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실제 당일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주 타이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이슈를 과학 기자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정리해 알려드리는 Rti 한국어방송의 금요일 프로그램 포르모사링크입니다. 안녕하세요 포르모사링크 진행자 손전홍(sch@rti.org.tw)입니다.
전 세계의 전력 산업을 들여다보면 참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등 많은 국가에선
전력 서비스를 여러 회사로 쪼개어 운영하곤 합니다.
어떤 회사는 발전소만 짓고,
또 어떤 회사는 송전선만 정비하고,
또 다른 회사는 전기 요금 고지서만 발송하고,
혹은 특정 지역의 전력 업무를 한 회사가 전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중화민국, 타이완은 조금 특별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력 관련 업무를 '타이완전력공사(臺灣電力公司)'
한 곳에서 '수직 통합'하여 운영하는 건데…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發電)부터
전기를 보내는 송전(輸電),
각 가정으로 나누어주는 배전(配電),
그리고 최종적으로 생산된 전력을 판매하는 전력 거래(售電)까지
타이완전력공사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원스톱 일레트릭 서비스'인 셈입니다.
이러한 통합 시스템 덕분에 타이완 정부는
전력 인프라에 자본을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고,
타이완 섬 전역에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타이완 국민들 입장에선
아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전기에 관한 일이라면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타이완전력공사'를 찾으면 되니까요.
올해 2026년, 타이완전력공사가 80번째 생일을 맞이했어요!
1946년 전력 산업의 시작부터,
오늘날 타이완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전력 인프라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전기를 지켜온 타이완전력공사.
오늘 포르모사링크에선
오랜 시간 동안 중화민국, 타이완을 밝혀온
타이완전력공사의 발자취를 따라,
타이완 전기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공기처럼 느껴지는 전기.
타이완 최초의 전기는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지
9년 만인 1888년에 도입되었습니다.
때는 청나라 광서제(光緒帝)14년,
1888년 어느 조용한 밤이었습니다.
'일라 포르모사(Ilha Formosa)’,
‘아름다운 섬’ 타이완 땅에
사상 처음으로 전깃불이 환하게 켜졌습니다.
당시 첫 타이완순무(臺灣巡撫)이었던 류밍촨 (劉銘傳)은
근대화 건설을 밀어붙이며 서양의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타이베이 동문(東門)에 ‘흥시공사(興市公司)’를 세우고
소형 발전기를 들여와 타이완 역사상 첫 전등을 밝힌 것인데요.
하.지.만. 당시의 전등은 가정용으로 쓰기엔
너무 눈이 부신 아크등(弧光燈·arc lamp)이었고,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그야말로 '찰나의 불꽃'처럼 금방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이 식민지 타이완에 설치한 통치 기관이죠.
타이완총독부는 4대의 증기 발전기를 가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기를 돌린 진짜 목적이
지금 생각하면 아주 괘씸하기 짝이 없어요.
바로 아편 공장에 24시간 불을 밝혀
밤에도 쉬지 않고 아편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밤낮없이 아편 공장을 돌리고 남은 자투리 전기는
총독부와 관저에 공급했고요.
어쨌든 당시 타이완 섬 사람들에게
전등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당시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아편 공장으로 가서
불 켜진 전등을 넋을 놓고
구경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타이완 가정과 상점에
본격적으로 전기가 들어온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905년이 되어서였는데…
타이완 최초의 수력 발전소인
'궤이산(龜山) 발전소'가 완공되면서부터죠.
이 궤이산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약 16.5km의 전선관을 타고 타이베이 성내(台北城內)와
다다오청(大稻埕), 멍자(艋舺)
이 3곳으로 힘차게 흘러 들어갔습니다.
당시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전등과 전력 공급을 요청하고 계약을 맺는
이른바 전기 사용 권리가 열리기만 하면
그야말로 '초 단위'로 마감되는 '순삭' 현상이 벌어졌죠.
심지어 전기를 쓸 수 있는 ‘권리’를 비싸게 되파는
전기 암표상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등 하나를 한 달 동안 켜는 데 드는 비용이
일반인 월급의 20~30%에 달했기 때문에,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주로 일본인과 상류층, 부유한 상인들이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전등의 등장은
타이완 섬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어두컴컴했던 밤거리에 빛이 찾아오면서,
밤거리가 안전해졌고,
사란들은 밤 늦게까지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45년 10월 25일, 마침내 타이완 섬은 광복을 맞이합니다.
기쁨도 잠시, 전쟁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전력 시스템은 그야말로 마.비. 상태였죠.
당시 타이완을 떠나던 일본인 기술자들은 냉소적인 비웃음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떠나면, 고작 석 달 뒤에
이 섬은 완벽한 암흑에 빠질 것이다." 라고 말이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을 때,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전력 복구를 위해 즉시 움직였습니다.
같은 해 11월 '타이완전력감리위원회(臺灣電力監理委員會)'를 설치해
일본의 '타이완전력주식회사(臺灣電力株式會社)' 업무를 인수하고,
복구 계획에 돌입합니다.
이듬해인 1946년 5월 1일,
오늘날 중화민국, 타이완 전력 시스템의 심장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과 에너지를 책임지는 기업,
'타이완전력공사'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타이완전력공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한 명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타이완전력공사 직원들에게
'영원한 쑨 노사장(孫老總)'이라 불리는 인물,
바로 쑨윈쉬안(孫運璿) 선생입니다.
타이완전력공사 사장, 경제부 장관,
교통부 장관, 행정원장 등 정부 요직을 두루 역임한
쑨윈쉬안 선생은 중화민국의 전기, 기술,
그리고 경제 발전을 이끈 전설적인 인물로
타이완 국민들에게 지금까지도 큰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자
올해 106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MIT로 불리는
하얼빈공업대,HIT 출신 엔지니어입니다.

▲ 지난 5월 20일(수) 타이베이 시먼딩 청핀서점( 誠品書店)에 고(故) 쑨윈쉬안(孫運璿) 전 타이완전력공사 사장의 자서전이 진열돼 있다. [사진= Rti 손전홍]
타이완전력공사가 설립되던 1946년 당시,
쑨윈쉬안 선생의 나이는 고작 서른세 살이었습니다.
쑨윈쉬안 선생은 일본인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전국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공과대학 학생들을 샅샅이 긁어 모았습니다.
이른바 '팀 타이완(Team Taiwan)'을 결성한 것이죠.
"석 달이면 암흑천지가 될 것"이라던
일본인들의 조롱을 비웃기라도 하듯,
쑨윈쉬안 선생이 이끄는 팀 타이완은
밤낮없이 전신주를 타고 발전기를 고쳤습니다.
그리고 단 5개월 만에, 타이완 섬 전역 전력의 80%를 기적적으로 복구해 냅니다.
타이완인의 손으로 직접,
다시 이 섬에 빛을 밝힐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해 낸 위대한 순간이었죠.
쑨윈쉬안 선생은 1946년부터 1964년까지,
무려 18년이라는 청춘의 세월을 타이완전력공사에서 보냈습니다.
최고 경영자인 사장(總經理) 자리에 올라 회사를 진두지휘하기 전까지,
쑨윈쉬안 선생은 발전소 소장(電廠廠長),
총괄엔지니어(總工程師) 등
밑바닥 기초 건설 현장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습니다.
덕분에 현장의 흙먼지 냄새부터
거대한 송전탑의 전선 한 가닥까지,
타이완전력공사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뚫고 있었죠.
쑨윈쉬안 선생이 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타이완 땅의 산과 들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쑨윈쉬안 선생이 이끄는 타이완전력공사는
무려 9개의 수력 발전소와 3개의 화력 발전소를 새로 건설해 냈습니다.
특히 타이완 척추라 불리는 험준한 중앙산맥을 가로질러,
전력이 부족했던 동쪽과 서쪽을 하나로 연결한
'구 동서송전선로(舊東西輸電線路)'의 완성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대공사였습니다.
오늘날 타이완이 세계적인 첨단 산업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든든한 전력 인프라의 뼈대가 바로 이 시기,
쑨윈쉬안 선생의 손끝에서 완벽하게 구축된 셈입니다.
쑨윈쉬안 선생은 생전에 공식 석상이나
사석에서 이런 말을 참 자주 하셨어요.
"타이완전력공사는 나의 '다섯 번째 아이'다.
台電是我的『第5個小孩』。"
쑨윈쉬안 선생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어,
실제 자녀는 총 4명인데요.
타이완전력공사를 자신이 마음으로 낳아 기른
또 하나의 자식으로 여긴 것이죠.
다섯 째 아이를 키우는 애틋함과 책임감으로
타이완의 어둠을 밝히고 산업을 키워냈던 쑨윈쉬안 선생.
쑨윈쉬안 선생은 늘 최첨단 기술을 바라보며 발전소와 댐을 지었지만,
동시에 선생님의 시선은
언제나 가장 소외된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신념, 바로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때는 1952년, 타이완전력공사의 조사 결과
천여 개 마을,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전등 하나 없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쑨윈쉬안 선생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당시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셨다고 합니다.
"그들도 똑같은 중화민국의 국민인데,
왜 전력을 누리지 못하는가?
민주주의란 단순히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필요한 일을 직접 행하여
평등과 풍요를 전하는 것이다.
전력공사가 앞장서서
타이완 땅의 모든 이들이
전기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깊은 산골 오지에 전선망을 설치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고,
현실적으로 '적자'가 나는 사업이었습니다.
고작 한두 가구에게 전기를 주려고
수 킬로미터의 전선을 연결해야 했고,
고장이 나면 수리 비용이 더 들었기 때문이죠.
재무 부서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쑨윈쉬안 선생님은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며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 결과 이른바 '농촌 전기화(農村電氣化)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며,
타이완은 전체 인구의 99.7%가 전기를 누리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당시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한국보다도 훨씬 더 높은 보급률이었죠.
타이완전력공사를 이끄는 쑨윈쉬안 선생의 혁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때는 1962년, 마흔아홉의 나이에
타이완전력공사 사장(CEO)으로 승진한
쑨윈쉬안 선생의 넘사벽 능력은 국경을 넘어
서아프리카에 있는 나라까지 전해졌는데요.
나이지리아 전국전력공사의 사장으로 초빙되어
3년 동안 나이지리아의 발전량을
무려 88%나 성장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또 한 번 만들어냅니다.
나이지리아의 전력난을 해결함과 동시에,
타이완과의 외교적 연결고리까지 단단히 묶어낸 성공적인 기술 외교였습니다.
쑨윈쉬안 선생님이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은
오늘날까지 타이완전력공사를 지탱하고 있는
위대한 기업 문화, ‘자발적인 정신’입니다.
선생님은 늘 직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우리 타이완전력공사의 고객들은 섬 전역에 흩어져 있고,
직원들은 전선을 따라 움직인다.
저 깊은 산골 외딴 지점에서는
고작 한두 명이 근무한다.
만약 강력한 태풍이 불어와 본사와의 연락이 끊겼을 때,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 기다린다면
일주일이 지나도 불을 켜지 못한다.
태풍이 멈추면 이 전선은 내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장비를 메고 전신주 위로 올라가야 한다."
쑨윈쉬안 선생님은 말로만 외치는 리더가 아니었습니다.
현장 직원은 물론이고 직원의 아내들까지 직접 챙겼습니다.
사장으로 재임한 2년 동안,
타이완 전국의 300여 개 전력 서비스소를
단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발로 뛰었습니다.
갈 때마다 곁에서 함께 고생하는 부하 직원들의
아내들에게 수건과 찻잎을 선물로 건네며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죠.
"우리 고객들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편리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진심 어린 격려는 전력공사 직원들의
자발적인 행동의 힘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지금도 타이완에서는 태풍이 지나가고
강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있어도
노란 안전모를 쓴 타이완전력공사 직원들이
전신주 위에 매달려 묵묵히 전선을 고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동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쑨윈쉬안 선생은
언제나 위험한 일은 자신이 감당하고,
공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부하 직원들을 챙겨주는 그런 상사였습니다.
타이완전력공사 사장 시절 쑨윈쉬안 선생은
매번 기자들이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늘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에 대해 쓰지 마세요.
현장에서 밤낮으로 땀 흘리는 내 부하 직원들의 공로가 나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뒤에서 고생하는
부하 직원을 먼저 빛내주려 했던 선생님의 마음.
이러한 존중이 있었기에,
타이완전력공사의 모든 직원은
'나의 땀 한 방울이 이 나라를 움직인다'는
깊은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전신주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지난달 4월 30일이었죠?!
라이칭더 총통이 참석한 가운데
'타이완전력공사 창립 80주년 기념행사(台電80周年慶祝大會)'가 열렸습니다.
라이 총통은 이 자리에서 타이완전력공사가 걸어온 8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아주 깊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 라이칭더 총통이 지난 4월 30일(목) 타이베이 타이완전력공사빌딩에서 열린 타이완전력공사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총통부 제공]
"지난 80년 동안 타이완전력공사가 해온 일은
단순히 전기를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고, 산업을 지탱하며,
사회를 안정시키는 버팀목이었다.
전후 복구의 잿더미에서 시작해 경제가 무섭게 도약하던 시절,
그리고 가공 수출 시대를 지나
오늘날 전 세계를 이끄는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무대로 우뚝 서기까지,
타이완전력공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이완의 성장을 든든하게 떠받쳐 주었다.
때문에 80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타이완전력공사만의 이정표가 아니라,
타이완이라는 국가의 위대한 이정표"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의 모든 임직원이 정부와 함께 한마음으로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는데요.
지난 80년간 일구어 온 타이완전력공사만의 정신과 독보적인 기술,
그리고 밤낮없이 섬을 지켜온 뜨거운 사명감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름답게 이어가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모두가 한 뜻으로 힘을 모아 아름다운 섬,
타이완을 함께 더 밝게 비추어 나가자는 간절한 바람이었죠.
라이 총통의 말, 현장의 소리로 들어보시죠!

▲ 라이칭더 총통이 지난 4월 30일(목) 타이베이 타이완전력공사빌딩에서 열린 타이완전력공사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타이완전력공사 페이스북 캡쳐]
1888년 어둠을 뚫고 처음으로 켜졌던 불빛부터,
전후 잿더미 속에서 불을 다시 밝힌
쑨윈쉬안 선생이 이끄는 팀 타이완의 땀방울,
그리고 세계 첨단 산업의 심장을 돌리는 오늘날의 거대한 에너지까지.
타이완전력공사가 걸어온 지난 80년은 아름다운 섬,
타이완이 걸어온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그 기억을 담고 타이완전력공사는,
이제 더 밝은 100년을 향해
또 한 번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Rti 한국어방송의 금요일 프로그램 포르모사링크,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손전홍이었습니다. 저는 다음주 금요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참고자료
5월 22일(금) 포르모사링크 삽입곡
[BGM : ①왕위쥔(王榆鈞)-불생불멸(不生不滅) )(영화 ‘감로수(甘露水)’ 중에서)
②왕위쥔(王榆鈞)-시대파문(時代波紋)(영화 ‘감로수(甘露水)’ 중에서)]
《台灣電力公司》 <歷史與發展>, https://www.taipower.com.tw/2289/2339/2340/10123/normalPost
《天下雜誌》 (2026. 04. 28.) <台灣電網最大功臣!孫運璿如何實踐電力平權、讓偏鄉農村也發光?>, https://www.cw.com.tw/article/5140766?utm_source=fb_cw&utm_medium=social&utm_campaign=fb_cw-social-daily-260429-5140766&fbclid=IwY2xjawR5U5lleHRuA2FlbQIxMABicmlkETFzWXdQVVhzamF2MEJacm9qc3J0Y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sc6SF3CTOMNpJizniO4-5N7SkT8_YKIaswdunldclAoVYsy9uddVQxcd8Ov_aem_4vrkaKjN-ueuOmSFTa6YWQ
《台灣電力公司》 (2026. 01. 29.) <【臺灣百年電業史話20】用電服務>, https://service.taipower.com.tw/Collection/2009/2025/9758/
《台電月刊》 (681期 | 2019 年 09 月號) <燈光乍現 從電燈發展訴說臺灣「光陰」故事>, https://service.taipower.com.tw/tpcjournal/article/3451
《台灣電力公司》 (2026. 04. 30.) <台電慶80周年 電力發展與台灣同行 讓電力成為城市競爭力 >, https://www.taipower.com.tw/2289/2323/2324/67723/normal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