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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잉 라인’ 타고 떠나는 산샤(三峽) ① 차·장뇌·남염의 중심지 🍵

붉은 벽돌 건축이 특징인 ‘산샤 옛거리’ - 사진: 안우산
붉은 벽돌 건축이 특징인 ‘산샤 옛거리’ - 사진: 안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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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샤(三峽)-잉거(鶯歌) 지하철 개통 🎉

타이완 수도권 지하철에 새로운 노선이 개통되었습니다! 신베이시 산샤(三峽)와 잉거(鶯歌)를 잇는 ‘산잉 라인(三鶯線)’이 지난 30일 시험 운행에 들어갔는데요. 오는 8월 31일까지 무료로 탑승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개통된 산잉 라인은 총 12개의 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등산객들에게 인기있는 ‘마주컹(媽祖坑) 등산로’를 비롯해, 산샤의 관우 사찰 ‘광싱궁(廣行宮)’, 산샤 옛거리, 신베이시립미술관, 그리고 도자기로 유명한 잉거 옛거리 등 주요 여행지를 따라 이어지는데요. 여름방학 여행 코스로도 딱 좋은 노선이죠! 앞으로 타오위안(桃園)을 연결하는 3개 역까지 개통되면 수도권 교통은 한층 더 편리해질 전망입니다.

지난 6월 30일 개통된 신베이시 지하철 ‘산잉 라인(三鶯線)’ - 사진: 안우산

한편, 지난해 방송에서 잉거에 위치한 신베이시립미술관을 소개해 드린 바 있었죠. 다한시(大漢溪)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잉거와 산샤는 수운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고, 예로부터 하나의 생활권인 ‘산잉 지역’으로 묶여 불려왔습니다. 그럼 오늘은 강 오른편에 있는 산샤로 함께 떠나볼까요?

▲관련 프로그램:
‘갈대숲 속 현대미술관’ 신베이시립미술관


수운에 힘입에 발전한 산샤 지역 💦

타이완의 도시 발전을 보면, 초기의 주요 거점들은 대개 바닷가나 하천 하구에 자리하는데요. 산샤 역시 하천 3개가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지역입니다. 17세기 이전, 산샤에서는 원주민 레이랑족(雷朗族)이 거주하며, 원시적인 농업과 수렵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17세기 말, 중국 푸젠 출신 한족 이주민들은 산샤로 들어와 관개 기술로 논밭을 대규모 개간했는데, 이 과정에서 식량을 통한 토지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레이랑족은 점차 산간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산샤의 한족 이주민 중 특히 푸젠 취안저우(泉州) 안시(安溪) 출신이 많았는데요. 이들은 고향의 신 ‘청수조사(清水祖師)’를 계속 모시기 위해 1769년 ‘산샤 조사묘(三峽祖師廟)’를 세웠습니다. 바로 오늘날 산샤 옛거리의 시작점에 자리한 그 사찰이죠. 추가로, 청수조사는 중국 북송시대의 승려로, 생전에 안시 지역에서 다리와 도로를 건설하며 의료 활동을 펼쳤고, 원적 후에는 현지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산샤 옛거리의 시작점에 자리한 사찰 ‘산샤 조사묘(三峽祖師廟)’ - 사진: 안우산

이처럼 상업활동과 종교활동이 함께 활발해지면서 조사묘를 중심으로 한 상업 거리 ‘산자오융 거리(三角湧街)’도 형성되었습니다. ‘산자오융’이란 하천들이 합류해 물살이 거세지는 장면을 뜻합니다. 지금도 옛거리 곳곳에서 이 이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죠. 이후 1920년 일본 정부가 행정구역 개편을 시행한 후, 중국 창장 상류에 있는 산샤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변경했습니다.


'산자오융'이라 적혀 있는 산샤 옛거리의 하수도 뚜껑 - 사진: 안우산


산샤의 특산물 ① 남염 💙

그렇다면, 당시 산샤에서는 어떤 상품들이 거래되었을까요? 

첫 번째는 천을 염색하는 염직 산업입니다. 인구 증가에 따라 일부 주민들은 산샤의 산간지역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 ‘마람(馬藍)’을 활용해 염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기술은 ‘남염(藍染)’이라 합니다.  덕분에 산샤는 남염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했죠.


남염으로 그려진 산샤 옛거리 - 사진: 안우산

산샤의 특산물 ② 찻잎 🍵

다음으로, 청나라가 아편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에 패하면서 타이완의 주요 항구들도 1860년 개항하게 되었습니다. 외국 상인들의 추진 아래, 타이완 차 산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산샤는 구릉지형과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차 재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고요. 게다가 산샤 이주민 상당수의 고향인 취안저우 안시는 원래 차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차 재배와 가공 기술에 익숙한 인구 기반도 이미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청나라 시대에 형성된 이러한 기반 위에서, 산샤 차 산업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브랜드화’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당시 일본의 미쓰이 기업은 영국의 립톤과 경쟁하기 위해, 산샤를 비롯한 타이완 북부지역에서 아삼 홍차를 대량 재배해 ‘닛토홍차’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 수출했습니다. 바로 지금도 잘 알려진 일본 홍차 브랜드인데요. 비록 현재의 닛토홍차는 타이완차를 쓰지 않지만, 그 역사에는 타이완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20년대 닛토홍차의 광고 - 사진: 타이완기억뱅크/국립타이완공예연구발전센터

제2차 세계전쟁 이후, 산샤 차 산업은 장제스 총통이 선호하는 녹차와 우롱차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한때는 타이베이 차 시장 생산량의 4분의 1 생산량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산지였죠.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생산 비용이 상승하면서, 타이완 차 산업은 수출 중심에서 점차 내수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때문에 산샤의 차 재배 면적 역시 크게 줄어들게 되었죠.

그런데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산샤 차 산업은 1990년대부터 고급화 전략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국제적으로 확산되던 녹차 붐에 맞춰, 발효하지 않은 녹차 ‘벽라춘(碧螺春)’을 앞세워 큰 호평을 받았고요. 이후 2008년에는 은은한 향기가 특징인 ‘미향홍차(蜜香紅茶)’를 선보이며 또다시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까지도 산샤를 대표하는 특산물입니다.

산샤의 차밭 - 사진: 타이완문화기억뱅크 / 신베이시문화국

이어 차의 향기를 따라 홍롱홍(洪榮宏)의 ‘좋은 차 한 잔(好茶)’을 함께 들어보시죠!


산샤의 특산물 ③ 장뇌 🌲

차 산업뿐만 아니라, 녹나무에서 추출한 유기화합물 ‘장뇌(樟腦)’도 청나라 시대부터 산샤의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장뇌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는데, 산업적으로는 화약과 셀룰로이드의 원료로 쓰였고, 의학적으로는 구충 작용과 혈관 수축, 소독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녹나무가 주로 자라던 산간지역은 원래 원주민 타이야족(泰雅族)의 터전이었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충돌들이 이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사건은 1900년부터 1906년까지 이어진 ‘다바오서 사건(大豹社事件)’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타이야족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가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현지 타이야족이 타오위안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때 산샤 타이야족의 우두머리는 과거 소개해 드렸던 백색테러 피해자 린루이창(林瑞昌, Losing Watan 로싱 와탄)의 아버지 와탄 시앗(Watan Syat)이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2·28평화기념일] 국가폭력 속 사라진 이름들… 자오반산(角板山) 타이야족(泰雅族)


산샤 옛거리의 발전 🌆

지금의 산샤 옛거리는 바로 남염과 차, 장뇌 산업에 의해 형성된 곳입니다. 하지만 1895년 항일운동에서 가옥들은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고, 이후 도시계획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타이완 전통 요소와 바로크 양식, 일본식 가몬 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이 완성된 거죠. 그리고 이 거리를 대표하는 먹거리, 소뿔 모양의 빵 ‘금우각(金牛角)’도 1980년대 등장해 산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필리핀 전통 빵 ‘판데살’을 타이완 전통 과자에 접목시켜 만든 산샤의 대표 먹거리 ‘금우각(金牛角)’ - 사진: 산샤 옛거리 홈페이지

한편, 일본 식민지 후기에 들어 하천의 토사 침적과 인근 지역 철도 개통으로 산샤의 지리적 우위는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여기에 화합 기술의 발달로 장뇌 산업도 대체되었고, 그리고 1970년대에는 차 산업마저 위축되면서 산샤의 산업 기반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2000년대 이후 국립타이베이대학교의 대학가 계획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낡은 옛거리도 이 시기에 정비를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고요. 이번 지하철 산잉 라인 개통과 함께 산샤 지역은 다시 한 번 발전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죠. 관련 역사는 옛거리 근처 ‘산샤 역사문물관(三峽歷史文物館)’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산샤에 있는 국립타이베이대학교 캠퍼스 - 사진: 안우산

이처럼 문화적 기운이 짙은 산샤는 일본이 타이완을 막 접수했을 때, 항일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곳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다음주에는 계속해서 관련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三峽概述〉,三峽區公所。
2. 范雅鈞,「全台歷史最悠久的農會,三峽四季產好茶,細說三角湧烽火茶金122年」,微笑台灣。
3. 〈茶金歲月——臺灣茶業的誕生與百年興衰〉,時空旅行社。
4. 「日東紅茶的崛起」,國家文化記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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