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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타이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이슈를 과학 기자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정리해 알려드리는 Rti 한국어방송의 금요일 프로그램 포르모사링크입니다. 안녕하세요 포르모사링크 진행자 손전홍(sch@rti.org.tw)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거인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갖추고
앞만 보며 달리는 거인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바닥에서
처절하게 넘어져 본 뒤에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며 따뜻한 손을 내미는 거인이 있죠.
최근 타이완에서 날아온 한 거부의 별세 소식은,
우리에게 ‘진짜 거인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참 깊은 울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 보험사, 유통업체 등 굴지의 기업들을 거느린
거대 기업의 총수이자,
아시아판 노벨상이라 불리는 ‘탕상(唐獎)’을 제정한 인물.
바로 루엔텍스, 룬타이그룹(RuenTex, 潤泰集團)의 인옌량 회장 이야기입니다.
인옌량 룬타이 회장님은
지난 5월 26일(월) 새벽 4시 21분,
타이베이 재향군인병원 룽민종합병원(臺北榮民總醫院)에서
향년 7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평온하게 눈을 감은 인옌량 회장은 가족들에게
“빈소도 차리지 말고,
조의금도 일절 받지 말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평소 “내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떠나는 길마저 가장 낮은 곳으로 소박하게 돌아간 것이죠.
오늘 포르모사링크에서는 건설공학(Construction Engineering) 전문가이며
대학 교수이자 위대한 자선가였던
고(故) 인옌량 박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인옌량 박사님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단순한 ‘기업 총수’나 ‘자선가’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하기에는
박사님의 삶이 한편의 영화 같고, 입체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인옌량 박사님이 타고 있던
벤틀리 오픈카가 대형 추돌 사고를 당해 차 앞부분이 형체도 없이 구겨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사님은 상처하나 없이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모습으로 차 문을 열고 걸어 나왔죠.
이 극적인 장면은 어쩌면 박사님의 일생을 보여주는 완벽한 비유일지도 모릅니다.
늘 논란과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남았던 거인,
박사님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도 진귀한 약재와 차, 천 등이 거래되고 있는…
청나라 말기에 형성된 타이베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전통재래시장
디화제(迪化街)에서 시작됩니다.
1950년 8월 16일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인옌량 박사님.
박사님의 아버지는
디화제에서 방직 사업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데님 원단의 왕(牛仔布大王)’,
‘체크 원단 전문가(格子布專家) ’라 불렸던
룬타이방직(潤泰紡織)의 인수톈(尹書田) 회장이었습니다.
엄격한 기업가 아버지를 두었지만,
소년 인옌량은 매일같이 주먹질을 일삼는 통제 불능의 싸움꾼이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 같은 성격 탓에
4개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죠.
결국 참다 못한 아버지 인수톈 회장은
1966년, 비행을 일삼던 아들을
청소년 갱생보호시설과 다름없던
장화 진덕중학교(彰化進德中學)로 보냅니다.
하늘이 이 소년을 포기하지 않았던 걸까요?
그 삭막한 곳에서 소년은 인생을 바꿀 스승들을 만납니다.
헌신적이었던 위둔더(于敦德) 교장 선생님,
그리고 훗날 대한민국 국회의장 격인
중화민국 입법원장이 되는 수학 선생님,
왕진핑(王金平)을 만난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하던 소년 인옌량이 다쳤을 때
약을 발라주던 왕진핑 선생님은
소년 인옌량에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다.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함부로 해서야 되겠니?”라면서 타일렀습니다.
왕진핑 선생님은 왜 이 소년이 싸움만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누군가에게 주목 받고 싶어서,
존중 받고 싶어서 싸우는 거라면,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너를 사랑하고 너를 존중할 거다”라고 말이죠.
당시 국립타이완사범대(國立台灣師範大學) 수학과를 갓 졸업하고
첫 부임했던 청년 교사 왕진핑.
왕진핑 선생님은 매일 자신의
금쪽같은 점심시간과 낮잠 시간을 통째로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주먹질만 하느라 중학교 기초 수학조차 전혀 모르던
소년 인옌량을 앉혀두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줬고,
틈틈이 영어공부도 해주기 시작했죠.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소년 인옌량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세상에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직 있구나.’
스승의 사랑은 소년의 인생을 180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주먹을 쥐던 소년이 펜을 쥐고
밤새 코피를 쏟으며 공부하기 시작한 겁니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출발이었지만,
소년 인옌량은 타이베이 대표 남자 명문 고등학교인
성공 고등학교(成功高中) 야간 과정을 거쳐
중국문화대학(中國文化大學) 사학과에 진학했고,
서른 둘에는 최고 명문인 국립타이완대(台大)에서 경영학 석사를,
서른 여섯에는 정치대(政大)에서
CEO나 실무 전문가를 위한 최고위급 경영관리학 학위죠?
경영학 전문 박사 학위까지 거머쥐게 됩니다.
훗날 베이징대와 홍콩이공대학교 폴리텍 등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이 박사님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학문적 성취를 인정하게 되죠.
인옌량 박사는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고
뉴타이완달러 3억 2,700만 원 들여 모교에
‘왕진핑 활동센터(王金平活動中心)’를 지어 헌정했습니다.
특히 스승인 왕진핑 전 입법원장이 지난해(2025년)
동해대학교(東海大學) 석좌교수로 다시 교단에 섰을 때,
중계 영상에 인옌량 박사님이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축하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비춰져
두 사람의 사제지간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줬죠.
사랑하는 제자가 세상을 떠나던 날, 평생의 스승이었던
왕진핑 전 원장님이 남긴 말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인옌량을 잃은 건 국가와 사회의 크나큰 손실이다.
모두가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또 깊이 그리워하고 있다.”
제자의 반항적이었던 옛 학생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덧붙였어요.
“인옌량은 청소년 시절, 누구보다 머리가 영리하고
남다른 정의감으로 가득 찬 학생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그랬기에 그의 삶의 발자취가 이토록 아름답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하고
원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제지간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이런 귀한 인연이 주어졌음에 깊이 감사하며,
나는 평생 옌량을 마음 깊이 자랑스러워했다.
인옌량이 이룩한 위대한 성취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큰 은혜를 입었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라며
제자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한
왕진핑 전 입법원장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인옌량 박사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거인으로 기억되는 진짜 이유는
박사님이 남긴 ‘아름다운 약속과 사회적 환원’ 때문이죠.
박사님은 지난 2011년,
"내 재산의 95%를 사회와 공익을 위해 환원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 사재를 털어 특별한 상을 하나 제정하셨는데요.
뉴타이완달러 30억, 한국 돈으로 약 1,1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는데…
그게 바로 아시아판 노벨상, 동방(東方)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탕상(唐奬, Tang prize)’입니다.
탕상의 심사는 국적, 인종, 성별,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인류에 대한 기여도만 봅니다.
타이완 최고의 연구기관인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과
노벨상 수상자급 석학들이 모여 아주 까다롭게 심사하는데요.
수상자에게는 순금 99.99%로 만든 묵직한 메달과 함께,
뉴타이완달러 5,000만원,
한국 돈으로 약 17억 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이 상금은 노벨상보다도 많은 겁니다.
노벨상 상금이 한 분야당 1100만크로나
한국 돈 16억 원이기 때문이죠.
박사님이 정한 탕상의 네 가지 수상 분야를 보면
인류를 향한 혜안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개발상(永續發展獎)’,
인류의 질병을 고치는 ‘생물제약학상(生技醫藥獎)’,
동양의 정신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한학상(漢學獎)’,
그리고 정의를 세우는 ‘법치상(法治獎)’까지.
지금까지 총 39명의 위대한 개인과 기관이 이 상을 받았는데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침팬지의 어머니,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님이
2020년에 지속가능개발상을 받으셨고,
중화권 최고의 역사학자 쉬줘윈(許倬雲) 박사님과
미국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 위잉스(余英時) 박사님은
일생을 통해 중국학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아 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특히 2014년 법치상에 선정된 첫 번째 수상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 재판소의 앨버트 알비 삭스(Albert Albie Sachs)전 대법관이었습니다.
삭스 전 대법관은 자유를 지키는 투사로 이름이 높습니다.
암살 시도를 당해 한 쪽 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에서 법치를 확립하는데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보통 1등,
그리고 상위 1%의 천재들만 기억하고 환호하곤 합니다.
정작 99%의 평범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다며 쉽게 무시하곤 하죠.
하지만 우리는 오늘, 온갖 좌충우돌을 겪던 한 말썽꾸러기 소년이
스승의 위대한 사랑으로 깨어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탕상을 선물하고 떠난
감동적인 기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Rti 한국어방송의 금요일 프로그램 포르모사링크,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손전홍이었습니다. 저는 다음주 금요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참고자료
6월 5일(금) 포르모사링크 삽입곡
[BGM : ① 히사이시 조- 여로(이별) (영화 ‘바람이 분다’ 중에서)
② 히사이시 조- 은인 (영화 ‘바람이 분다’ 중에서)
③히사이시 조- 여로(꿈의 왕국) (영화 ‘바람이 분다’ 중에서)]
《唐獎》 (2026. 05. 26.) <唐獎悼念創辦人尹衍樑博士>, https://www.tang-prize.org/media_detail.php?cat=24&id=2560
《唐獎》 <創辦人尹衍樑博士>, https://www.tang-prize.org/origin.php?cat=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