간 운문무집을 이끌어온 린화이민은 2019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 《포르모사에 대하여(關於島嶼)》는 타이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춤으로 담아냈는데요. 16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타이완을 바라보며 “포르모사, 아름다운 섬이여”라고 감탄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눈부시게 아름다운 타이완의 풍경과 감성을 연출했습니다.
린화이민 은퇴 전의 마지막 작품 《포르모사에 대하여(關於島嶼)》 - 사진: 운문무집
린화이민의 소설 《매미》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우리 내년에 다시 오면 매미가 있을까?”
“물론 있지. 하지만 새로운 매미일 거야.”
이제 운문무집도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인 린화이민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인생의 후반부를 열어가고 있죠.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錢欽青、袁世珮,「【優人物】46年雲門人 激流歸於平緩 學過生活的舞蹈家 林懷民」,500輯。
2. 「林懷民——每天都是突圍的好日子」,104 Be A Giver。
3. Seymour,「THE REAL DREAMER 林懷民的造夢之旅」,世界典傳。
4. 張子午,「退後原來是向前──45年後,由歷史浪尖回歸的雲門《薪傳》」,報導者。
5. 林懷民,《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