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보이지 않는 주인공, 번역가 🧙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개척자라면, 번역가는 언어와 언어 사이를 잇는 마술사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작품의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 번역가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죠.
하지만 번역가의 중요성은 종종 간과되곤 합니다. 올해 인터네셜너 부커상을 수상한 타이완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영어 번역가 진링(金翎)은 여러 인터뷰에서 미국판과 영국판의 출간 시기가 크게 차이 난 이유에 대해 “번역가 이름을 책 표지에 함께 실어주는 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번역가는 작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고도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래서 진링은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전미도서상과 인터네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후, 번역가의 역할을 꾸준히 강조해왔고, 부커상 수상소감에서도 번역을 오렌지주스 속 과육에 비유하며, 이야기에 더욱 깊은 맛을 더하는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 7월 18일 중정기념당에서 펼쳐진 ‘자유의 꽃 강연 시리즈(自由花蕊名家綻放講堂)’에서 진링은 팟케스트 진행자 우이츠(吳怡慈)와 함께 ‘영어권의 타이완 서사’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작성할 때 표현 하나하나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했다고 밝혔는데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물론, 타이완의 목소리도 왜곡 없이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타이완을 주권 국가로 표현한 내용이 언론의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수정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더욱 세심한 고민이 필요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사례는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죠.
그럼 ‘자유의 꽃 강연 시리즈’ 두 번째 시간, 진링과 우이츠의 대담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진링과 우이츠의 대담 현장 - 사진: 안우산
번역가의 길을 걷기까지... 두 문화 속에서 자란 진링 🇹🇼🇺🇸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링을 미국에서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18살까지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타이완에서 보냈는데요. 중화민국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그에게는 자신이 “타이완인인 동시에 미국인”입니다.
1993년 미국에서 태어난 진링은 1살 때 타이완에 돌아와 타이완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 타이베이미국학교를 다니며 영어 실력을 키웠고,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동아시아학을 부전공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일본어도 배웠는데, 덕분에 중국 아티스트 차이궈창(蔡國強)의 스튜디오에서 중화권과 일본 업무를 맡으며 언어 감각을 더욱 넓혀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예술계에서 계속 활동할 것으로 보였지만, 꾸준히 소설을 써 온 진링은 2018년 단편소설 《식욕(Appetite)》으로 ‘펜 아메리카(PEN America)’ 단편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문학번역을 부전공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이 시기에 양솽즈(楊双子)의 작품을 만나, 지금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938 타이완 여행기》 영어판 번역가 진링 - 사진: CNA
세상을 만난 《1938 타이완 여행기》🏆
일본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번역서를 가장한 독특한 형식을 지닌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진링에게 더없이 잘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일부 번역 원고와 출판 제안서를 완성해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미국 출판시장에서 번역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불과한데요. 더욱이 ‘타이완 문학’이 미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에 출간까지의 길은 더욱 험난했습니다. 결국 7곳의 출판사 중 2곳만 답장했고, 진링과 양솽즈는 독립출판사 그레이울프(Graywolf Press)를 선택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분이 알고 계셨을 겁니다. 진링의 적극적인 추진과 출판사의 안목이 없었다면,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오늘날처럼 세계 독자들과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거죠. 이처럼 타이완의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2026 인터네셜너 부커상을 수상한 양솽즈(좌)와 진링(우) - 사진: 부커상재단
단어 하나에도 담긴 타이완의 주체성 ✨
이번 대담에서 진링은 특히 인터네셜너 부커상 수상 소감을 작성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을 소개했습니다. 먼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첫머리에 언급한 이유는 유럽 관객의 관심을 끌고, 타이완의 이야기를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맥락에 놓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 전쟁을 계기로 앞으로는 타이완의 작품을 번역하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여기서 ‘타이완 작품’이라고 표현하면 중국을 의식하는 일부 언론에서 해당 표현이 삭제될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너무 모호하게 표현하면 타이완 사회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타이완에서 온 글들(writing from Taiwan)”이라는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金翎:「I will only translate writing from Taiwan 我不想說Taiwanese,因為這樣會排除很多在台灣的多元群族。」
그리고 ‘타이워니즈(Taiwanese)’라는 표현을 피한 이유는 영어권에서 이 단어가 문맥에 따라 푸젠(福建) 민난계 타이완인, 즉 ‘민난인(閩南人)’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원주민과 하카인(客家人), 외성인(外省人) 등 타이완의 다양한 공동체가 배제될 수 있다는 뜻이죠.
金翎:「I will continue to do so, I told myself, until the day comes that my homeland's sovereignty 「我的家鄉的主權」而不是「我的國家的主權」,is no longer a provocation or a punchline. Until no English speaker 不是只是說英國人或是美國人,是你們所有會說英文的人,你們要怎麼稱呼、怎麼看待我們 Until no English speaker feels comfortable saying to me, glibly, "I really should come visit you in Taiwan -while it still exists.」
진링은 이어서 “언젠가 내 고향의 주권이 더 이상 도발이나 농담으로 소비되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영어를 쓰는 누구도 나에게 ‘타이완이 아직 존재할 때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않는 날이 올때까지 계속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는 ‘타이완의 주권’이나 ‘내 나라의 주권’ 대신, 보다 절제된 ‘내 고향의 주권’을 선택했죠.
또한 ‘영어를 쓰는 사람들(English speaker)’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만이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타이완을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되묻고자 하는 겁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소감을 작성할 때 고민했던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진링 - 사진: 안우산
호칭에서 시작되는 정체성 🌟
그리고 진링과 우이츠는 번역에서 단어 하나를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곧 타이완의 존재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음력설인데요. 과거에는 영어로 대부분 ‘Chinese New Year’라고 불렀지만, 음력설은 중국뿐만 아니라 타이완, 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함께 보내는 명절이죠. 그래서 최근에는 보다 포괄적인 표현 ‘Lunar New Year’를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미국에서 태어난 타이완인을 과거에는 ‘ABC(American Born Chinese)’라고 불렀지만, 최근에는 타이완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ABT(American Born Taiwanese)’나 ‘Taiwanese American’이라는 표현도 점차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진링은 단어 선택이 곧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담아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 안우산
작가이자 번역가 진링의 다음 계획 ✏️
대담 말미에는 앞으로의 계획도 공개했습니다. 진링의 다음 번역 작품은 지난해 타이완에서 큰 화제를 모은 리자잉(李佳穎)의 소설 《오븐에 들어가기 좋은 날(進烤箱的好日子)》로, 내년 1월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또한 그의 첫 장편소설 《Weeb》에 대해서는 “일본으로 떠나는 이야기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타이완인”이라며 살짝 스포일러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 작품 역시 내년 4월 영어판이 먼저 출간되고, 이후 연말쯤 타이완판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엔딩곡으로 진링처럼 여러 언어를 통해 타이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밴드 커라치(珂拉琪, Collage)의 ‘Maliyang’을 함께 들어보시죠. 원주민 아메이족(阿美族) 언어와 일본어로 만든 이 노래의 제목은 장난기가 많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를 뜻하는 아메이족어입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李若雯,「曾被出版社拒『像妳這樣的人有一百個!』《台灣漫遊錄》譯者金翎:花八個月、零酬勞,只為讓台灣作品站上國際舞台」,天下雜誌。
2. 王舜薇,「譯者的慧眼與才華、小出版社的冒險膽識,帶著《臺灣漫遊錄》踏上世界漫遊」,報導者。
3. Hou Chou,「Tatler Mode|在能面中凝望,在文字間起舞:專訪《臺灣漫遊錄》作者楊双子,《Taiwan Travelogue》譯者金翎」,Tatler。
▲관련 프로그램:
타이완 문학의 새로운 장!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 《1938 타이완 여행기》
양솽즈 《1938 타이완 여행기》, 타이완 최초로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