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 60주년 회고, 포스트 시진핑시대 전망(2)
-2026.07.25.(토)-주간시사평론-
-20세기 인류 최악의 인재人災: 문화대혁명
-재마오화再毛化 가능성: 마오저둥 시대의 방식으로의 회귀 가능성 진단
-포스트 시진핑시대 전망
(오프닝)1966년~1976년 사이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를 맞으며 사회화 과정을 마친 세대들이 바로 ‘문화대혁명 세대’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고 또 어떻게 오늘날의 중국 정치를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나중엔 예전 마오저둥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대재앙을 몰고 올까?
7월25일(토) 주간시사에서는 7월20일(월) 시사평론에 이은 2부를 계속하며, 흥미있으신 분은 7월20일 타이완 ㆍ한반도 ㆍ양안관계 프로그램 홈페이지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 랍니다.
특강의 연사 우궈광 교수는 문화대혁명이 현대 중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면 핵심은 ‘문화대혁명 세대’가 어떻게 정치적 사회화를 완성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즉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바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의 사회화 과정을 마친 세대들이다.
그는 또한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 분류를 인용해 중국공산당의 정치 변화를 '과두정(oligarchy: 소수의 사람/집단이 사회의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체제)'과 '참주정(tyranny: 독재, 하층 민중의 불만을 이용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독재 정치를 펴는 것)'의 반복으로 설명했다.
우 교수는, 이 시기에 벌어진 ‘상산하향(上山下鄉) 운동’이 문화혁명이 종결된 1976년 이후에 받은 평가가 완연 다른 점을 들었다. 상산하향 운동은 원래 ‘농촌으로 가자, 변방지대로 가자, 조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자’라는 구호와 함께 ‘상산하향’ 자체는 ‘영광’이다라는 정치적 호소로 선전되었는데, 문화대혁명 발발 10년 후, 1976년 이후 많은 지식청년들은 이 경험을 점차 고발과 성찰의 대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고발해야 한다, 우리는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는 집단적 정서를 형성하였다. 우 교수는 이러한 영광의 서사에서 삶이 소모되고 청춘이 지연되었다는 인식으로의 전환은 문화대혁명 세대의 정치 심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연사도 문화대혁명 세대이다. 시진핑도 1950년대에 태어나 문화혁명은 그의 청년기 성장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원로 시중쉰(習仲勛)의 아들로 고위 간부 자제였지만, 시중쉰은 1962년에 이미 숙청되었다. 현재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시진핑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흑방자제(黑幫子弟), 흑색분자자제(黑幫, 고위층 관원을 비하하여 부르는 명칭)’로 간주되어 비판투쟁을 당했고, 거리에서 떠돌아다니기도 했으며, ‘학습반’에 수용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1969년 문화대혁명 중 산시(陝西)성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로 하방(下放)되어 생산대에 배치(插隊)된 뒤에야 끝났다.
시진핑은 1975년 ‘노동자·농민·사병 학생’ 신분으로 칭화(淸華)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공부했고, 1980년에는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 겅뱌오(耿飆)의 비서가 되었다. 우궈광은 이것이 문화대혁명 후기에, 특히 량자허에서 입당한 이후의 시진핑이 ‘팔자를 고친’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시진핑의 정치 경력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비록 시진핑은 자신을 ‘량자허 대학’ 졸업생, 또는 ‘량자허 대학’에서 ‘칭화대학교’로 나아갔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 교수는 그 세대가 문화대혁명에서 배운 중요한 관념은 바로 ‘권력 지상주의’ 또는 ‘당권 지상주의’였고, 권력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며, 이는 문화대혁명 초기의 전체 논리가 ‘권력 쟁탈’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필자가 매년 3월 중공 최대 정치 행사로 간주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관련 타이완 학자들의 토론 분석을 듣고 취재해 오고 있다. 또한 중공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 4차 회의(4중전회) 관련 취재도 해마다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이때 중공 중앙의 후계자 발표가 있게 마련이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에 이어 2012년 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한 후 2013년 봄에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 되었는데, 집권 15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후계자 발표가 없어서 그가 과두정에서 참주정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혁명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후계자 경쟁이었다. 당시 이는 단지 마오저둥 개인의 후계자 문제만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말하는 ‘무산계급 혁명 사업의 후계자’를 양성하고 선발하는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중·후기에 중국공산당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와 ‘노·중·청 3세대 결합(老中青三結合)’을 제기하며 대규모로 젊은 간부를 발탁했고, 일부는 원래 경력이 매우 짧았음에도 빠르게 고위층에 진입했다. 권력의 변화는 간부 선발 메커니즘의 왜곡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덩샤오핑(1904~1997년)은 1980년대에 문화대혁명의 ‘세 부류의 사람(三種人, 문화대혁명 기간 반란을 통해 출세한 사람들/ 패거리(파벌) 의식이 심한 사람들/ 파괴·약탈·강도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뜻함)’을 제거하기 위해 ‘간부 4화(幹部四化, 혁명화 ㆍ젊은층화 ㆍ지식화 ㆍ전문화)’를 제시했지만, 1989년 톈안먼(천안문)사태가 발발하며 ‘문화대혁명이 다시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책 결정층은 역설적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혜택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던 노동자·농민·사병 학생들을 중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오늘날 제20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노동자·농민·사병 학생 출신은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대체로 원칙이 부족한 기층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인간관계의 처세술, 파벌 형성, 그리고 이념을 이용해 정치적 의도를 포장하는 생존 법칙을 몸소 체험하여 알게 된 사람들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마오저둥은 개인독재가 절정에 이른 사례였다. 문화대혁명 이전에는 공산당 내 과두 지도부 사이에서 마오저둥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지만, 다른 지도자들 역시 일정한 권력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마오와 그들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 관계도 존재했다. 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정권을 이어받은 전 중국공산당 지도자 화궈펑은 개인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중국공산당은 과두정치 체제로 전환되었다.
덩샤오핑 시대에 가장 큰 변화는 1989년 6·4 톈안먼 사건에서 나타났다. 덩샤오핑은 무력 진압을 결정하기 전에 중공 과두정치체제 내의 다른 지도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천윈(陳雲, 1905~1995년)을 비롯한 당시 공산당 원로들은 큰 불만을 품었으나 공산당 전체의 공동 이익을 위해 천윈은 결국 덩샤오핑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덩샤오핑은 ‘내가 있는 한 내가 결정한다와 같은 발언은 천안문(톈안먼)사건 발발 10년 전 1979년 그가 미국을 방문한 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처럼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본다. 덩샤오핑 이후 장저민(1926~2022년)과 후진타오(1942년생) 시대는 흔히 '구룡치수(九龍治水: 본래는 고대에 가뭄이나 홍수를 예측하는 기상 용어로 쓰였으나,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는 데 서로 관련성이 없는 부문들이 공동 관리를 하며 각자의 의견을 고집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함을 의미할 때도 쓰임.)'라고 불릴 정도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에는 과두정치 체제가 다시 고도로 권력이 집중된 개인독재 체제로 전환되었다.
소수의 집단이 정책 결정을 하는 것에서 1인이 독재로 결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진핑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포스트 시진핑 시대에 중국공산당은 다시 과두정치 체제로 회귀할지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우궈광 교수는 과두정으로 돌아갈지 여부는 몇 가지 핵심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날 토론인으로 초청된 국립타이완대학교 정치학과 장덩지 교수는 ‘문화대혁명은 사라지지 않았다’라면서 중공의 통치 스타일은 ‘재마오화’가 아니라 ‘딥스테이트의 강화’라고 주장했다.
오늘(7/25) 주간시사평론에서 전해드린 ‘문화대혁명 60주년 회고와 포스트 시진핑 시대 전망’ 2부를 마치고, 다음주 월요일(7/27) 시사평론에서 해당 주제의 3부를 전해드린다. -白兆美 / 취재ㆍ사진: 백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