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타이완이 빠진 세계지도 🗺️
2015년 타이완 소천하(小天下) 출판사에서 출판된 손그림 세계지도책 한 권이 짧은 시간에 10만 권이 팔리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출판업이 침체되었던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그룹 회장이었던 가오시쥔(高希均)은 이 소식을 듣고 책을 읽던 중, 지도에 타이완이 없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사는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빠져 있다는 건 어린 독자에게 큰 충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곧바로 특별팀을 꾸려 작가가 있는 폴란드로 파견했습니다. 특별팀은 다양한 자료를 준비해 작가를 설득했는데요. 덕분에 타이완이 포함된 새로운 지도책이 2017년 다시 타이완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소천하출판사에서 출판된 세계지도책 - 사진: 보커라이
“독서는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
이처럼 출판을 통해 타이완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는 데 노력해 온 가오 회장은 지난 8월 6일, 향년 90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원견·천하문화(遠見·天下文化)’를 설립한 인물인데요. “독서는 한 사람을 구할 수 있고, 관념은 한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경제·시사 잡지 《천하잡지(天下雜誌)》와 《원견잡지(遠見雜誌)》를 창간했습니다. 또 소천하와 같은 아동 출판사를 설립해 어린이 도서 출판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가오 회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이기도 한데요. 경제학에서 비롯된 유명한 표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天下沒有白吃的無餐, 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바로 그를 통해 타이완 사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1977년 《연합보(聯合報)》에 7일간 경제 평론을 연재하면서 복잡한 경제 개념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소개했는데요. 그 중 가장 화제를 모은 글이 ‘자유경제’와 ‘사용자 부담 원칙’을 설명한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어?(天下哪有白吃的午餐)〉였습니다. 사회 제도가 경제 성장만큼 갖춰져 있지 않았던 사회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 글이었습니다.
고 가오시쥔 원견·천하문화 회장 - 사진: 원견·천하문화 제공
그럼 오늘은 타이완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 가오시쥔 회장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승사자와 스쳐지나 가던 두 경험 💀
사실 가오 회장은 별세하기 불과 두 달 전인 6월 1일, 자신의 회고록 출간 행사에 직접 참석해, 유머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회고록의 부제목은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어?’에서 ‘평화와 행복’까지(從「天下哪有白吃午餐」到「和平幸福」)〉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경제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책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면, 인생의 마지막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평화와 행복을’ 꼽은 겁니다. 특히 전쟁과 피난을 직접 경험했던 그에게 평화는 그 어떤 것보다 절실한 가치였을 텐데요.
회고록의 첫머리에서 그는 어릴 때 가족이 두 차례나 죽음의 문턱을 가까스로 피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 번은 이사로 피했던 ‘난징 대학살’이고, 또 한 번은 일본군에 붙잡혔던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난징 대학상 🩸
1936년 중화민국령 난징에 태어난 가오 회장은 한 살을 갓 넘긴 어린 나이에 전쟁을 맞았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했고, 무차별 학살과 강간 등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가오 회장 가족은 다행히도 대학살이 벌어지기 3개월 전, 수저우(蘇州)로 이사갔는데, 덕분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 중 하나를 피할 수 있었던 거죠.
제2차 세계대전 🩸
하지만 전쟁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유격대에도 참여했는데요. 결국 1945년 8월 일본군에 잡혀가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은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죠. 덕분에 그의 아버지는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습니다.
저승사자와 스쳐지나 가던 이 두 경험으로 그는 생명의 무상함을 일찍부터 깨달았고, 강한 평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번화한 상하이에서 막 정권교체를 경험한 타이완으로 🚢
전쟁이 끝난 후 가오 회장 가족은 상하이에서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갔지만, 국공내전의 격화와 함께 1949년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가오 회장에게 이 피난길은 ‘모험’처럼 느껴졌다고 하는데요. 교과서에서 보던 타이완은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풍부한 아름다운 열대의 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오슝항에 도착하자 상의를 벗은 채 소리를 지르며 과일을 팔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했습니다.
당시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번화한 도시였죠. 그곳에서 8년 동안 살았던 소년에게 타이완의 모습은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타이완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근대적인 사회 기반시설이 마련되었지만, 1940년대 전쟁동원과 미국의 폭격에 1945년 이후 정권 교체에 따른 혼란이 더해지면서 사회가 매우 혼란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가오 회장이 ‘한 사회가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오시쥔 회고록 - 사진: 보커라이
그의 인생 첫 번째 ‘경제수업’도 가오슝항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당시 그는 아버지가 준 담배 한 갑을 현지 아이에게 건네고 바나나 두 개를 얻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자랑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너 속았다”고 말했습니다. 상하이에서는 바나나가 사치품이었지만 타이완에서는 흔한 과일이었기 때문이죠. 이 짧은 경험이 경제학의 핵심을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던 겁니다.
이어서 1940년대 번화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노래, 저우쉬안(周璇)의 ‘상하이의 밤(夜上海)’을 함께 들어보시죠!
공부를 통한 출세길 🥇
가오슝에 상륙한 가오 회장 가족은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향했습니다. 결국 난강(南港)에 있던 외성인 마을 ‘권촌(眷村)’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가오 회장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타이베이 상업직업학교(현 국립타이베이상업대학)를 거쳐 타이중의 타이완농학원(현 국립중흥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타이완 최고 명문 타이완대 농과대학에서 연구 조교로 일했고, 당시 동료 중에는 훗날 타이완 총통이 되는 리덩후이(李登輝)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미국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됐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군 소령이었던 아버지의 월급은 800뉴타이완달러 정도였는데, 미국행 편도 항공권 가격은 무려 2만 4천 뉴타이완달러에 달했습니다. 아들의 진로를 위해 아버지는 결국 조기 퇴직을 선택했고, 퇴직금을 아들의 유학 비용으로 내놓았습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가오 회장은 미국에서 학업에 매진했고, 1964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출판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외교적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 ‘서생보국(書生報國)’의 꿈 ✨
그리고 그를 언론과 출판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앞서 언급된 경제 평론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어?〉였습니다. 1980년대 타이완 출판업에는 “한 사람을 망하게 하려면 잡지를 만들라고 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요. 그런데 가오 회장이 만든 잡지들은 지금까지 4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타이완은 유엔 탈퇴와 이에 따른 외교적 단절을 겪은 데다가 계염령 통제 아래서는 정치 이슈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도약의 시기였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오 회장은 ‘서생보국(書生報國)’, 즉 ‘지식인이 학문으로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정신을 품고 있었습니다. 결국 경제 정보를 통해 타이완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잡지를 만들고자 했죠.
출판인으로 변신! 🏬
이렇게 1981년, 그는 언론인 인윈펑(殷允芃), 왕리싱(王力行)과 함께 《천하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창간호는 1만 부가 이틀 만에 모두 팔렸습니다. 잡지 이름 ‘천하’는 순원(孫文)의 좌우명인 ‘천하위공(天下為公)’에서 따왔습니다. ‘천하는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뜻인데, 동시에 ‘부와 재산 역시 모두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86년, 가오 회장은 인윈펑과의 이념적 차이로 새로운 잡지를 창간했습니다. 바로 《원견잡지》입니다. 《천하잡지》가 경제와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데 강점이 있다면, 《원견잡지》는 산업의 미래 트렌드와 경영, 리더십 분야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로써 지금의 ‘원견·천하문화’ 출판사의 기반도 마련되었죠.
가오시쥔의 주도로 창간된 《원견잡지》 - 사진: 원견
‘배움’과 ‘나눔’의 인생 📑
잡지 창간 외에도 가오 회장은 경제학자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경제 평론을 발표하는 한편, 타이완 정부의 경제 정책 자문에도 참여했습니다. 타이완의 경제 발전과 사회 변화에 크게 기여한 만큼,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은 총통부에 가오 회장의 공적을 기려 표창해 줄 것을 건의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오 회장의 인생에는 ‘배움’과 ‘나눔’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전쟁과 피난을 겪으며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경제학을 공부하며 사회의 발전을 고민했으며, 자신이 배운 지식을 잡지와 책을 통해 다시 사회에 돌려줬습니다. 《천하잡지》와 《원견잡지》도 현재까지 타이완의 대표적인 경제·시사 매체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가 평생 품었던 신념처럼, 한 사람의 지식과 생각은 정말로 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타이완이 앞으로도 평화와 행복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邱祖胤,「天下文化創辦人高希均逝 文化部呈請總統明令褒揚」,中央社。
2. 陳至中,「地圖書沒台灣 高希均派人赴波蘭找作者」,中央社。
3. 鄭鴻達,「高希均過世享耆壽90歲…2個月前慶生暢談4字信念,回憶錄給讀者忠告:自求多福、一切靠自己爭氣」,今週刊。
4. 鍾志鵬,「高希均教授90歲辭世!『天下哪有白吃的午餐』秘密出現」,三立新聞。
5. 賴昀,「《高希均回憶錄》重磅發表!回顧90載人生,籲投資教育與和平幸福新書發表會報導(上篇)」,遠見。
6. Che-Yu Wu,「天下雜誌:替台灣的「成功」排了四十年名次,站在離資本最近的地方」,taiwan.md。
7. 高希均,《高希均回憶錄:從「天下哪有白吃午餐」到「和平幸福」》。
8. 亞歷珊卓‧米契林斯卡、丹尼爾‧米契林斯基,《地圖(增訂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