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의 전쟁과 평화
-서양 열강의 개입, 19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단초
-동북아 근대사를 변화시킨 사건들, 그 역사 속에 우리 모두 참여했었다
-목적의 지정학적 갈등, 외교적 해법 왜 못 찾나
-2025.11.24.(월)
-시사평론
세계 슈퍼 강국, 유일한 패권국가 미국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집권 기간 외교 안보 정책에서 ‘피봇 투 아시아(아시아로의 회귀)’를 제시했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우선 순위를 다시 조정하면서 중국의 굴기에 대응하며 견제하고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1기 때부터 본격적인 대 중국 무역전쟁이 시작된 후,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면서 기술패권 경쟁에서 핵심 분야를 정확하게 선별하여 장벽을 높게 친다는 ‘스몰 야드 하이 펜스(작은 정원에 높은 장벽)’ 정책으로 중국을 견제하였다. 올해 1월 제47대 대통령으로 복귀한 트럼프는 대 중국 압박은 유지하지만 내정과 경제를 최우선 순위로 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상호관세’ 폭탄이나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 ‘비비비(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등 모두 일단 자국의 부를 확보하며 흔들리지 않을 패권 지위를 확인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경제 강국으로 늘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던 일본, 플라자협의라는 단순한 요인은 아니더라도 여하튼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일본, 일본 신임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는 최근 ‘타이완 유사시’ 관련 발언에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을 시사하며 동북아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외교적인 해법을 찾으려 했을 것이지만 현재 드러난 사실 모두 상호 갈등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일 양국의 외교 갈등에 ‘타이완’이 끼어있다. 베이징당국이 맹공을 퍼붓는 건 그들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기반한 것이고, 일본은 타이완 유사시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기반하여 자국 안보에 대해 일본 국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다카이치가 처음부터 그런 발언을 할 것이란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두고 베이징에서는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며 연일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으로 여행도 안 가고, 일본 제품도 불매하며, 일본으로 유학도 안 간다,,,는 등의 사회 현상이 일고 있을 때, 우리가 물건너 불구경하며 박수 칠 때는 아니라고 본다. 특히 일본이 타격을 입을 때의 어부지리의 기타 국가도 이 지역에서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웃으로써 편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옆집에 불이 났는데 우리가 무사할까? 따라서 옆에서 부채질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지역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개성이 뚜렷하지만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 올해 2/28(워싱턴 시간)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가 ‘너는 협상할 만한 카드가 없다’는 논조와 제대로 외교적 대접도 안 해주며 약자의 굴욕과 내쫓기는 듯한 모습에 전 세계가 경악했던 게 떠올랐다. 그 사건으로 타이완이 고민한 바가 큰데, 그걸로 무엇을 배웠는지, 필자는 아직 잘 모른다.
이틀 전, 트럼프는 미국 보수 성향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의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되찾기 위하여 잃을 게 너무 많아보였다. 28개 조항에는 우크라이나의 의견은 들어가 있지 않다고 본다. 트럼프는 권위주의 수뇌들, 승자와의 거래를 선호한다. 그렇다 보니 우크라이나는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권리도 빼앗긴 상황 아래서 무조건적인 해당 평화협정에 대해 수용할 것을 압박받고 있는 실정이다. 매우 슬픈 국제 현실이다.
국제 분쟁과 갈등, 지정학과 지경학적인 계산, 외교에는 영원한 친구나 적은 없다. ‘사불승정’이라는 4자 성어를 자주 쓴다. 사악한 기운은 바른 기운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무슨 상황에서든 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기도 한데,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옳은 게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옳은 것’이라는 논리가 자주 등장한다. 이긴자가 맞고, 이긴자가 진리라는 황당무계한 논리가 거침없이 우리의 사고를 흔들고 있다.
현재 진행형 국제 사건을 바라보며 근대사 속 역시 타이완이나 한국과 관련 있는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한국 근대사 중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각각 프랑스와 미국과 관련되어 있다. 전자는 병인박해 사건, 후자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당시 조선 강화도를 공격한 사건들이다.
거의 같은 시기의 타이완과 한국은 마침 어느 같은 사람이 중국 대륙, 타이완, 한반도, 일본에 출현하였었다. 프랑스계 미국인 샤를 르 장드르라는 군인이며 외교관이었고, 1870년대에 청나라 조정이 타이완의 원주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빌미로 일본의 타이완 침략(보복)을 부추겼고, 조선도 일본의 영향력 안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다. 게다가 타이완 지도를 자세하게 그려 일본에게 넘기며 일본의 제국주의가 시작되는 걸 촉진한 사람이기도 하다.
보름쯤 전에 타이베이토크에서 ‘대만민주국’에 대해 조금 언급했던 바 있다. 당시 조선 문제로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청나라가 패하면서 타이완, 펑후 등 섬들을 일본에 넘겼던 갑오전쟁으로 인한 시모노세키조약의 체결이라는 근대사는 오늘날의 동북아 정세를 보며 유사한 면을 생각하게 한다. 일본이 탐냈던 타이완섬과 어부의 섬으로 불릴 만큼 천혜의 어장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펑후섬이 일본 제국주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당시 타이완에 파견되어 있던 청나라 지방행정장관(순무, 탕징송)은 이를 거부하며 ‘타이완민주국’을 1895년5월25일에 세웠지만 국제간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고, 존재했던 기간은 매우 짧았다.
1895년에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 일본은 수 차례 타이완섬에 상륙했던 바 있다. 이중에서 1871년 류큐(지금의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어민들이 타이완 남부 해상에서 조난사고를 당해 지금의 타이완 남부 헝춘반도 지방에 상륙하여 현지 (파이완족)원주민들 부락에서 잠시 머물다가 신병안전을 고려하여 도주하는 과정에서 원주민과 소통 착오로 충돌이 벌어지며 66명 중 54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이었고, 1879년에 이르러 일본이 강제 합병한 곳이다.
생존자들이 돌아간 후 일본은 류큐 어민들을 위해 나서주겠다며 1874년 타이완으로 파병해 ‘보복’ 명의의 전투를 벌였다. 그게 바로 ‘牡丹社 (파이완족 원주민족에 속하는 한 부족 마을 이름)사건’이다. 이 전투에서 원주민족 두목 부자를 포함한 전사가 발생하였고, 일본군은 22명이 전사하였는데, 실제로는 650명이 현지에서 죽었다. 원인은 학질(말라리아 병원충을 가진 학질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전염병)이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 승리한 것 같지도 않지만 여기에 또 당시의 식민주의, 제국주의 열강이 개입하였었다. 일본은 당시 중국에 영국 공사로 재직하고 있던 영국 외교관 토머스 프랜시스 웨이드에게 조율을 의뢰하며 영국이 강하게 개입하였고, 그래서 청나라로 하여금 백은 50만 냥을 배상하도록 하였다. 일본이 처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배상하라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근.현대사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그런 식으로 다른 나라들을 상대했다는 사례는 적지 않다고 본다.
양안 문제를 거론할 때 ‘2027년’이라는 시간표가 심심치 않게 뜬다. 시진핑이 장기 집권을 위해 이때 타이완을 무력 침공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필자는 누가 누구는 안 때린다… 라는 게 아니라 베이징은 그때까지 자신감 있게 전쟁을 벌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어서 2027년 타이완해협 전쟁 설에 대해 동의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그리고 최근 중-일 간의 갈등 상황을 보며 이게 바로 뜻하지 않은 ‘변수’이며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전쟁에는 승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승자는 없다.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외교이지만, 외교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최적의 방법이라 믿는다. -白兆美
원고,보도: 백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