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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물음… 일본 만화계를 사로잡은 ‘아시아의 보물’ 정원(鄭問) 💎

일본 언론으로부터 ‘아시아의 보물’로 평가된 타이완 만화가 정원 - 사진: 페이스북 @鄭問工作室
일본 언론으로부터 ‘아시아의 보물’로 평가된 타이완 만화가 정원 - 사진: 페이스북 @鄭問工作室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일본 만화지에 오른 타이완 만화가들 ✨

일본 만화 출판사 하면 역시 ‘고단샤(講談社)’를 빼놓을 수 없죠. 《진격의 거인》 같은 유명 작품이 바로 고단샤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타이완 만화 작품도 고단샤 만화지에 연재된 적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타이완 만화가 아오유샹(敖幼祥)의 4컷 무협만화 《우롱원(烏龍院)》이 1985년 고단샤의 주간지 《모닝(Morning)》에 연재한 데 이어, 정원(鄭問, 본명 鄭進文 정진원)의 역사만화 《동주영웅전(東周英雄傳)》도 1990년부터 같은 잡지에 연재했습니다. 당시 정원은 동양 수묵화와 서양 회화를 결합한 화풍으로 일본 만화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다음해 외국인 최초로 일본만화가협회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정원의 역사만화 《동주영웅전》 - 사진: 청핀서점

정원의 《동주영웅전》 초고를 엮은 책도 최근 타이완에서 출판되었는데요. 생생한 붓터치부터 캐릭터 영혼을 담은 작화까지, 작품에 대한 만화가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열린 신간발표회에서 만화가이자 정원의 후배인 마이런제(麥人杰)는 “초고가 명확해질수록 완성도 높은 원고가 된다”며, “초고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고비를 어떻게 넘느냐가 큰 도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원이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은 이제 AI를 이용해 만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만화와 유화, 스케치, 조각, 인테리어,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여준 정원은 타이완에서 ‘국보급 만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가 2017년 58세로 별세한 이후, 이듬해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그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렸는데, 바로 ‘천년의 물음: 정원 특별전(千年一問:故宮鄭問大展)’이었습니다. 타이완 최고의 박물관인 고궁박물원에서 만화 작품을 대규모로 선보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이 특별전과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 ‘천년의 물음’도 개봉해, 그의 삶을 스크린에 담았습니다.

2018년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서 열린 ‘천년의 물음: 정원 특별전’ - 사진: artemperor

일본 언론으로부터 ‘아시아의 보물(アジアの至宝)’로 평가되는 타이완 만화가 정원! 오늘은 이 전설의 만화가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9살부터 드러난 남다른 예술적 재능 🎨

‘천년의 물음’이라는 제목에는 정원이 평생 예술의 극한을 탐구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그리고 필명에 들어간 ‘문(問)’자의 의미도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좀처럼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던 현실에 질문을 던졌고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후에도 상업 시장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1958년 타오위안(桃園) 다시(大溪)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달력 종이를 찢어 근처 사찰에 가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특히 9살 때는 사찰 문에 그려진 수호신인 ‘문신(門神)’을 능숙하게 그렸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인 정원 - 사진: AI생선

이렇게 키워온 그림에 대한 꿈은 미술을 전공하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미술로 유명한 타이베이 푸싱(復興) 고등기술학교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는데요. 재학 시절에는 장제스(蔣中正) 전 총통의 동상 제작에도 참여하면서 입체적인 조형 감각을 키웠습니다. 졸업 후에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몇 년간 일했습니다.


수묵화로 다시 태어난 무협만화 🗡️ 

그가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1983년 전국만화대상 수상이었습니다. 덕분에 작품 연재 기회를 얻고, SF 만화 《전사 흑표범(戰士黑豹)》으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에는 예류(野柳)의 여왕머리바위(女王頭) 같은 타이완의 랜드마크와 사찰의 돌사자, 보탑 등 타이완의 문화적 요소도 등장하는데요. 서양 SF에서 출발했지만, 타이완만의 색깔을 담은 독특한 작품이죠.

그리고 1986년, 수묵화를 만화에 접목한  《자격열전(刺客列傳)》을 발표했습니다. 역사에 실존했던 5명의 자격, 즉 암살자들의 삶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지만, 작품이 가진 무게감을 충분히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결국 정원은 붓을 들고 수묵화 기법을 만화에 적용하면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귀엽고 코믹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당시 타이완 만화계에서 이런 시도는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만화라는 장르도 문학적 깊이와 삶의 비극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수묵화를 만화에 접목한  《자격열전》 - 사진: 보커라이


수묵과 여백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다 ❤️

이렇게 이름을 알리면서 정원은 만화지 창간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타이완의 민주화와 함께, 만화계에서는 타이완 작품을 중심으로 한 만화지가 잇따라 창간했는데요. 대표적인 잡지로는 1985~88년 발행된 《환락만화(歡樂漫畫半月刊)》와 1989~91년 발행된 《요일만화(星期漫畫)》입니다. 정원은 두 잡지에 작품을 선보이면서 인지도를 쌓아 나갔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 화교 출신 출판인 하오밍이(郝明義)와 손잡고 또 다른 무협만화《아비검(阿鼻劍)》을 발표했습니다. 그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만큼, 수묵화의 표현을 한층 발전시켰고, 특유의 여백을 활용한 연출도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일만화》의 폐간과 함께 작품 연재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정원(우)과 하오밍이(좌) - 사진: 위키백과 쉬안스성(玄史生)

그리고 정원이 작업할 때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차이전난(蔡振南)의 ‘허망한 꿈(空笑夢)’입니다. 사랑에 대한 깊은 탄식을 담은 이 곡은 평생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정원의 삶과도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슬램덩크》 작가에 영향을 준 정원! 🌟

《아비검》 연재 시기, 한 타이완 출판인의 소개로 정원의 이름이 일본 고단샤 편집진의 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앞서 언급된 《동주영웅전》 이었죠. 이 작품은 춘추전국시대의 역사 인물들을 한 편씩 소개하는 단편 형식으로 구성되었고, 문학성과 예술성을 함께 살린 연출로 만화의 가능성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인상이 얼마나 강했냐면, 당시 일부 일본 독자들은 이 작품을 두고 “다다미에 정좌하고 앉아서 읽어야 할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원의 편집을 담당했던 황제허(黃健和)에 따르면, 정원의 작품은 《슬램덩크》와 《배가본드》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에게도 영향을 줬다고 하는데요. 두 만화가는 고단샤의 《모닝》에서 동시에 작품을 연재한 인연도 있습니다.

《동주영웅전》 일본어판 표지 - 사진: 위키백과


타이완의 시선으로 다시 태어난 중국 역사 📖

그렇다면 정원은 왜 그렇게 중국 역사 속 인물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택했을까요? 그는 보커라이(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인물들이 생각했던 ‘충(忠)’의 의미가 지금과는 다르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갖고 행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만화로 인간과 세상을 탐구했던 정원 자신의 신념과도 일맥상통이죠.

또한 일본 만화계를 보면, 삼국시대나 춘추전국시대처럼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적지 않죠. 정원은 바로 일본인에게 익숙한 이 역사를 타이완인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했습니다. 여기에 동양의 수묵화와 서양 회화를 결합한 새로운 표현을 더해, 전혀 ㅑ다른 작품을 보여줬죠. 일본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2001년에는 그가 미술 총감독을 맡은 일본의 삼국지 게임이 그의 이름을 내건 《정문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정원이 미술 총감독을 맡은 일본의 삼국지 게임 《정문 삼국지》 - 사진: 다콰이 문화(大塊文化)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은 아티스트 🧑‍🎨

이렇게 일본에서 10년 동안 활동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정원은 타이완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만화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는데요. 홍콩 만화가들과 협업해 타이완의 전통 인형극인 ‘부다이시(布袋戲)’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중국으로 건너가 게임 산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비록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게임이 결국 출시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습니다.

2012년 타이완 귀국 후, 오랜 동료였던 하오밍이와 새로운 무협만화를 만들고, 장남 정즈위(鄭植羽)와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를 소재로 한 만화를 제작할 계획이었는데요. 아쉽게도 정원은 2017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년의 물음 ⏰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자신이 세운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성취에 머무르기보다는 항상 다음을 바라봤습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거죠.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삶이 갑작스럽게 멈추는 순간까지도 계속 묻고 또 물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 자체가 ‘천년의 물음’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이 아닐까요?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寶兒,「鄭問『東周英雄傳』底稿成書 拆解鉅作痕跡」,CNA。
2. 江佩凌,「太少人談論的鄭問 太少人認識的台灣驕傲」,CNA。
3. 鄧慧純,「異才‧鄭問」,光華雜誌。
4. 翁稷安,「阿鼻劍斷俠客亡:悼漫畫大師鄭問」,關鍵評論網。
5. MaoPoPo,「『殺人者』與『被殺者』都是英雄!——專訪鄭問《東周英雄傳》」,OKAPI閱讀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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