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the main content block
::: 홈| 사이트 맵| Podcasts|
|
Language

Formosa Dream Chasers - Programs - RTI Radio Taiwan International-logo

프로그램
| 전체보기
카테고리
진행자 프로그램 편성표
푸시 알림
繁體中文 简体中文 English Français Deutsch Indonesian 日本語 한국어 Русский Español ภาษาไทย Tiếng Việt Tagalog Українська 사이트맵

피휘(避諱)와 여필(餘筆)_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토) - 2026-09-05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변형주의 그림 자체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그러나 이번 특전 주제와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사진 속 확대된 글을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변형주의 그림 자체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그러나 이번 특전 주제와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사진 속 확대된 글을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대문호ㆍ서예가ㆍ황제ㆍ문신.....들의 문 장이나 작품 또는 공문에서 틀린 글씨를 발견한 적이 있는지? 누구라도 글을 쓰는 데 오자ㆍ덧쓰기ㆍ누락 또는 그냥 잘못 쓸 때가 있을 것이다.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지금 진행 중인 서예 특전이 바로 틀린 글자라는 뜻의 고궁 소장 서예 관련 작품 속 ‘착자(錯字, 즉 '오자')’를 찾아내 전시한 ‘착자서예전’이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대문호ㆍ서예가ㆍ황제ㆍ문신.....들의 문 장이나 작품 또는 공문에서 틀린 글씨를 발견한 적이 있는지? 누구라도 글을 쓰는 데 오자ㆍ덧쓰기ㆍ누락 또는 그냥 잘못 쓸 때가 있을 것이다.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지금 진행 중인 서예 특전이 바로 틀린 글자라는 뜻의 고궁 소장 서예 관련 작품 속 ‘착자(錯字, 즉 '오자')’를 찾아내 전시한 ‘착자서예전’이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당나라 태종과 고종(그의 태자 시대) 때 고위 관직에 있었던 저수량(褚遂良, 597-658년)의 서(書) ‘예관전찬(倪寬傳贊)’, 작품 속 글 중에 긁어서 지운 흔적이 보이는 글이 있다. 아마도 피휘(避諱)일 것이라 생각되기는 하지만 전체 내용을 볼 때 이건 당나라 초기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송나라 초기의 작품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된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당나라 태종과 고종(그의 태자 시대) 때 고위 관직에 있었던 저수량(褚遂良, 597-658년)의 서(書) ‘예관전찬(倪寬傳贊)’, 작품 속 글 중에 긁어서 지운 흔적이 보이는 글이 있다. 아마도 피휘(避諱)일 것이라 생각되기는 하지만 전체 내용을 볼 때 이건 당나라 초기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송나라 초기의 작품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된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원나라 4대 화가 예찬(倪瓚, 1301-1374)의 작품 '우후공림(雨後空林)'은 전형적인 예찬 스타일의 산수화이다. 이번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작품에 예찬이 쓴 글 중 틀린 글이 있어서 바로 옆에 점을 찍고 그 아래에 정확한 글을 이어서 썼다. 즉, 그림 우측 상단에 글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오자 옆에 점 두 개를 찍어 틀린 글을 표기했다. '완벽주의자' 예찬이 그의 작품이 완벽하지 않은 걸 어떻게 참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필자가 보기엔 틀린 글자마저 아름답고 그의 서예 스타일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진심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원나라 4대 화가 예찬(倪瓚, 1301-1374)의 작품 '우후공림(雨後空林)'은 전형적인 예찬 스타일의 산수화이다. 이번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작품에 예찬이 쓴 글 중 틀린 글이 있어서 바로 옆에 점을 찍고 그 아래에 정확한 글을 이어서 썼다. 즉, 그림 우측 상단에 글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오자 옆에 점 두 개를 찍어 틀린 글을 표기했다. '완벽주의자' 예찬이 그의 작품이 완벽하지 않은 걸 어떻게 참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필자가 보기엔 틀린 글자마저 아름답고 그의 서예 스타일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진심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변형주의 그림 자체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변형주의 그림 자체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변형주의 그림 자체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그러나 이번 특전 주제와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사진 속 확대된 글을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에서 진행 중인 '착자(錯字)서예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변형주의 그림 자체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그러나 이번 특전 주제와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사진 속 확대된 글을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왕희지, 소동파 작품에도 착자(錯字-오자誤字)2

-2026.09.05.(토) -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

지난 주(8/29)에 이어 오늘 ‘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에서는 고대 황제나 고위 관원 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문호나 서예가들의 공문이나 작품 속에서도 틀린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을 토대로, 잘못 쓴 착자(錯字), 즉 오자(誤字) 외에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글자가 변형된 이체자(異體字, 변형문자), 잘못된 글이나 거짓된 것이지만 자꾸 섞여져서 전해 내려오다보니 그게 진짜인 것으로 착각하며 쓰는 이와전와(以訛傳訛)된 글, 옛날 사람들이 어떤 글자를 쓸 때 본래의 글 대신 독음이 비슷하거나 독음이 같은 글자로 대체한다는 의미로, 본래의 글자를 대신하여 다른 글자를 빌려서 쓰며 처음에는 임시적으로 글자를 빌려 쓴다는 개념으로 형성된 통용하는 글과 가차(假借)하는 글을 합친 통가자(通假字), 그리고 유교사상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뿌리깊게 박힌 관습이자 개념에서 생긴 피휘(避諱)자, 즉 임금이나 조상, 성인, 국호 등 존중을 받아야 하는 대상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는 글 등, 이상의 오자, 이체자, 통가자, 피휘자 등이 있는데, 9월5일 오늘은 작품 2점을 설명과 함께 알아본다.


작품에서 나타난 ‘피휘자’ 그리고 후대에 이름을 빌려 쓴 것으로 추측되는 서예작품 당나라 태종과 고종(그의 태자 시대) 때 고위 관직에 있었던 저수량(褚遂良, 597-658년)의 서(書) ‘예관전찬(倪寬傳贊)’이다.

저수량 그러면 당나라 초기의 4대 서예가로 추앙받는 정치가 겸 서예가로, 그의 글은 가늘고 예쁘며 단정하지만 전혀 나약해 보이는 글은 아니다. 필자가 수려한 그의 글을 따라 쓰자면 마음까지 안정되고 예뻐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그 길쭉하고 가늘어 보이는 글, 필획 속에는 힘찬 뼈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필획의 세로는 길쭉하고 가늘지만 필획의 가로는 탄력성을 느끼게 하는 곡선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글자마다 강약과 리듬이 보이고 변화가 보여 생동감 넘치는 획과 획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예관전찬’이라는 글에는 무엇이 쓰여있는지 먼저 살펴본다. 중국 동한(후한, 서기 25-220년)시대 반고(班固, 서기 32-92년)가 편찬한 ‘한서(漢書/前漢書)’ 가운데 한무제(기원전 156~기원전 87년)가 현명한 인재를 등용한 이야기를 기록한 부분을 옮겨 쓴 것으로 ‘전한서’에서의 정확한 편명은 ‘공손홍·복식·예관전찬(公孫弘、卜式、倪寬傳贊)’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저수량은 당나라 초기 이세민(李世民) 태종 황제 시대와 고종 이치(李治)가 태자 시절이었을 때의 대신이었다. 그런데 ‘예관전찬’에서 ‘백성/민(民)’과 ‘다스릴/치(治)’라는 글자가 필획 모두 온전히 갖추어진 상태로 쓰여져 있다. 그렇다면 저수량이 감히 황제와 태자의 이름에 들어가는 ‘민’과 ‘치’를 전혀 거리낌없이 썼다는 건데, 지금 필자가 봐도 ‘절대 불가능하다’라고 생각된다. 감히 당대에 살아있는 황제와 태자의 이름을 피휘(避諱)하지 않았다? 그 시대, 그 위치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도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건 작품의 시대를 판단하는 데 유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두루마리 형태로 표구한 이 작품을 계속 살펴보면, 그 안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클/홍(弘)’자는 원래 있었던 글이지만 매우 명확하게 긁어서 지운 흔적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역사와 미술사 연구자들은 왜 클/홍자만 긁어버렸는지 알아볼 것이고, 그러면 작가는 당나라 저수량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당나라가 서기 907년에 멸망한 이후, 72년 동안 오대십국이 들어서며 중원의 대혼란기가 찾아온다. 대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시킨 게 바로 문화 경제의 대국 송나라를 세운 태조 조광윤(趙匡胤, 927-976년)이다. 이 작품이 언제 쓰여졌을까를 놓고 우선 송태조 시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태조 조광윤의 아버지 이름은 조홍윤(趙弘殷, 899-956년)이다. 여기에 ‘클/홍’자가 들어가니, 그 시대 썼다면 피휘하여 남긴 작품이라 추정된다. 그러니, 여하튼 이 작품은 당나라 저수량의 원작이 아니라 후대에 모사한 작품이거나, 전승되는 과정에서 일부 글자가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말한다면 작품 자체는 매우 잘 쓴 서예이다.

국립고궁박물원(이하 약칭 ‘고궁’) 남부분원(이하 약칭 ‘고궁 남원’)의 ‘착자 서예전’ 작품을 통해서도 왕조마다 달랐던 피휘 글자는 작품의 제작 시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걸 터득할 수 있어서 작품 감상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화가 전홍수(陳洪綬, 1598-1652년)의 1635년 봄에 그린 ‘교송선수(喬松仙壽)’ 작품 속 아주 독특하게 느껴지는 화면과 멋진 글을 소개한다. ‘교송(喬松)은 높이 솟은 소나무로, 보통 불로장수를 한 신선을 지칭한다. ‘선수(仙壽)’는 신선의 수명이란 뜻다. 그래서 ‘교송지수(喬松之壽)’, 큰 소나무의 수명, 즉 오래 사는 것을 이르는 성어도 있다.

인물화와 변형주의 회화의 대가 진홍수는 생애에 나라가 멸망하여 남겨진 백성이라는 슬품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의 작품은 단 한 번만 보아도 잊혀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장성한 후 망국의 한을 마음에 숨겼다고는 하나 작품에서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과장된 필법의 변형주의 조형 인물, 망국으로 인한 의기소침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해탈한 느낌을 주며 담백하면서도 강인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노련하고 거기에 또 순수한 정취가 어우러져 있다.

족자의 높이 2미터, 폭은 근 1미터에 가까운 진홍수의 ‘교송선수’ 속 인물은 사실 ‘자화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변형되고 장식적인 형태의 나무와 바위를 그렸으며, 기이한 용모를 지닌 두 인물을 함께 배치했다. 우측 상단에 남긴 글에 ‘연자와 한질(蓮子與翰姪)이 하루 종일 즐겁게 노닐었다’라고 써 있고, 봄에 복사꽃에 취하고, 가을에는 부용꽃의 빛깔을 바라보았으며, 여름에는 울창한 소나무 그늘에 머물렀고, 늦겨울에는 하얀 눈을 읊었다. 하는 일마다 늘 서로 뜻을 같이하고, 책을 몇 장 넘겨 읽으니 마음과 정신이 한층 편안해졌다.
맑은 이야기를 나누며 소나무와 바위를 그렸으니, 내 말이 조금이나마 도(道)에 합치되는구나.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어찌 부끄럽겠는가.-을해년(1635) 봄, 홍수(洪綬)가 스스로 기록하다.

蓮子與翰姪。燕游于(點去)終日。春醉桃花艷。秋看夫容色。夏躓深松處。暮冬吟雪白。事事每相干。略翻書數則。神心倍覺安。清譚寫松石。吾言微合道。三餐豈愧食。乙亥(1635)之春。洪綬自識。

자화상이자 그림을 왜 그렸는지를 설명하는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감상이다. 그렇다면 ‘착자(오자)’서예전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오른쪽 상단에 적힌 진홍수의 행서 제문/발문(題跋)은 둥근 붓을 많이 사용한 필법으로, 힘차고 굳센 기세가 느껴진다. 글자 크기의 변화가 매우 크고, 글자들이 서로 교차하거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중 첫째 줄의 ‘빛날/화(華)’자와 셋째 줄의 ‘귀신/신(神)’자를 보면, 마지막 획인 현침(懸針) 즉 내리긋는 획의 끝을 바늘 끝처럼 뾰족하게 하는 방법의 마지막 획 옆에 작은 점을 하나 더해 놓았다. 이 점은 원래 글자 구조에 포함되는 구성 요소가 아니라, 주로 글자 형태의 균형을 맞추거나 여백을 메우기 위해 더한 것이다. 이러한 필획은 남을/여, 붓/필자를 쓴 ‘여필(餘筆)’ 또는 ‘무과점(無過點)’이라고도 한다.

왕희지, 소동파 작품에도 착자(錯字-오자誤字)- 고궁 남원의 서예 특별전시 2부-피휘(避諱)와 여필(餘筆).  -白兆美 취재,원고,사진: 백조미.


為提供您更好的網站服務,本網站使用cookies。

若您繼續瀏覽網頁即表示您同意我們的cookies政策,進一步了解隱私權政策。 

我了解
00:00
00:00
0.5x 1x 1.5x 2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