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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은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나라죠. 원주민만 살던 섬이었다가 중국 한족의 인기 이민지로 떠올랐고, 또 대항해시대에는 ‘포르모사’, 아름다운 섬으로 불리며 유럽 국가들의 주목을 받았죠. 그 뒤로 정씨왕국, 청나라, 일본의 통치를 차례로 겪고 나서 지금의 ‘중화민국 타이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요, “타이완 문화가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아마 100명의 타이완인에게 100가지 답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이민사회였던 탓에 독립된 국가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공존의 분위기가 더 깊게 자리했기 때문이죠.
타이완 문화의 날 ✨
‘타이완 문화’라는 개념이 처음 싹튼 것은 일본 식민지 시대였습니다. 당시 타이완 지식인들은 일본 정부의 압박에 맞서 사회운동을 일으키며 타이완만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중심에 선 단체가 바로 ‘타이완문화협회(臺灣文化協會, 이하 문협)’, 1921년 10월 17일 창립된 문화 조직입니다. 린셴탕(林獻堂), 장웨이수이(蔣渭水), 차페이훠(蔡培火), 라이허(賴和)를 비롯한 타이완 청년들이 ‘문화 향상을 도모하자(謀文化之向上)’는 뜻으로 힘을 모았죠. 학교를 세우고, 강연을 열고, 신문사를 만들고, 시민운동을 조직하면서 타이완 역사상 문화가 가장 활짝 피어났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협 창립 80주년을 맞은 2001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10월 17일을 ‘타이완 문화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그날이면 전국의 문화기관이 무료로 개방될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며 온통 축제 분위기입니다. 올해 행사는 ‘문화로 뭉치자, 타이완의 길을 걷다!(文化鬥陣來──行出臺灣家己的路)’라는 주제로 타이완만의 문화를 느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타이완의 길을 찾아 떠나는 ‘문화 성지 순례’, 함께 걸어보실까요?
2025 타이완문화일 메인 비주얼 - 사진: 문화부
비행기에서 시작된 타이완인의 각성 ✈️
타이완문화협회는 설립부터 해체까지 단 10년만 존재했지만, 타이완에서 현대적인 정치의식과 문화의식을 지닌 첫 번째 단체입니다. 1920년까지 타이완은 20년간 크고 작은 항일운동이 벌어졌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무력으로는 식민권력에 맞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식인들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죠. 그 답이 바로 문협이었습니다.
1920년 11월, 타이완 최초의 비행사 셰원다(謝文達)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타이베이에서 첫 시범비행을 선보였습니다. 그날, 장웨이수이를 비롯한 청년들은 환영회를 열어 뜻이 맞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는데요. 이들은 청나라 시절 과거시험으로 출세한 구세대와는 달리,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은 ‘신시대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시대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MZ세대죠. 비행기를 조종해 타이베이 하늘을 날던 셰원다가 타이완인들에게 꿈을 심어줬던 것처럼, 이 젊은인들은 일본이 자랑하던 ‘문명’을 그대로 무기로 삼고, 식민지 백성들에게 새로운 선택을 보여줬습니다. 즉, 주먹이 아닌 시위와 집회 같은 비폭력적인 방식을 택한 거죠.
랜드마크① 👉︎ 징슈여고, 문협의 시발점
문협 창립식은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 있는 카톨릭 학교 ‘징슈여고(靜修女中, 현 징슈고등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이곳은 현지 최초의 여자중학교로 타이완 여성교육의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문협의 정신과는 일맥상통이죠. 창립식 현장에는 무려 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는데, 지식인 외에도, 농민, 상인, 노동자까지 각계각층이 모였습니다. 지하철도 고소철도도 없던 시절에는 타이완 사회 전체가 깨어났던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 국내에서 유행하던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デモクラシー)’, 그리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던 ‘민족자결(self-determination)’ 사상이 있었고, 중화민국을 탄생시킨 ‘신해혁명(辛亥革命)’과 조선의 3·1 운동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문협은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랜드마크② 👉︎ 다안병원, 문협의 본부
문협의 본부는 장웨이수이가 세운 ‘다안병원(大安醫院)’에 있었습니다. 1층에는 장웨이수이의 진료실과 협회 사무실, 2층에는 그의 주택과 병실이 있었습니다. 문협 산하 신문지 《타이완민보(台灣民報)》의 본부도 같은 건물에 있었는데요. 일본어만 실린 관제 언론과 달리, 《타이완민보》는 타이완인이 만든 신문으로 한문과 일본어가 함께 실렸습니다. 당시 신문은 ‘뉴미디어’였던 만큼, 지식 보급에 핵심적 역할을 했죠. 또한 글을 모르는 국민들을 위해 연극, 영화,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문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문협이 추구한 ‘모든 국민이 문화를 접할 권리’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타이완민보》의 배송 현장 - 사진: 안우산
하지만 1931년 장웨이수이가 세상을 떠난 후, 다안병원은 매각되어 과자가게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이메이 식품회사(義美食品公司)’ 본사 자리입니다. 한국인 사이에서 초코볼과 타이완식 홈런볼로 유명한 브랜드죠. 한편, 장웨이수이를 기념하기 위해 병원 터 옆에는 ‘장웨이수이 기금회’와 ‘웨이수이 역참(渭水驛站)’이라는 박물관이 세워졌는데요. 이곳에서 다안병원의 건축 모형과 《타이완민보》 관련 사료를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문협이 소재한 다다오청에서 활약했던 음악가 덩위셴(鄧雨賢)의 ‘다다오청 행진곡(大稻埕行進曲)’를 함께 들어보시죠!
랜드마크③ 👉︎ 타이완신문화운동기념관, 옛 타이베이 경찰서 북부지서
문협이 벌인 캠페인 중 가장 오래 지속된 것은 ‘타이완 의회 설치 청원 운동(台灣議會設置請願運動)’인데요. 1921년 린셴탕이 일본 제국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1934년까지 총 15차례 청원했습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타이완인의 마음 속에 법치사회와 헌정정신을 심어줬고, 타이완 지방의원의 민선이라는 작은 변화를 낳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운동을 막기 위해 언론 통제, 특권 회수, 협회 분열 등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그래도 운동의 뿌리를 완전히 뽑을 수는 없었죠. 결국 1923년 대규모 체포 행동인 ‘치경사건(治警事件)’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운동 참여자 대부분은 일본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라 일본 사회의 큰 주목을 받았고, 많은 일본 변호사들이 타이완에 와서 법적 협조를 제공하기도 했죠. 그 결과 장웨이수이와 차이페이훠만 4개월 징역을 받았고, 나머지는 3개월 징역이나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치경사건' 재판(위) 및 출옥(아래) 기념사진 - 사진: 안우산
의회 운동 중 여러 차례 타이베이 경찰서 북부지서에 잡혀간 장웨이수이는 여러 풍자적인 글을 남겼는데요. 〈북부지서 기행(北署遊記)〉과 〈북부지서 세 번 들르기(三遊北署)〉 에 경찰서를 호텔로 비유하고, 심지어 ‘일신관(日新館)’이라 이름을 지으며 “감옥에 갇혔지만,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매일 새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살던 일신관 자리는 지금 까르푸 매장이 되었지만, 맞은편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경찰서로 쓰이다가 2018년 ‘타이완신문화운동기념관(臺灣新文化運動紀念館)’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문협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관련 프로그램:
[경찰의 날] ‘나무경찰대보살’에서 시민의 벗까지, 타이베이 경찰서 북부지서
북부지서 유치장 - 사진: 안우산
동포는 단결해야 하고 단결은 강력하다! 💪
문협의 규모가 커지면서, 노선 차이로 1927년부터는 격진적인 ‘신문협’과 점진적인 ‘타이완민중당(台灣民眾黨)’ 등 여러 단체로 분열했습니다. 그러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 정부는 단속을 한층 강화했고, 결국 모든 문협 조직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짧은 10년이었지만, 문화,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타이완인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향후 타이완 본토의식의 토대가 되었죠. 문협을 둘러싼 운동은 당시 타이완 전 국민이 함께 벌인 하나의 혁명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닙니다.

문협 관련 조직 - 사진: 안우산
타이완 문화는 다원성의 상징이라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어렵지만, 문협은 그 최대 공약수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열을 겪으면서도 장웨이수이가 말했듯이 “동포는 단결해야 하고 단결은 강력하다(同胞須團結,團結真有力)”는 메시지는 오늘날 타이완 문화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문협 관련 랜드마크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으시다면, 타이완문학관에서 출판한 《문협 100곳(文協一百點:臺灣真有力地景指南)》을 참고해 보셔도 좋습니다. 다음주에는 지금 타이완신문화운동기념관에서 재최 중, SNS에서 큰 화제를 모은 특별전시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臺灣新文化運動紀念館常設展「黃金年代的光與影」簡介。
2. 國立臺灣文學館, 江昺崙, 林運鴻, 張怡寧,《文協一百點:臺灣真有力地景指南》。
3. 趙靜瑜,「屬於我們的台灣文化日」,中央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