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고린도전서 9장 22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라틴어로는 ‘Omnia Omnibus(옴니부스 옴니아)’, 영어로는 ‘Being all things to all’이라고 불리는 이 구절은, 자신의 신분이나 편견,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타인의 삶과 아픔 속으로 온전히 걸어 들어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을 뜻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성경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다큐멘터리 영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為一切人,成為一切, All Things to All)》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쟁 직후의 황폐함과 정치적 불안 속에서 물자도, 도로도 부족했던 타이완. 멀리 유럽의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신부 100여 명이 배를 타고 타이완 동부, 화롄과 타이둥의 험준한 산간 오지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보내며 이방인이 아닌 ‘타이완 원주민 부족의 진짜 가족’으로 살아갔습니다.
오늘은 70여 년의 세월 동안 타이완 동부 오지를 밝혀온 푸른 눈의 신부님들의 가슴 뭉클한 삶의 궤적을 차분히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는 프랑스에서 30여 년간 예술과 인류학을 공부한 리슈춘(李秀純) 감독이 무려 6년 동안 타이완 동부에 직접 거주하며 완성한 대작입니다.
500시간이 넘는 영상 기록, 그리고 유럽 파리외방전교회 보관소에 잠들어 있던 희귀한 흑백 사진과 필름들을 최초로 공개하며 타이완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타이완 동부 오지에서 평생을 바친 네 명의 천주교 신부가 있습니다. 화롄 주민들에게 ‘위리(玉里) 지역의 아빠’로 불리는 이브 모알(Yves Moal, 劉一峰) 신부, 원주민 소녀들의 수호자 가브리엘 델리즈(Fr. Gabriel Délèze, 戴宏基) 신부, 그리움 속에 세상을 떠난 페코라로(F. Pecoraro, 牧德全) 신부, 그리고 가난한 농민의 버팀목이었던 모리스 푸앵소(Maurice Poinsot, 潘世光) 신부입니다.
사실 타이완에서 천주교의 역사는 깊습니다. 17세기 대항해 시대 스페인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청나라 말기 도미니코회가 재진입했지만 당시엔 한족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방편인 경우가 많았죠. 일제강점기에는 강력한 원주민 정책으로 선교 활동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49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 무신론 공산당에 의해 쫓겨난 외국인 신부들이 타이완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비로소 산간 오지 원주민들에게 의료와 교육, 복지 혜택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정부나 일본 총독부처럼 위에서 아래로 통치하며 강제로 문화를 이식하려 했던 거대 권력들과 달리, 이 외국인 신부들은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를 택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가르치려 들지 않고요, 주민들과 똑같이 땀 흘려 일하고 언어를 배우며 원주민 부족의 전통문화와 신앙을 깊이 존중해 준 거죠.
그중에서도 올해 85세인 이브 모알 신부는 60년 전, 스물다섯의 나이에 타이완에 왔습니다. 화롄 위리 지역에 안착한 이브 모알 신부는 소외된 아동과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한편, 장애인을 위한 전문 복지 시설인 '앤드류 장애인지원센터(安德啟智中心)'와 '이펑원(怡峰園)'을 설립했습니다.
특히 신부가 추진한 ‘자원순환 재활용 사업’은 유명한데요. 길거리에서 자원수거 트럭을 직접 몰며 출소자나 사회 적응이 힘든 이들에게 일자리와 삶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최근 샤오메이친(蕭美琴) 부총통도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과거 화롄 지역 입법위원(대한민국 국회의원 격)으로 일하던 시절, 거리에서 트럭을 몰며 약자들을 보살피던 이브 모알 신부의 모습을 늘 보아왔다면서 말이죠. 그러고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울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따뜻한 소회를 남겼습니다.
특히 시사회 현장에서는 악기 반주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화음을 만드는 아카펠라 그룹 Voco Novo(爵諾, 보커 노보)의 특별한 무대도 펼쳐졌는데요. 영화에 삽입된 곡인 〈바람을 기다려(等風)〉와 〈옛날 옛적에(古早古早)〉를 무반주 아카펠라로 선보여, 상영관 가득 깊고 우아한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현장의 감동을 그대로 담아서, 보커 노보가 부르는 〈옛날 옛적에(古早古早)〉 들려드립니다.
보커 노보의 〈옛날 옛적에(古早古早)〉 듣고 오셨습니다.
이 신부들이 타이완에 남긴 유산은 단순히 종교적 전도나 사회복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원주민 문화 보존에 무관심하던 시절, 신부들은 원주민 언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직접 사전까지 편찬했는데요.
대표적으로 페코라로 신부는 타이루거족(太魯閣族) 부족민들과 17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현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습니다. 자칫 사라질 뻔했던 전통 제례 의식의 어휘까지 하나하나 수집해 ‘타이루거어 사전’을 편찬했습니다.
또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직접 염소를 키워 젖을 짜주고, 지주에게 수탈당하는 소작농들을 위해 부친에게 받은 유산으로 땅을 사서 나눠주기도 했죠.
하지만 1971년, 잠시 프랑스로 돌아갔던 페코라로 신부는 시대의 격변과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휘말려 끝내 타이완 재입국을 거부당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타이완 땅을 다시 밟지 못한 그는, 프랑스 묘지 한옆에 직접 꽃을 심어 타이완 지도 모양을 정성스레 가꾸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마음은 타이완 동부의 부족 마을에 온전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어린 원주민 소녀들이 인신매매나 성매매에 희생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목소리를 내며 《소년복지법》 제정을 이끌어낸 가브리엘 델리즈 신부,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도시로 떠나는 주민들의 안부를 일일이 챙기던 모리스 푸앵소 신부, 그리고 언어적 재능이 부족하다며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수십 년간 원주민들의 생생한 역사 수만 장을 사진으로 남긴 피에르 페켈스(Fr. Pierre Peckels, 彭光遠) 신부까지...
이 귀한 기록들은 하마터면 쓰레기로 버려질 뻔했으나, 수많은 노력 끝에 겨우 보존되어 오늘날 영화를 통해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리슈춘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가리켜 “내가 타이완이라는 땅에 바치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언어도 달랐지만, 결국에는 타이완 원주민의 진짜 식구가 되어 자신의 묘지마저 부족 마을에 남긴 신부들...
원주민 부족의 어르신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역사 속 증인들이 사라져가는 지금, 아무런 대가 없이 한평생을 바쳐 타이완과 타이완 사람들을 사랑했던 이들의 발자취는 더욱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신부들이 왜 그토록 이 땅과 사람들을 사랑했는지’를 되돌아보고, 나아가 모두가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며 각자의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오늘 밤은 그 다정한 진심을 가만히 새겨보며, 스스로와 주변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예계 소식〉,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클로징 곡으로는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노래죠, 톈푸전(田馥甄)이 부르는 〈LOVE!〉 들려드리면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진옥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