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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구가 될 뻔했던 중정기념당 부지❓
타이베이 최고의 번화가를 꼽자면, 역시 타이베이101과 타이베이시정부가 자리한 신이구(信義區)를 빼놓을 수 없죠. 그런데 이 신이구 개발 계획이 원래는 지금 중정기념당 자리에 추진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시간을 1970년대로 거슬로 올라가 보면, 당시 중정기념당이 들어선 부지는 국방부 소유였는데요. 육군사령부의 이전과 함께 이곳을 새로운 상업지구로 개발하려는 계획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1975년, 장제스 총통이 심장병으로 별세하면서 그를 기념하기 위한 ‘중정기념당’ 건립 계획이 추진되었는데요. 이에 따라 예정되었던 상업구 계획은 지금의 신이구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정기념당 단지는 기념당을 비롯해 국가희극원(國家戲劇院)과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 그리고 주변 광장과 정원을 모두 합치면 총 25만㎡에 달합니다. 축구장으로 치면 약 30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인데요. 고대 중국 궁궐을 본뜬 건축물과 거대한 장제스 총통 동상까지, 1980년 완공 이후 오랫동안 타이베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왔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매년 400~70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이기도 합니다.

중정기념당 단지에 있는 국가희극원(國家戲劇院) - 사진: 안우산
민주화의 물결 속, 중정기념당의 새로운 의미 ✨
하지만 1987년 계염령이 해제된 후 민주화와 탈권위주의 의식이 확산되면서, 중정기념당은 타이완의 권위주의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도 인식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1990년 3월, 국회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중정기념당 앞 과장에서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중정기념당을 ‘중정묘(中正廟)’나 ‘장묘(蔣廟)’라고 부르며, 개인숭배와 권위주의 철폐를 호소했습니다. ‘야생백합 학생운동(野百合學運)’이라 불리는 이 운동을 계기로 중정기념당은 타이완 사회운동이 펼쳐지는 장이 되었죠.
▲관련 프로그램:
타이완 역사를 바꾼 '야생 백합 학생운동(野白合學運)'
이렇게 시대 분위기가 극변하면서 중정기념당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는 타이완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타이완 정부 역시 2007년부터 여러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요. 다만 충분한 사회적 힙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관련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타이완 총통 직선제 실시 3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그리고 내년 2·28 사건 80주년이자 계염령 해제 40주년을 앞두고, 오늘은 중정기념당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고대 궁궐을 본떠 설계된 중정기념당 👑
타이베이 지하철을 타고 중정기념당역에서 내리면 지하철역부터 특별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금빛 조각으로 장식된 역명 표시와 궁궐 양식으로 꾸며진 출구, 모두 중정기념당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겁니다.
5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쭉 가면, 웅장한 패루가 보입니다. 높이 30m, 길이 80m의 이 패루는 중국 전통 건축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여겨지는 ‘5칸 6주 11루(五間六柱十一樓)’ 형식인데요. 즉, 5개의 칸과 6개의 기둥, 11개의 지붕으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색깔 역시 중화민국 국기의 ‘청천백일(青天白日)’에서 따온 청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패루 한가운데 편액 위에는 원래 장제스의 이름인 ‘중정’을 상징하는 ‘대중지정(大中至正)’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2007년 천수이볜 총통의 주도로 ‘자유광장(自由廣場)’으로 바뀌었습니다.
중정기념당의 패루 - 사진: 안우산
패루를 지나면 양쪽으로 고대 궁궐을 연상시키는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이 자리하고 있고, 앞으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70m 높이의 기념당 건물이 나옵니다. 기념당은 중국 난징에 있는 순원(孫文)의 능묘 ‘중산릉(中山陵)’을 본떠 설계되었고, 패루와 마찬가지로 청색과 흰색을 중심으로 합니다. 또 ‘중정’의 의미를 바탕으로 정사각형 형태로 지어졌고 정면은 중국 대륙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념당 앞 계단은 89개로 장제스 나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마침내 6m 높이의 동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동성 아래쪽에는 장제스 총통의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 난징에 있는 순원(孫文)의 능묘 ‘중산릉(中山陵)’ - 사진: 위키백과 Jiong Sheng
황제를 알현하듯, 장제스를 마주하다 🫅
이러한 동선은 옛날 왕을 알현위해 궁굴로 들어가는 길과 비슷하죠. 패루를 통과하고, 넓은 광장을 지나고, 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동상을 바라보게 되는 구조인데요. 이 동선 자체가 강한 권위와 숭배의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심지어 양쪽에 있는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의 객석도 장제스 동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중정기념당으로 가는 길 - 사진: 안우산
중정기념당의 건축가 양줘청(楊卓成) 역시 장제스 총통 부부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인데요. 총통 부부의 신뢰를 받은 그는 타이베이와 가오슝의 그랜드호텔(圓山大飯店), 총통 부부가 살던 ‘스린관저(士林官邸)’, 장제스의 묘소인 ‘츠후 능묘(慈湖陵寢)’ 등 여러 대표적인 국가 건축물의 설계를 주도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권위주의의 흔적? 매장되지 않은 장제스, 장징궈 총통 능묘
박정희 대통령과 배우 배용준이 묵었던 ‘붉은 집’ 그랜드 호텔
‘고요한 혁명’에 따른 ‘이행기 정의’의 필요성 🌟
하지만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이 완성된 1980년대 이후, 타이완 사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즉, 장제스 총통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건데요. 특히 1990년에 발생한 ‘야생백합 학생운동’을 계기로, 리덩후이(李登輝) 정부는 헌법 개정과 국회 선거, 총통 직선제 등 일련의 민주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유혈 충돌 없이 정치 체제가 변화했다는 점에서 타이완 민주화는 ‘고요한 혁명(寧靜革命)’이라 평가받기도 합니다.
1990년 발생한 ‘야생백합 학생운동’은 타이완 고유종 식물 야생백합을 운동의 상징으로 했다. - 사진: 위키백과
그러나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시대의 정부조직과 가치관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백색테러 시대에 일어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충분한 진상 규명이나 책임 추궁이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따라서 타이완 사회에서는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화해를 실천하려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모습을 음악으로 담은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타이완 대중음악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뤄다유(羅大佑)의 ‘다들 겁먹지 마(大家免著驚)’입니다. 1991년에 발표된 이 곡은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급격한 경제성장과 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던 타이완 사회를 담아냈습니다. 중정기념당을 비꼬는 표현 ‘중정묘’도 가사에 등장합니다.
정권 교체와 함께 시작된 전환 사업 🏃
2000년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당선되면서 타이완 역사상 첫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천수이볜 총통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중정기념당의 성격을 바꾸기 위한 전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기념당의 이름을 ‘국립타이완민주기념관(國立臺灣民主紀念館)’으로 바꾸고, 이 공간을 타이완 민주화의 역사를 기념하는 장소로 재편하려 한 겁니다. 그러나 1년 후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당선과 함께 관련 정책은 중단되었고, 2016년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 후에야 다시 추진되었습니다.
한때 ‘국립타이완민주기념관(國立臺灣民主紀念館)’으로 이름이 바뀐 중정기념당 - 사진: 위키백과
‘야생백합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당시 문화부 장관 정리쥔(鄭麗君)의 주도로, 여러 변화가 이뤄졌는데요. 기념당 안에서 장제스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거나 ‘장제스 기념가(蔣公紀念歌)’를 방송하는 일이 중단되었고, 장제스 관련 이름을 사용했던 공연장들도 명칭을 바꿨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정리쥔(鄭麗君) 전 타이완 문화부 장관이 번역한 《어린 왕자》
또 2017년 2월 28일부터는 매년 2·28 평화기념일에 하루 휴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22년에는 기념당 내부의 상실 전시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왼쪽에서는 장제스 총통의 생애와 유물을 전시하고, 오른쪽에서는 타이완 민주화 역사를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2년 후에는 장제스 동상 앞에서 진행되던 의장대 퍼포먼스도 야외 공간으로 옮겨졌습니다.

2022년부터 장제스 총통 전시와 타이완 민주화 역사 전시로 나뉜 중정기념당 상설전시 - 사진: 중정기념당 홈페이지 캡처
‘자유의 꽃’으로 피어나는 중정기념당의 미래 🌺
그리고 민주화 역사 전시는 지난해 연말 재편을 거쳐 ‘자유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했습니다. 바로 이번주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소개해 드린 시리즈 강연의 제목이죠. 이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펼쳐진 민주화 물결을 소개하는 것에서 출발해, 타이완이 걸어온 민주화 역사를 보여주고요. 이어 독재정권의 시행했던 다양한 사회 통제와 그로 인해 상처 입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권위주의를 상징했던 공간에서 민주화 역사를 배우는 것자체가 중정기념당 전환의 중요한 한 걸음으로 볼 수 있죠.
중정기념당의 상설전시 ‘자유의 꽃’ 타이완 민주화 역사 전시 - 사진: 안우산
타이베이의 중요한 공공 공간인 만큼, 중정기념당의 전환은 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특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관련 정책이 중단되거나 다시 추진되기를 반복해 왔는데, 이제는 지속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자유의 꽃’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대화와 교류를 통해 대립을 줄이고, 이 공간에 새로운 꽃이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中正紀念堂的歷史軌跡〉,國立中正紀念堂管理處。
2. 〈102年至114年參觀人次(115.1.16更新)〉,國立中正紀念堂管理處。
3. 〈中正紀念堂轉型方案:反省威權歷史公園〉,促進轉型正義委員會。
4. 林雨佑,「走進兩場相異卻並存的導覽,中正紀念堂志工們的轉型衝擊」,報導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