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타이완으로 망명한 홍콩 출판인 📖
2019~2020년 홍콩 시위와 이에 따른 홍콩 국가보안법의 시행 이후, 홍콩의 자유와 인권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해외 이주가 이어지면서 많은 홍콩인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타이완을 택했는데요. 현재 타이완은 중화권에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죠. 문학계에서도 천후이(陳慧), 랴오우이탕(廖偉棠), 량리즈(梁莉姿), 덩샤오화(鄧小樺) 등 여러 홍콩 작가들이 최근 몇 년 사이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홍콩에 영광이 다시오길” 천후이(陳慧) 《남동생》
2015년 ‘코즈웨이베이(銅鑼灣) 서점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2019년 타이완으로 망명한 출판인 린룽지(林榮基)도 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코즈웨이베이 서점 점장으로서 중국 정부가 금서로 지정한 책을 출판·판매했다는 이유로 베이징 당국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원래 홍콩은 중국 본토, 타이완, 마카오와 범죄인 인도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9년 관련 법 개정안이 제출되면서 홍콩 사회는 거센 반발에 휩싸였는데요. 당시 린룽지는 여전히 중국 정부로부터 불법 경영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으로 다시 송환될 가능성을 우려해 결국 타이완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타이베이에서 ‘코즈웨이베이 서점’을 재개했죠. 당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라이칭더(賴清德) 부총통이 직접 서점을 찾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0년 코즈웨이베이 서점이 타이베이에서 재개된 후 당시 라이칭더 부총통이 서점을 찾아 린룽지를 만났다. - 사진: 라이칭더 페이스북
자유를 위해 싸웠던 린룽지는 암 재발로 지난 7월 2일 타이베이에서 별세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라이 총통을 비롯해, 줘룽타이(卓榮泰) 행정원장,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 등 타이완 고위층이 잇따라 애도의 뜻을 전하며,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했습니다. 타이베이에 있는 코즈웨이베이 서점에도 린룽지를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홍콩 자유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불렸던 출판인, 린룽지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학교를 거부한 소년 ❌
1955년생인 린룽지는 2015년까지 인생에서 극적인 일이 많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국공내전 당시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피난했고,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 생계를 위해 분주하게 살아야 했는데요. 린룽지는 5남매 중 막내로, 가정 경제를 책임질 부담이 없어 비교적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 제도를 혐오한 그는 고등학교 야간부를 중퇴했지만, 어릴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해 틈만 나면 도서관을 찾곤 했습니다. 이 오래된 취미는 훗날 서점을 여는 삶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학교를 떠난 후에는 주방일, 배달원, 미용실 견습 등 다양한 일을 해봤지만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중화서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오랜 독서 경험 덕분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중공 영향력을 체감한 순간... ⚡️
하지만 1989년 천안문 6·4 항쟁이 벌어졌습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반면, 중국 자본이 중심인 중화서점은 중국 정부 입장을 반영한 책 《천안문 풍파(天安門風波)》를 출판했습니다. 이에 린룽지는 더 리포터(報導者)와의 인터뷰에서 “잔혹한 학살을 단순한 ‘풍파’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이는 그가 처음으로 중국 정부의 영향력을 직접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그는 타이완 서적을 대리 유통하는 출판 대행사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타이완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그는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서점 거리인 충칭난루(重慶南路)를 찾아 타이완 출판업을 직접 경험했고, 당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타이완 출판 시장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이후 지인과 문구점을 열었지만 계속 적자를 보여 결국 1994년 자신만의 서점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의 인생을 바꾼 ‘코즈웨이베이 서점’이죠.
금서를 중국 본토로 가져간 코즈웨이베이 서점 📚
1990년대에 들어, 홍콩 출판 시장에서는 이른바 ‘삼중상(三中商)’이라 불리는 세 개의 중국계 대형 서점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갔는데, 삼중상 소속 서점은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책이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많은 홍콩 독립서점은 금서를 판매하거나, 중국 본토로 금서를 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코즈웨이베이 서점 역시 금서 판매로 유명한 서점 중 하나였습니다. 이에 린룽지는 금주간(今週刊)과의 인터뷰에서 “금서를 중국으로 보내는 것은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해서”라며, “책의 영향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서점 운영에 온전히 삶을 바쳤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서점을 지키고 문을 닫은 후에도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가며, 새백 3시가 넘어서야 취침했습니다. 그에게 코즈웨이베이 서점은 단순한 가게를 넘어 삶의 전부였죠.
2020년 6월 타이베이 자유광장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 행사에 참석한 린룽지 - 사진: 위키백과 KOKUYO
이어서 2019년 홍콩 시위에서 널리 불린 민중가요 ‘영광이 다시 오길(願榮光歸香港)’을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완 밴드 ‘더 체어맨(董事長)’이 커버한 버전입니다.
8개월의 감빵생활 끝에 내린 결정 ⛓️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린룽지는 2014년 서점을 ‘거류출판사(巨流出版社)’ 관계자에게 매각했고, 점장으로 계속 서점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부터 베이징 당국은 홍콩의 독립서점과 정치 관련 출판물을 겨냥한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흐름 속에서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련 인물들이 잇따라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도화선이 된 책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사생활을 다룬 《시진핑과 6명 여인(習近平和他的六個女人, Xi and His Six Women)》이었습니다. 해당 출판을 둘러싼 움직임이 이어지던 가운데, 2015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 5명이 차례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이 중 린룽지는 홍콩에서 중국 선전으로 이동하던 중, 갑작스럽게 신체가 구속되고 이동이 제한되는 상황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약 8개월 동안 그는 중국 본토에서 구금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코즈웨이베이 서점에서 출판 예정이었던 《시진핑과 6명 여인》은 결국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 사진: 구글 플레이 도서
그는 수감 기간에 극단적 생각까지 했지만, 힘겨운 구금 끝에 자백서를 작성하고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점 고객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홍콩에 돌아갔습니다. 사건이 알려진 후 홍콩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그를 지지했는데요. 격려를 받은 린룽지는 결국 기자회견을 통해 구금 과정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이 선택을 계기로 그는 중국 정부에 맞서는 인물로 주목받게 되었죠.
타이베이에서 재출발한 코즈웨이베이 서점 ✨
2019년 신변안전을 위해 타이완으로 망명한 후,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재개를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금 조달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중국 정부의 조사를 받거나 위협당하는 등 사건이 이어졌는데요. 그럼에도 크라우드 펀딩으로 하루 만에 600만 뉴타이완달러(한화 약 2.9억 원)를 모이며 타이베이에서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재출발한 서점은 대문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중국 정부와 관련된 서적을, 오른쪽에는 역사와 철학, 문학 작품을 배치하며 운영되었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중국과 홍콩의 현실을 알리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코즈웨이베이 서점 타이베이 재개의 크라우드 펀딩 홍보 사진 - 사진: flyingV
하지만 설령 자유가 보장되는 타이완에서도 위협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개점을 일주일 앞두고 린룽지는 ‘코즈웨이베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페인트 테러까지 당했습니다. 이는 이 서점이 지닌 상징성과 그 배후에 있는 중국의 세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당시 차이잉원 총통은 코즈웨이베이 서점을 방문해, “자유로운 타이완이 홍콩의 자유를 지탱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민주화 이전의 타이완이 홍콩을 통해 다양한 금서를 접했던 역사처럼, 이제 타이완은 홍콩의 대피항이 되어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린룽지 별세 이후,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앞날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가 정신은 타이완과 홍콩의 시민사회에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漂洋過海的書架,「『銅鑼灣書店』創辦人林榮基:從香港到台灣,一個漂泊書商的文化使命」,琅琅閱讀。
2. 陳彥廷、陳亭均,「銅鑼灣書店林榮基70歲肺腺癌逝…在港被失蹤8個月後流亡來台:重開店給我希望,也是台人遠離親中的警醒」,今週刊。
3. 楊智強、李雪莉,「【銅鑼灣書店在台重啟】專訪林榮基──一位『賣書佬』的反抗」,報導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