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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표지를 그린 타이완 MZ세대 만화가, 가오옌(高妍) 🐈‍⬛

타이완 만화가 가오옌의 《틈》이 2026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대상 후보에 올랐다. - 사진: 페이스북@Gao Yan 高 妍
타이완 만화가 가오옌의 《틈》이 2026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대상 후보에 올랐다. - 사진: 페이스북@Gao Yan 高 妍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호소노 하루오미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꿈을 현실로 만든 만화가 ⭐️

지난주 일본 만화계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타이완 만화가 정원(鄭問)을 소개해 드렸죠. 이렇게 선배 만화가들의 노력 덕분에 요즘 MZ 만화가들도 국제무대에서 빛나고 있는데요. 올해 초 일본의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手塚治虫文化賞) 만화대상 후보에 오른 가오옌(高妍)이 바로 한 명입니다.

가오옌의 창작 과정을 보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 가는 판타지적인 여정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일본 음악인 호소노 하루오미(細野晴臣)를 좋아하게 된 과정을 담은 만화가 호소노 본인에게 전달되면서, 결국 직접 만나게 되는 인연으로 이어졌고요. 이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와 협업하는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단순히 ‘성공한 덕후’를 넘어 자아실현을 이룬 거죠.

그런데 가오옌은 올해로 겨우 30살입니다. 아직 창작 에너지가 한창 넘치는 시기인데요. 최신작 《백일의 카페(百日咖啡)》도 오는 10월 9일 첫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전적인 색채가 강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꿈’을 주제로 가족의 기억을 들여다봅니다. 타이완과 일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오옌의 최신작 《백일의 카페)》 단행본 표지 - 사진: 페이스북@Gao Yan 高 妍

그럼 오늘은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타이완 만화가 가오옌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일본 만화 시장에 들어간 타이완 ‘스파이’🕵🏼

비록 일본에 살고 일본 만화지에 작품을 연재하고 있지만, 가오옌은 늘 자신의 작품을 “아주 타이완스럽다”고 표현합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타이완 창작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충분히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하곤 하는데요. 또 문화지 ‘산마(秋刀魚)’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스파이’에 비유하며, 비교적 폐쇄적인 일본 만화 시장에 들어가 타이완의 문화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0살 소녀의 청춘 이야기 《미도리의 노래》 🍃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의 만화 《미도리의 노래(綠之歌)》입니다. 일본 문학의 ‘사소설(私小説)’과 비슷한 형식으로, 가오옌 자신의 대학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요.

가오옌의 데뷔작 《미도리의 노래)》 단행본 표지 - 사진: 페이스북@Gao Yan 高 妍

미술학교 출신인 가오옌은 타이완예술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한 후, 주입식 교육에 실망해 수업을 자주 빼먹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대신 음악과 만화, 영화, 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죠. 그러던 중 첫사랑을 만나게 되었고, 그 첫사랑이 좋아하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도 빠져들었습니다.

비록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때 마음에 품었던 강렬한 감정은 결국 창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일러스트와 에세이, 사진, 만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작품으로 만들어 냈는데요. 이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바로 2018년 출판된 32페이지의 단편 만화 《미도리의 노래》였습니다.

주인공의 이름 ‘미도리’는 일본어로 ‘초록색’을 뜻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에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겁니다. 이 미도리는 사실 가오옌 자신의 투영이죠. 작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풋풋한 첫사랑, 그리고 일본 음악인 호소노 하루오미의 노래를 통해 얻은 용기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20살 청춘의 이야기가 아주 특별한 인연을 통해 호소노 본인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호소노의 밴드 멤버였던 마츠모토 타카시(松本隆)가 이 작품을 읽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는데요. 자신이 쓴 노랫말이 중국어 대사와 함께 만화에 등장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2019년, 일본 NHK가 호소노의 데뷔 50주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가오옌을 초청했습니다. 덕분에 가오옌은 타이베이의 한 만화 카페에서 호소노와 직접 만나 《미도리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픽한 일러스트레이터 🎨

그리고 기적 같은 기회가 잇따랐습니다. 같은 해, 가오옌은 홍콩 만화가 먼샤오레이(門小雷),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변영근과 함께 도쿄에서 합동 전시회를 열어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 전시를 계기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북디자이너의 눈에 띄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고양이를 버리다》의 표지와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책의 후기에서 가오옌의 그림이 “믿기 어려울 만큼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느낌을 풍긴다”고 평가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고양이를 버리다》의 표지 - 사진: 청핀서점

이렇게 일본 만화계에서 인지도를 쌓아간 가오옌은 2021년 6월부터 일본 만화지 《코믹 빔(Comic Beam)》에 《미도리의 노래: 바름을 모으다》라는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미도리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장편 만화죠. ‘바름을 모으다’는 만화 속에 언급된 호소노의 밴드 ‘핫피 엔도(Happy End)’의 노래 제목입니다.

얼핏 보면, 가오옌의 창작 여정은 아주 순탄해 보이죠. 하지만 이런 성공 뒤에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엄청난 노력이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진입하기 어려운 일본 만화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연재 기간에 휴일도 없이 매일 12시간씩 작업했고, 항상 마감 전에 원고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단행본을 낼 때는 500페이지의 원고를 전부 다시 수정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완벽주의적인 성격과 끈질긴 노력 덕분에 지금의 가오옌이 있는 거죠.

이어서 가오옌이 인생에서 처음 반했던 타이완 인디밴드 ‘컴온! 베이베이!(來吧!焙焙!)’의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너, 근데 넌 모르지(全世界我最喜歡你)’를 함께 들어보시죠.


역사의 틈에서 만난 타이완과 오키나와 🏝️

사소설 형식의 청춘 만화로 시작했던 가오옌의 두 번째 작품은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작품을 연재하기 전, 그는 일본 편집자에게 전작만큼 잘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는데요. 그러자 편집자는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는 만화가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가오옌을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가오옌은 자신의 오키나와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타이완과 오키나와의 역사를 담은 《틈(間隙)》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가오옌의 두 번째 만화 작품 《틈》  - 사진: 페이스북@Gao Yan 高 妍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6년 대학교 2학년 때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당시 타이완에서는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의와 과거의 역사적 비극을 바로잡기 위한 이행기정의 운동이 한창이었는데요. 미술 전공 수업에 실망했던 가오옌은 교양과목을 많이 들으면서 역사와 인권, 자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2월 28일, 처음으로 2·28국가기념관을 찾았고, 2·28사건을 기리는 ‘공생음악제(共生音樂節)’ 현장에도 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오옌이 그린 2026 공생음악제 메인 비주얼 - 사진: 페이스북@Gao Yan 高 妍

이어 대학 4학년 때 오키나와로 유학을 떠난 후에는 타이완과 오키나와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사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인 ‘오키나와 전투’는 원래 타이완을 목표로 계획했지만, 타이완의 산악 지형과 일본군의 병력 배치 등을 고려해 결국 오키나와로 변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식민지 시대 타이완 북부 지룽(基隆)에는 류큐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 주민은 1947년 2·28사건 당시 타이완 정부군에 의해 사형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틈 사이에서 타이완과 오키나와의 운명이 크게 달라진 거죠.

▲관련 프로그램:
“바다의 저편은 고향” 타이완과 오키나와의 이야기, 지룽 허핑(和平)섬

“작가는 영원한 이방인” 리친펑(李琴峰) 《피안화가 피는 섬》
[2·28평화기념일] 타이완 최대 기념행사 '공생음악제'


타이완인으로서의 각오이자 청춘의 기억 ✊️

가오옌은 오키나와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인생의 ‘틈’으로 여기며, 2018년부터 2020년 사이 타이완에서 일어난 일들을 《틈》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후기에서 “이 작품은 타이완인으로서의 각오이자 청춘의 기억이며 역사”라고 밝혔습니다. 추천사를 쓴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역시 “이 작품을 읽고 가오옌의 각오와 분노, 외침을 잘 받아들여 그 감정을 정리해 다시 돌려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오옌은 올해 초, 타이완 독립언론 ‘더 리포터(報導者)’가 제작한 타이완-중국 음악산업 특집에 만화가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문화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타이완 음악인들이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중국에서 공연을 이어가는 경우와 아예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경우를 취재한 보도였는데요. 가오옌의 만화를 통해 그 복잡한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만화로 전하는 용기… 가오옌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첫사랑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해, 타이완의 정체성과 민주자유를 바라보는 작품까지. 만화는 가오옌을 아주 먼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가오옌은 항상 자신을 용기 없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결국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그림이 결국 씨앗이 되어 독자와 다른 창작자들에게 큰 용기를 전하고 있죠. 이렇게 보면 가오옌의 ‘스파이’ 임무는 정말 완벽하게 수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高妍,《綠之歌》。
2. 高妍,《 間隙》。
3. 陳怡靜,「她的插畫令村上春樹不可思議的懷念──專訪台灣漫畫家高妍」,報導者。
4. 陳彥明,「話題》新銳漫畫家高妍將出版首部長篇漫畫《綠之歌》:創作能帶我們到自己都到不了的地方」,OPENBOOK閱讀誌。
5. 蕭詒徽,「除了哭泣以外的時間──專訪高妍:愛,和不甘心,和愛」,BIOS monthly。
6. 林珈綺,「使出渾身解術創作,撬開臺日歷史的沉默邊界——漫畫家高妍|〈我們閃閃發亮⟢〉」,秋刀魚。
7. 李姿穎,「在歷史的《間隙》裡,尋找臺灣的名字——高妍的漫畫與臺灣記憶」,b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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