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일기를 쓰세요? 많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꾸주한 일기 쓰기는 스트레스 해소, 심리건강 개선, 기억력과 창의력 향상, 자기 이해와 성찰 등의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 중에는 일기를 쓴 사람도 많은데, 장제스, 장징궈 전 총통의 일기는 훗날 중화민구 역사를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되었고,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양퀘이(楊逵)와 타이완 문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중자오정(鍾肇政) 작가의 일기도 타이완 문학의 중요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일기 형식의 작품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쾌감을 주면서도 1인칭 시점의 제한을 통해 서스펜스를 조성해 독서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인 루쉰(魯迅)의 《광인일기(狂人日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죠.
일기와 유사한 회고록(memoir)과 자서전(autobiography)도 중요한 문학 장르인데요. 일기가 일상을 기록하는 개인적인 글이라면, 회고록과 자서전은 개인의 인생을 독자에게 전하려는 기록입니다. 이 중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회고록은 논리적인 흐름을 가진 자서전보다 문학성이 강하고 소설처럼 흥미롭게 구성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시간순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평생이 아닌 삶의 일부만 다룰 수도 있습니다. 자서전 정의에 대해 프랑스 학자 필립 르죈(Philippe Lejeune)은 《자서전의 규약》에서 작가가 쓴 모든 것이 진실이지만 그 진실은 순수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설령 작가가 무언가를 잘못 썼다고 해도 독자를 속일 의도는 없습니다.

필립 르죈(Philippe Lejeune)의 《자서전의 규약》 - 사진: 예스24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16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리자잉(李佳穎) 작가는 회고록을 주제로 한 최신 소설 《오븐에 들어가기 좋은 날(進烤箱的好日子)》에서 “기록이 가장 무서운 것은 실제 일어난 순간들을 잡아먹고 유일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들의 시체는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라고 작성했는데요. 진실은 기록이 된 순간부터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기록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관점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자잉은 이어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쓰여진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로 가득차 있고 나를 지탱해 준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이유겠죠. 오늘은 2025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한 《오븐에 들어가기 좋은 날》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타이완 문단의 도시전설 👻
‘타이완 문단의 도시전설’이라 불리는 리자잉은 1999년 단편소설 〈놀이공원(遊 樂園)〉 으로 타이완 3대 신문의 하나인 연합보 주최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단편소설집(《不吠》, 《小碎肉末》) 을 출판한 후 문단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에 리자잉은 전자책 플랫폼 리드무(讀墨)와의 인터뷰에서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도 삶의 일부다. 지난 작품을 낸 후 아들이 태어났다.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라고 언급했습니다. 리자잉의 글솜씨는 전작에서 이미 인정받았는데, 소설가 장다춘(張大春)이 연합보 문학상 심사에서 그를 타이완 향토문학의 대가 황춘밍(黃春明)에 비유할 정도입니다. 16년 동안 쌓아온 끝에 창작의 허와 실을 탐구하는 청춘 성장 이야기로 도시전설의 루머를 깨뜨렸습니다.
사기꾼 게임 🧐
《오븐에 들어가기 좋은 날》은 소설을 쓰던 주인공 아단(阿丹)이 쓰면 쓸수록 소설 캐릭터와 자신을 구변하지 못해 소설을 포기하고 자신의 회고록을 쓰기로 한 이야기입니다. 회고록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SNS를 통해 회고록에 등장한 친구와 이혼한 부모를 찾아 원고를 보여주고 그들이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소설은 허, 회고록은 실이라고 인지하는 아단은 소설가가 소설의 진실성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는 반면에, 회고록은 다른 당사자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게도 리자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의 눈에는 소설 속 캐릭터의 인간성과 감정이 가장 매력적이고 진실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단이 쓴 회고록 내용과 친구를 만나는 과정의 이중적인 서사구조를 통해 소설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소설에서 아단의 부모가 이혼하기 전, 온 가족은 매일 밤 식탁에서 ‘사기꾼’ 게임을 하곤 했는데, 한 사람은 오늘 일어난 세 가지 일을 말하고, 다른 두 사람은 어떤 일이 거짓말인지 맞히는 게임입니다. 아단은 이 게임을 통해 부모가 이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은 정답(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한 이 게임은 리자잉이 실제 집에서 하는 게임이지만, 나중에 아이가 이기려고 거짓말하기 시작하면서 게임은 점점 재미없어졌습니다. 소설에서 게임도 아단 부모의 이혼으로 마침표를 찍었는데, 인생의 진실은 언제나 거짓말처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이어 신샤오치(辛曉琪)의 ‘깨달음(領悟)’을 띄워드립니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곡입니다.
오븐에 들어가는 이유 🥊
“어린 시절을 견뎌낸 사람은 누구나 후반생의 창작을 지탱할 수 있는 충분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무언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경험이 있어도 소용없다.” 미국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가 한 말입니다. 소설에서 아단은 이 말을 인용해 그가 회고록을 쓴 이유를 설파했습니다. 즉 어린 시절에 풀리지 않았던 매듭을 풀기 위한 겁니다. 리자잉은 온라인 서점 보커라(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성인이 된 아단이 회고록을 쓰듯, 나도 47세에야 비로소 이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래야 감정의 영향을 덜 받고 과거의 상처를 보다 깊이 파고들 수 있다”며, “독자가 이 소설을 통해 어린 시절을 불러일으킨다면, 자신을 찾는 과정을 멈추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기업인, 연예인, 운동선수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만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이해하려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허와 실에 대한 탐구, 자신을 찾는 과정이 모두 책 제목에 담겨 있습니다. 요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이 제목은 가스를 틀어둔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미국 시인 실비아 플래스(Sylvia Plath)에서 유래했는데요. 플래스가 있던 1960년대에는 자살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븐 속의 죽음은 문학과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현되어 예술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소설에는 이와 관련된 중요한 말이 있는데, “영상, 음성, 글 등의 기록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불멸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면 오븐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생명의 끝을 의미하지만 일부 예술가에게는 ‘영생불멸’의 수단이자 세상에 남겨진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불멸을 위한 기록은 자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며, 즉 100% 진실한 기록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인트는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아단이 친구들을 만나 자신과 상대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매듭을 풀 수 있다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겉으로는 오븐에 들어가는 것이 죽음의 수단처럼 보이지만, 실은 절대적인 진실을 포기하고 자유를 얻는 방식이죠.
과거의 아픔을 유머러스한 필치로 풀어낸 이 소설은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잘 살아온 우리를 위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자잉은 자신을 찾으려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이 소설을 사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오븐에 들어가기 좋은 날이죠.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李佳穎,《進烤箱的好日子》。
2. 自轉星球,「『寫小說的李佳穎』去哪了?自轉星球總編黃俊隆ft.《進烤箱的好日子》作者李佳穎──台北波士頓越洋訪談」,OKAPI。
3. 犁客,「你如果要認識自己,就不要再買勵志書了──專訪《進烤箱的好日子》作者李佳穎」,讀墨。
4. 李佳穎,「前青春期的成長掙扎——關於《進烤箱的好日子》」,500輯。
5. Philippe Lejeune,《自傳契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