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 6시 반, 다들 편안한 공간에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시나요? 일주일의 첫 단추를 끼우느라 오늘 하루 유난히 바쁘고 고단하셨을 것 같습니다.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한숨을 돌리며 이제 막 저녁 시간을 준비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하루도 정말 애썼다"고 스스로에게 나직하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이 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기분 좋은 '느슨함'을 선물하는 타이완의 독보적인 뮤지션 한 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타이완 인디 신과 Z세대 사이에서 '나만 알고 싶은 아티스트'로 시작해, 이제는 타이완 대중음악계의 거물급 신인이 된 1998년생 뮤지션, 천시엔징(陳嫺靜)입니다.
천시엔징은 재즈와 R&B, 로파이(Lo-Fi), 그리고 일렉트로닉 힙합 비트 위에 자신만의 가사를 얹어내는, 아주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고등학교 때 타이완의 유명 래퍼 '단바오(蛋堡)'의 음악을 듣고 힙합에 빠진 천시엔징은, 대학 시절 타이완 인디 힙합의 산실로 통하는 국립정치대학교 동아리 '정대흑인음악사(政大黑音社)'에 가입하게 됩니다. 2018년 동아리 부원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랩을 하는 단체 곡(Cypher)을 발표했는데요. 이때 천시엔징의 랩 파트가 타이완 힙합 팬들 사이에서 꽤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힙합 신에서 유행하던 빠르고 강한 트랩 비트의 랩들과 달리, 혼자서 박자를 자유롭게 밀고 당기며 나른하게 읊조리는 독특한 랩 플로우를 보여주었거든요. 기존의 전형적인 랩 구조와는 다른 신선한 매력 덕분에 커뮤니티 등에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냐"며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형 기획사의 자본이나 홍보 없이, 자신의 방에서 작업한 곡들을 음악 플랫폼과 유튜브에 올리며 리스너들 사이에서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천시엔징은 시적인 문장들을 사용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가사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8년에 발표한 <누군가 우리가 그리 깊지 못하다고 책망하네(有人責備我們不夠深入)>라는 곡은 타이완의 유명 시인인 샤위(夏宇)의 동명의 시를 랩으로 개사해 부른 곡인데요. 이처럼 문학적인 텍스트를 음악적인 언어로 영리하게 풀어내는 면모가 천시엔징 음악의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가사를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일상의 단면이나 여백, 읊조리는 듯한 말투를 사용해 Z세대의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노래 구조 역시 전통적인 대중음악의 형식을 깨뜨리고, 멜로디에 음을 얹기보다 말하듯이 툭툭 뱉어내는 나른한 랩과 구어체 표현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미학을 보여주죠.
이러한 독창적인 가사 스타일과 시선은 그녀의 다른 곡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오늘 함께 들으실 첫 곡인 <가볍게(輕輕)> 역시 아주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이 노래는 사실 천시엔징이 첫눈에 반한 '푸른발얼가니새'라는 새에게 바치는 러브송입니다. 자신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주인에게 투정을 부리고 애정을 갈구하는 귀여운 시선을 담고 있죠.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새소리와 로파이(Lo-Fi)한 비트, 그리고 "나를 가볍게 뽀뽀해 줘"라고 속삭이는 나른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입니다.
유튜브에서 4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리스너의 사랑을 받은 그 곡, 천시엔징의 <가볍게> 듣고 오겠습니다.
천시엔징의 <가볍게> 듣고 오셨습니다. 귀가 아주 편안해지는 매력적인 곡이죠?
이 곡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타이완의 유명 뮤지션들이 그녀에게 많은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정이농(鄭宜農)이나 데카조인스(deca joins) 같은 인디 뮤지션들과 협업했을 뿐만 아니라, 우칭펑(吳青峰)과 천산니(陳珊妮) 같은 주류 음악계의 거장들도 천시엔징의 작품을 공개적으로 극찬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보적인 패션 감각으로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의 공식 글로벌 인스타그램에 타이완 래퍼 최초로 소개되기도 했고, 드라마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人選之人—造浪者)>의 OST로 타이완의 방송대상인 금종장 주제가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7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그녀의 첫 정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제목부터가 아주 직설적이고 현대적인데요. 바로 《만약 매일 매일이 happy happy 할 수 있다면 누가 sad 하고 싶겠어:))(如果每天都可以 happy happy 誰想要sad)》라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으로 천시엔징은 올해 타이완 최고 권위의 음악상인 '금곡장(金曲獎)'에서 여자가수상, 신인상, 올해의 노래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최고의 화제 인물이 되었고, 당당히 '최우수 신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시상식에서 재밌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레드카펫에서는 멋진 블랙 슈트를 차려입었던 그녀가, 정작 상을 받으러 올라가고 축하 무대를 할 때는 평소 자신이 입던 헐렁한 흰색 후드티에 뿔테안경을 쓰고 나타난 건데요. 시상식 직후 타이완 인터넷에서는 "공식 석상에 예의가 아니다"라는 의견과 "가장 천시엔징답고 음악의 본질을 보여준 행동이다"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나중에 천시엔징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처음엔 저도 큰 시상식이라 무서워서 슈트를 계속 입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진짜 무대에 설 기회가 온다면 가장 나다운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지극히 평범하지만 좋은 일들에 감사하며 살자'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평소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오늘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들려드릴 곡이 바로 이번 금곡장 신인상의 영예를 안겨준 이 앨범의 동명의 타이틀곡입니다. 이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스케줄은 그 누구보다 빽빽하게 짜여 있는데, 돌아서면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려"
"물고기가 한 바퀴, 또 한 바퀴 헤엄치는 걸 바라봐.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아서 어디로 가려는 걸까. 길 위를 걷고 또 걸어. 걷고 또 걸어서 어디로 가려는 걸까?"
쉼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자아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 때, 정처 없이 길을 걷는 현대인들의 방황을 참 덤덤하게 그려낸 노래입니다.
천시엔징은 이처럼 전통적인 힙합음악의 형식을 깨뜨리고, 노래와 독백을 오가는 나른한 목소리로 귀가에 대고 가만히 속삭이듯 노래합니다. 정보가 쏟아지는 타이트한 일상 속에서, 시장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취약함`과 불안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진심이 Z세대의 초조함과 외로움을 가만히 다독여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밤, 복잡한 생각과 빽빽한 일정은 잠시 내려놓고 천시엔징의 <만약 매일 매일이 happy happy 할 수 있다면 누가 sad 하고 싶겠어>를 들으시면서 조금은 'happy happy'한 마음으로 월요일 저녁을 마무리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멜로디 가든> 진행에 진옥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