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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혁명 60주년 회고, 포스트 시진핑시대 전망(1)-2026.07.20.(월)-시사평론-

‘문화대혁명’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중국 지도부 성격 및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특별강연과 좌담회가 페이윈드재단 주최로 6월27일(토) 오후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우궈광(吳國光) 교수가 이날 특강을 통해 직접 경험한 문화혁명과 문화혁명이 오늘날의 중공 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 깊이있는 강의를 진행하였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문화대혁명’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중국 지도부 성격 및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특별강연과 좌담회가 페이윈드재단 주최로 6월27일(토) 오후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우궈광(吳國光) 교수가 이날 특강을 통해 직접 경험한 문화혁명과 문화혁명이 오늘날의 중공 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 깊이있는 강의를 진행하였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문화대혁명’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중국 지도부 성격 및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특별강연과 좌담회가 페이윈드재단 주최로 6월27일(토) 오후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페어윈드재단 쟝이화(江宜樺, 좌1) 이사장은 이날 좌담회 사회를 맡았다. 연사 우궈광(吳國光, 중앙), 토론인 장덩지(張登及, 우1) 교수.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문화대혁명’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중국 지도부 성격 및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특별강연과 좌담회가 페이윈드재단 주최로 6월27일(토) 오후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페어윈드재단 쟝이화(江宜樺, 좌1) 이사장은 이날 좌담회 사회를 맡았다. 연사 우궈광(吳國光, 중앙), 토론인 장덩지(張登及, 우1) 교수.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문화대혁명’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중국 지도부 성격 및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특별강연과 좌담회가 페이윈드재단 주최로 6월27일(토) 오후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좌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우궈광(吳國光) 교수.-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문화대혁명’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중국 지도부 성격 및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특별강연과 좌담회가 페이윈드재단 주최로 6월27일(토) 오후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좌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우궈광(吳國光) 교수.-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문화혁명 60주년 회고, 포스트 시진핑시대 전망(1)

-2026.07.20.()-양안 ㆍ시사평론-


-20세기 인류 최악의 인재人災: 문화대혁명

-재마오화再毛化 가능성: 마오저둥 시대의 방식으로의 회귀 가능성 진단

-포스트 시진핑시대 전망


(오프닝)2026, 올해는 중국 대륙에서 문화대혁명 발발한 60주년이자, 종결된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가 소학교(초교) 시정 신문에서 문화대혁명관련 보도 사진을 보고 그 내용은 잘 몰라도 극히 두려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화대혁명의 피해자였던 학자가 관련 서적을 출판하여 대학원 과정에서 집중 공부를 하다가 포기한 것도 그 10년의 경험담 자체가 필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 본다고 그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올해 마침 중국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지 어느덧 벌써 한 갑자가 되었다.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는 별개로 반드시 그 문제를 직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기에 올해 문화대혁명을 주제로 하는 특별강연을 청취하고자 627() 오후 다녀왔다. 이날 연사는 문화혁명 기간의 피해자이기도 하나 그의 발표는 분노나 슬품을 파는 거라고는 티클만치도 없었고 개인의 경험과 철학 그리고 객관적인 정치평론으로 이미 지난 10년의 재앙과 더불어 중국국가주석 시진핑이 이끄는 중공 지도부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 보는 내용이어서 더욱이 존경스러운 학자라는 감동을 받은 주말 오후였다.

필자 개인적으로 문화대혁명 20세기 최악의 인화(인재人災)라고 본다. 10년의 세월 동안 붉은 깃발 아래서 살아남은중국인들은 어떠한 심리로 60년 전의 장장 10년의 재앙을 다시 바라볼 것인가?

오늘날의 중국 지도부는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을 포함해 대부분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의 성격과 통치 방식이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와는 뚜렷이 다르게 형성되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보며, 또한 문화대혁명이 지금의 중국 정치와 사회 발전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화대혁명을 회고하고 포스트 시진핑시대를 전망하는 특강이 627() 오후 국립타이완대학교 국제회의센터에서 열렸다. 특강의 연사 정치학자 우궈광(吳國光, 중국 국무원 총리 리커창과 베이징대학교 동기이며, 과거 중국공산당 고위층과 관영 매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음)교수는 문화대혁명의 단계와 내용, 당시 사람들의 생활 경험을 분석했으며, 특히 문화대혁명이 당시 청년들의 교육에 미친 충격을 강조했다. 강연에 이어 국립타이완대학교 정치학과 장덩지(張登及)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하여 그의 관찰을 공유하였고, 마지막으로는 페어윈드 쟝이화(江宜樺) 이사장의 사회로 좌담을 가졌다. 대강당은 계단까지도 청중들로 가득 매워졌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회고하며 발생의 원인과 그 후의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프스트 시진핑 시대를 전망하는 주제를 오늘 시사평론을 시작으로 시리즈로 방송하며, 연사 우궈광 교수에 대한 소개는 본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중국공산당 정치의 변화는 중국 전체 발전을 이해하는 핵심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이날 특강과 대담은 역사제도주의의 관점에서 문화대혁명의 배경, 메커니즘 동태적 변화를 분석하고, 나아가 문화대혁명과 중국공산당 정치제도 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마오저둥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재마오화(再毛化)’ 현상이 현대 중국에서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특강 연사 우궈광 교수는 교육사적 관점에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학력 배경을 '노대학생(老大學生, : 자칭린), '5(老五屆, : 후진타오), '공농병 학생(工農兵學員, : 시진핑), '3(新三屆, : 리커창) 등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학력 구분 해설은 홈페이지 참조 요망)

중공 19차 및 20차 당대회에 이르러 공농병 학생 출신은 4명에서 5명으로, 신삼계 출신은 1명에서 2명으로 각각 늘어났고, 특히 19차 당대회에서는 2명이 정규 고등교육 학력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문화대혁명 특강_우궈광1 

문화대혁명의 유산과 현대 중국 정치에 대해 우 교수는 권력지상주의ㆍ 기층 사회 경험ㆍ 개인숭배ㆍ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면서, 문화대혁명과 중국공산당 정치제도는 내재적인 메커니즘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과 시대 배경은 총체적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가한다. 페어윈드 쟝이화(江宜樺) 이사장은 이날 좌담회를 개최하기에 앞서 문화대혁명은 중국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가장 심각한 재난이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현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공 지도층은 60 대부분이 중학생이나 대학생이었다. 그들은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학제 중단, 하방(상산하향), 파벌 투쟁, 심지어 가족과 서로 가차 없이 투쟁해야 하는 격동의 경험을 겪었고, 이러한 깊은 삶의 경험이 오늘날 국가의 핵심 직책에 오른 그들의 지도 스타일과 중대한 정책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문화대혁명을 되돌아볼 반드시 규명해야 핵심 과제라며 이날 강연과 좌담의 중점을 제시했다.

역사적 제도주의(Historical Institutionalism: 시기, 순서 및 경로 의존성이 제도에 어떻게 미치고 사회적ㆍ정치적ㆍ경제적 행동 및 사회 변천을 형성하는지를 강조하는 신제도주의 사회과학 접근 방식임) 관점: 문화혁명의 내재적 논리와 당권 지상주의의 유산.

우궈광(吳國光) 교수는 문화대혁명의 역동적인 역사를 되짚으며, 초기의사구(四舊)타파(破四舊: 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을 없애겠다는 파괴 운동)’와조반(造反권력 탈취(造反奪權: 문화대혁명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으로, 대중운동(홍위병 등)이 기존 권력 구조를 무력으로 흔들고 실권파를 축출·처벌하는 과정)’가전면적 내전’으로 이어졌고, 이후 마오저둥이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군사통제를 실시하면서 린뱌오 세력이 부상하였고, 결국 린뱌오 사건(암살로 추정되는 1971913일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에는 이념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우궈광은 정치학자로서 자신은 제도적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고 말했다.

세간에서 중국공산당 전 지도자 마오저둥과 지금의 시진핑을 종종 비교하고 있다. 그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하리라 본다. 우궈광 교수는, 성격적 특성에서 마오저둥은 비록깡패 기질이 강한 문인’이었지만, 어쨌든문인’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시진핑에게서는 그러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즉 시진핑은 독서를 즐긴다고는 하나 문인적인 특성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중국공산당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일탈이었는가, 아니면 중국공산당 내부 정치제도의 특수한 표현이었는가는 각계에서 문화대혁명의 역사를 정리할 때 자주 직면하는 문제이다. 우궈광 교수는 문화대혁명 전후 중국의 정치 상황은 달랐지만, 공산당의 권력 독점이라는 점만큼은 바뀔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즉 우 교수는 문화혁명은 중공 내부 정치제도의 특수한 표현에 가깝다는 것인데, 비록 각급 당위원회는 타도되었지만, ‘이라는 추상적인 체계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며 단지 다른 당원들이 집권했을 뿐이라는 것이고, 또한 오늘날과 가장 큰 차이는 마오저둥 시대에는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이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문화대혁명의 공식적인 목표가계급투쟁을 중심으로 삼고, 프롤레타리아(무산 계급) 독재 아래에서 계속 혁명을 추진하여 자본주의의 부활을 막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면서, 그렇지만 문화대혁명 자체는 매우 모순적인 복합체여서 한편으로는 마오저둥 개인숭배와 광범위한 대중 동원을 결합하면서도 동시에 중국공산당 각급 간부와 이른바 계급의 적을 공격했다. 또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이상을 높이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권력정치, 파벌투쟁, 폭력적 독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핵심 논리는권력지상주의’와당권 지상주의’였으며, 이는 1967인민일보사설에서 말한권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권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에서 잘 드러났다. 린뱌오 역시정권이란 곧 탄압할 권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노동자·농민·상인·학생·군인,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구호가 유행했으며,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당정군민학(黨政軍民學),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고 강조해 양자 사이에는 뚜렷한 호응 관계가 존재한다.

문화대혁명은 또한 이념의 역설을 낳았다. 이념을 높이 내세웠지만 결국 이념 자체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언어, 마오 어록, 정치 구호를 사용하는 법을 익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언어가 권력투쟁과 개인의 이익을 포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이상주의와 냉소주의가 공존하고, 정치 구호와 권모술수가 함께 존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문화대혁명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것은 여전히 제도적 기억, 정치적 인격, 그리고 권력 기술이라는 형태로 현대 중국 정치 속에 축적되어 남아 있다.


1966~1976년 사이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를 맞으며 사회화 과정을 마친 세대들이 바로 문화대혁명 세대들이다. 그들은 1940년대 말기에서 195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로 시진핑도 이에 속한다. 이날의 특강 연사 우궈광 교수와 전 중국 총리 리커창도 그 세대 사람들이다.

오늘(7/20) 시사평론은 여기에서 문화대혁명 60주년 회고와 포스트 시진핑 시대 전망’ 1부를 마치고, 오는 주말(7/25) 주간시사평론에서 해당 주제의 2부를 이어갈 예정이다. -白兆美 / 취재ㆍ사진: 백조미


문화혁명 60주년 특강(2026.06.27.) 연사 우궈광(吳國光) 교수 소개: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University of Victoria) 정치학과 교수, 역사학과 교수, 중국연구 및 아시아·태평양관계 석좌교수.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베이징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치, 비교정치경제학, 중국 정치, 세계화이다.

대표 저서로는 China’s Party Congress: Power, Legitimacy, and Institutional Manipulation(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 2015. 중국어판 『권력의 극장: 중국공산당 당대회의 제도적 운영』, 홍콩 중문대학교 출판부, 2018) Globalization Against Democracy: A Political Economy of Capitalism after its Global Triumph(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 2017. 중국어판 『반민주적 세계화: 자본주의의 세계적 승리 이후의 정치경제학』, 홍콩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 2020)이 있다.

우궈광 교수는 문화혁명이 폭발할 때 9살이었고, 1974년 고졸 후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으로 재배치, 재교육을 받으며 1977년에는 고향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의 면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고등교육 고시가 1977년말에 회복되면서 베이징대학교에 합격해 중문학과에서 신문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대학원생) 신문학과에 합격해 당시 <인민일보> 평론부 주임(판룽캉范榮康, 후에 인민일보 부총편집인을 맡음)에게 정치평론을 공부했고, 1984년 석사학위 취득 후 중국사회과학원 원장 마홍(馬洪, 그는 당시 중국 국무원 부비서장, 국무원 기술경제연구센터 총간사를 맡고 있었음)의 비서를 하게 되었으며, 우궈광은 또한 <2000년의 중국> 연구 항목 총보고의 주요 기초자 중의 한 명이기도 하였다.

1985년 여름, 우궈광은 <인민일보> 평론부의 편집 및 평론원이 되었는데, 그는 1986830 <인민일보> <정치문제는 토론할 수 있다>는 제목의 평론을 발표했다. 그 내용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 / 국민은 법률 규정에 따라 각종 방식과 형식으로 국가 사무를 관리한다 / 공민(公民)이 언론과 출판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있는 건 헌법에 엄숙하게 규정이 되어 있다 / 정치 이슈에 대해서 각자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고 토론하며 변론하는 건 헌법이 모든 공민에게 부여한 신성하며 박탈할 수 없는 권리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평론이 발표된 당시, 즉각적이며 광범위한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다만 그 문장은 고위층 지도자의 비판을 받으며 그가 준비해 둔 기타 평론문장은 발표되지 않았다고 우궈광은 회상했다.

1987년 봄, <인민일보> 평론부 주임편집인으로 승진된 우궈광은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에 관한 사설과 논평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 그는 자오즈양(趙紫陽)이 조장(組長)을 맡고 있는 중공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토론소조 판공실(당시 판공실 주임: 바오퉁鮑彤)에 전보되어 일하며, 중공 13대 전후 정치개혁정책의 연구와 제정 업무에 참여하였고 중공 13대 보고서 중의 정치개혁 부분의 집필자 중 한 명이었으며, 중공 12 7중 전회에서 원칙적으로 통과한 정치체제개혁총체구상의 주요 집필자 중 한 명이었고, 자오즈양을 위해 1987‘513담화등 여러 중요한 담화문의 기초자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자오즈양의 개혁 구상이 순조롭지 못하였다는 건 주지하는 사실이다.

우궈광은 19892월 미국으로 건너가 학술기관 연구원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의 중견 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율형 연구 학습 프로그램 니먼 펠로우십,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 박사학위 취득,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 중국연구센터 포닥(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1996년에는 홍콩중문대학교 교수, 2004년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중국연구 및 아시아태평양 관계 강좌교수 겸 정치학과 교수, 역사학과 교수, 2022년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프리먼 스포글리 국제학 연구소 중국경제와 제도연구센터 고급연구원 및 미국 아시아주협회 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 고급연구원을 담당하고 있다.


문화혁명 전후, 중공의 세대 명칭 구분

세대 명칭

역사적 배경과 정의

대표적 인물

노대학생

1966년 문화혁명 이전에 정규 고등고시를 통과하여 입학하였고 완전한 고등교육을 받은 자.

자칭린, 류윈산, 장가오리

5

1966~1970년 사이에 졸업한 대학생(1961~1965년 사이에 입학), 재학 당시 문화혁명에 휩싸이며 졸업 후에는 대부분 기층 노동에 파견됨.

후진타오

공농병 학생

1970~1976년 사이 고등고시가 중단되었을 때 기층 추천 입학을 한 공인(노동자), 농민과 사병.

시진핑, 왕치산

3

1977, 1978, 1979년에 고등고시가 회복된 시작 단계 해당 3년 사이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대학에 입학한 엘리트들.

리커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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