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10일은 중화민국 타이완의 건국기념일이자 국경일인 쌍십절(雙十節)입니다. 쌍십절은 1911년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날로, 매년 이날이면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에서 정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경축행사가 열립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쌍십절 행사를 보면, 보통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식전공연, 국경대회, 그리고 주제공연인데요. 그 가운데 국경대회에서는 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주석 치사, 교포 대표 치사, 국경예찬(國慶禮讚), 그리고 총통의 담화가 이어집니다. 오늘 소개할 무대는 바로 이 ‘국경예찬’입니다. 올해 국경예찬은 타이완 중부 장화현(彰化縣)의 다춘(大村)초등학교 합창단과 탕바오바오 다치 악단(唐寶寶大器樂團)이 함께 꾸몄습니다.
‘탕바오바오(唐寶寶)’는 다운증후군을 뜻하는 중국어 ‘唐氏症(탕스정)’의 ‘탕(唐)’과 아이를 뜻하는 ‘바오바오(寶寶)’를 합친 말로,‘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표현한 단어입니다. 이 단체는 장애를 가진 7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악단으로, 이번 무대에서는 오카리나 연주를 맡아 진심 어린 축복을 전했습니다.
함께 무대에 선 다춘초등학교 합창단은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있는 학교의 대표 합창단입니다. 2000년에 창단된 이후,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23년에는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국제합창대회에서 대회 최고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와 맑고 투명한 오카리나 선율이 어우러져 희망과 따뜻함이 가득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이번 국경예찬은 총 5곡의 타이완어, 즉 민남어 노래로 구성되었습니다. 하나하나의 노래에는 타이완의 시대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들리고 있는 노래는 바로 그 중 첫 번째 곡, 1933년에 발표된 타이완어 유행가 <슬픈 달밤>(月夜愁)입니다.
춘춘(純純) <슬픈 달밤>(月夜愁)
이 곡은 작사 저우텐왕(周添旺), 작곡 덩위셴(鄧雨賢), 그리고 가수 춘춘(純純)이 노래했습니다. 가사는 타이베이의 ‘삼선로(三線路)’에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애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1930년대 당시 타이완에서는 자유연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많은 연인들이 당시 타이베이에서 유일하게 가로등이 설치된 거리인 ‘삼선로’에서 데이트를 즐기곤 했습니다. 저우텐왕은 그곳의 풍경과 이별의 쓸쓸한 정서에서 영감을 받아 이 노래의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 통치 시기에는 일본어 가사로 바뀌어 군가로 사용되었고, 1970년대에는 다시 <사랑하는 이여 잘 가세요>(情人再見)라는 중국어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어 덩리쥔(鄧麗君) 등 유명 가수들이 부르며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남았습니다.
두 번째로 이어진 곡은 <황혼의 고향>(黃昏的故鄉)입니다.
원샤(文夏) - <황혼의 고향>(黃昏的故鄉)
이 곡은 1959년, 타이완 가수 원샤(文夏)가 일본 노래 <붉은 석양의 고향>(赤い夕陽の故郷)을 개사해 만든 곡입니다. 가사는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의 향수와 그리움을 담고 있으며, 특히 계엄 시기에는 국민당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해외 타이완인들에게 눈물의 노래로 불렸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한때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타이완의 역사와 정서를 상징하는 민남어 민요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세 번째 곡은 흥겨운 리듬의 <산 위의 멋쟁이 청년>(山頂的黑狗兄)입니다.
위청칭(庾澄慶) 버전의 <산 위의 멋쟁이 청년>(山頂的黑狗兄)
원래는 1930년대 유럽 알프스 지역의 요들송 <알프스의 우유 배달부>(The Alpine Milkman)를 일본에서 번안한 곡을, 타이완의 작곡가 겸 가수 겸 영화배우인 홍이펑(洪一峰)이 다시 개사해 부른 곡입니다. 곡의 후렴에는 특유의 요들창법 “U Lay E Lee~”가 등장해, 산속의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엄 시절 당국은“ ‘반공대륙(反攻大陸)’을 준비하는 비상시기인데, 산 위에서 노래하며 즐기는 가사가 게으르고 한가로운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내 군민의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네 번째 곡은 <유랑하는 집시 소녀>(流浪的吉普賽姑娘)입니다.
장수나(江淑娜) & 차이샤오후(蔡小虎) 버전의 <유랑하는 집시 소녀>(流浪的吉普賽姑娘)
1956년 일본 가수 오츠 미코(大津美子)가 부른 동명의 원곡을, 타이완 작사가 좡치셩(莊啟勝)이 중국어 가사로 번안해 만든 곡입니다. 청춘과 열정으로 빛나지만,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운명 속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품은 집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노래입니다. 가사는 쓸쓸하지만, 멜로디는 부드럽고 경쾌해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기운까지 느껴집니다.
마지막 곡은 <물레방아 소녀>(水車姑娘)입니다.
천수화(陳淑樺) - <물레방아 소녀>(水車姑娘)
1967년, 당시 겨우 9살의 천수화(陳淑樺)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로, 그녀의 데뷔곡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한국계 일본 엔카(연가) 가수로 유명한 미소라 히바리(美空 ひばり)의 노래 <바위 위에서 염불을>(裸念仏ぁ岩の上)을 개사한 곡으로, 시골의 물레방아를 돌리며 도시로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순박한 소녀의 마음을 그려냅니다. 경쾌한 멜로디 속에서도 농촌의 따뜻한 정서와 어린 소녀의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이후 이 곡은 팡루이얼(方瑞娥) 등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타이완의 대표 민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다섯 곡으로 구성된 이번 2025년 중화민국 쌍십절 국경행사의 국경예찬 무대는, 단순한 축하 공연을 넘어 세대를 잇고,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는 따뜻한 자리로 꾸며졌습니다. 오카리나의 맑은 선율, 아이들의 합창, 그리고 탕바오바오 단원들의 환한 미소가 어우러져, 타이완의 다양성과 포용,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엔딩곡으로는 팡루이얼 버전의 <물레방아 아가씨>를 들으며, 맑은 목소리와 경쾌한 선율처럼 여러분의 하루에도 밝고 따뜻한 기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이상, 진옥순이었습니다.
팡루이얼(方瑞娥) 버전의 <물레방아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