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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단절된 곳, 한센병 전문병원 '러성요양원(樂生療養院)' 🏥

러성요양원 - 사진: 러성요양원 홈페이지
러성요양원 - 사진: 러성요양원 홈페이지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세계유산을 찾아가는 것은 많은 분들이 잊지 않고 챙기는 필수 코스죠. 그런데 유엔 회원국이 아닌 타이완은 국가 자격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기가 여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완 문화부는 2002년부터 세계유산이 될 만한 18곳을 선정해 꾸준히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는데요. 리스트를 보면, 최고봉 위산(玉山), 대리석 협곡으로 유명한 타이루거(太魯閣) 같은 자연경관부터,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세운 요새 홍마오성(紅毛城), 그리고 외딴섬 진먼(金門)의 유적까지, 대부분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특별한 역사를 품은 곳입니다. 이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후보지는 신베이시에 있는 ‘러성요양원(樂生療養院)’인데요. 자연도, 고성도 아닌 이곳이 과연 어떻게 세계유산 후보로 꼽히는 걸까요?

타이베이지하철 오렌지라인(중허신루선, 中和新蘆線)을 타고 신좡(新莊) 방면으로 끝까지 가면, 신베이시와 타오위안시의 경계에 있는 ‘후이룽역(迴龍)’에 도착합니다. 노선도에는 따로 표시되어 있진 않지만, 후이룽역 플랫폼에 ‘러성(樂生)’이라는 표기를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인근 한센병 전문병원 러성요양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러성'이 표시되어 있는 후이룽역 플랫폼 - 사진: 위키백과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오기 전까지, 한센병은 한 번 걸리면 평생 병원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전염병으로 여겨졌습니다. 1897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1차 국제한센병회의에서는 ‘강제수용, 절대격리’라는 원칙을 세웠고, 당시 미국과 유럽 나라들은 식면지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에 수용소를 세웠습니다. 타이완을 지배했던 일본 역시, 한센병을 ‘국욕’으로 간주하며 환자들을 집중 관리했습니다. 이때 세운 수용소가 바로 러성요양원이었죠. 그럼 오늘은 타이완 최초의 한센병 병원, 한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러성요양원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센병은 국욕이다! ⛔

1936년 6월 25일, 러성요양원의 병원장이 라디오를 통해 ‘한센병 퇴치’라는 주제의 연설을 발표했고, 같은 날 발행된 <타이완일일신보>에는 ‘6월 25일 한센병 예방의 날’ 관련 보도도 실렸습니다. 1930년 러성요양원이 문을 연 후, 일본 총독부는 ‘국가 정화’ 정책을 내세워 타이완 곳곳의 한센병 환자들을 이곳으로 이송했는데요. 1940년까지는 700명 가까운 환자들이 요양원에서 격리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은 국가 차원의 홍보 채널을 통해 타이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그 영향은 1970-80년대까지도 이어졌습니다.

환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요양원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철조망과 높은 담장을 세우고, 결혼 금지령과 강제 결찰 수술까지 시행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내 수용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회, 연극, 체육대회 같은 여가활동을 마련했습니다. 환자들은 관객이 되기도 하고, 직접 무대에 올라 삶의 활기를 되찾기도 했죠. 이렇게 러성요양원은 단순한 격리 공간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커뮤니티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잡혀간 사람과 자발 입소한 사람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화민국 정부는 일본의 정책을 이어받아 미국의 원조금으로 러성요양원을 증축했습니다. 하지만 정권 이전 초기에는 인력과 물자 부족으로 인해 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탈출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요양원 안에는 군인들이 배치되었고, 탈출을 시도하는 환자를 발견하면 하늘을 향해 총을 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49~1952년 사이에는 일부 기차에 ‘한센병 전용 찻간’이 따로 설치될 정도로 대규모 수색 작전이 펼쳐졌고, 승객들은 붉은 글씨로 ‘한센병’이라 표시된 칸을 보고 피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강제로 끌려온 것은 아니었는데요. 자발적으로 입소한 환자도 있었죠. 1947년 2·28사건과 이에 따른 계염령 선포로, 타이완 전역이 백색테러에 휩싸였던 시기였습니다. 남부 자이(嘉義)의 한 일식집에서 일했던 장원빈(張文賓) 씨는 증상이 경미했지만, 자이기차역 앞에서 벌어진 공개 처형을 목격한 후, 자신도 잡혀갈까 두려워 결국 러성요양원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 입소한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온 요양원 주민들. 1956년 특효약이 타이완에 도입되고 1960년 강제 격리 정책이 폐지되면서, 그들은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죠. 뿌리 깊은 편견 탓에 환자들이 만진 돈과 물건은 소독을 거쳐야만 외부 사람들이 받아들였습니다. 1996년 요양원은 더 이상 새로운 환자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 당시에도 여전히 300여 명의 환자들이 이곳을 집이라 부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요양원 주민들의 삶을 느껴볼 수 있는 노래, ‘삶은 푸른 하늘(生命是一片藍藍的天)’을 함께 들어보시죠.


문화재 보존과 도시 개발의 싸움 🥊

시간이 흐르면서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조금씩 사라졌지만, 러성요양원은 또 한 번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지하철 오렌지라인 노선의 확정과 함께, 요양원 부지가 지하철 차량기지로 선정된 겁니다. 2002년 갑작스러운 철거 공사이 시작되자, 주민들은 짐조차 챙기지 못한 채 황급히 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과 요양원, 정부 사이에는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고, 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민단체들도 거리로 나섰습니다. 논란이 커지면서 요양원을 수호하려는 목소리와 지하철 개발을 추진하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게 되었죠.

수 년간의 싸움 끝에 총 49채의 건물 중 40채가 보존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타이베이현정부(현 신베이시정부)는 러생요양원을 문화재로 지정했고, 문화부도 이곳을 세계유산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보존된 건물들은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구조로, 건축적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산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환경 덕분에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2017년부터 본격적인 보수 작업이 시작되어, 드디어 지난해 복원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몇몇 주민들이 이곳에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는 ‘인권단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민들과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병으로 낙인찍혀 세상과 단절된 채 요양원을 집으로 삼았고,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또다시 강제 이사를 마주한 주민들.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을 겪고도 묵묵히 견디며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평생을 떠돌며 제자리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시대의 아픔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러성요양원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이곳에 살아 있는 주민들의 평안한 삶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臺灣世界遺產潛力點,文化部文化資產局。
2. 樂生訪調小組,「樂生系列報導」,鳴人堂。
3. 李國盛,「樂生生與死:保留社會記憶的代價?」,光華雜誌。
4. 林于玄,「『以院為家』的樂生居民,為什麼被迫待在猶如鳥籠的新大樓?」,關鍵評論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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