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3대 산수화 감상
(오프닝)1925년 베이징에서 개원한 고궁박물원(이하 약칭 ‘고궁), 20세기를 다 보내기까지 범관의 ‘계산행여도’,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가 베이징이나 타이베이에서 동시에 전시된 적은 없다. 그러다가 21세기로 접어든 후 ‘송나라 서화 특전’, ‘중화민국 건국 100년’, ‘고궁 개원 100년’… 등의 주제로 3점이 동시에 전시된 바 있다. 이 3점의 작품은 천년 이래 회화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옥배추나 동파육은 역사나 미술사적인 의미는 없지만 인기유물에서는 으뜸이다.
국립고궁박물원 진원국보 송대 3대 산수화 작품 감상 - 1:
중국 미술사에서 최고 작품으로 추대되는 북송시대 범관(약 950(오대 말기)-약1032년)의 <계산행여도>는 처음 감상하는 이에게는 아름답다라기 보다는 ‘어떻게 화폭 정중앙에 저렇게 거대한 산을 그렸지?’라는 의문과 함께 이게 왜 미술사에서는 최고로 불리는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그림 자체는 후세 산수화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송나라 사실주의 산수화의 진수, 송대 철학이 담겨있다는 걸 차츰 알아보게 된다.
전형적인 북송 대형 산수화의 교과서격이다. 멀리서 그림을 바라볼 때 가까운 데에서부터 먼 곳까지의 근경, 중경, 원경의 구도로 나눠진 간결한 배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가까운 근경인 하단 중앙에 큰 바위가 보인다. 여기에서 조금 올라가면 바로 중경의 위치인데 나무들이 무성하고 큰 바위들이 있다. 또한 당나귀들이 일렬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진하고 있는데 나귀 행렬의 앞과 뒤에 각각 나귀를 부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특히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는 듯한 사람은 당나귀들이 잘 따라오는지 살펴보듯이 뒤 돌아보며 무언가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모종의 따뜻함이 느껴지며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근경과 중경을 먼저 본 후, 원경을 집중적으로 바라본다면 화폭의 3분의 2를 차지한 어마어마하게 높고 거대한 산은, 보는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높이 들어 우러러보게 한다. 이에 위압감이 드는 분은 이렇게 큰 바위산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관전 포인트는 디테일에 있다. 중앙 위치를 독점한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산의 오른쪽에 가느다랗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명 우렁찬 울림의 폭포수가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림 중경의 어디론가 가는 당낙귀떼를 봤을 때처럼 원경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소리가 저절로 들리는 듯할 것이다.
저 멀리 구름과 안개가 보인다. 족자 형식의 길쭉한 그림에서 근경, 중경, 원경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그림 속의 주역은 원경이라고는 하지만 화폭의 65%를 차지하는 크고 높은 산이다 보니 중경의 상인 또는 나귀를 부리는 사람이나 당나귀들은 아주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다. 서로 대조되면서 이 그림 속 산의 웅장한 기세가 더욱 돋보인다.
필자가 대학교 때 ‘중국회화사’를 가르치신 은사님은 국공내전의 전란 속에서 중요 문화유산을 지켜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와 고궁 서화처 처장, 고궁 부원장까지 역임하셨던 리린찬(이임찬, 1913-1999) 선생이다. 은사님 덕분에 고대 미술 감상의 눈을 뜰 수 있었고 순수 미술에 더하여 작가의 철학과 기법, 후대에 준 영향, 시대 배경 등을 알 수 있었고, 미술 감상은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가치를 일깨워 주셨다.
‘계산행여도’가 진정 북송 초기 범관의 작품이라는 게 확실시 된 것은 67년 전(1958년), 당시 작품을 정리할 때 은사님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뉴싱췬(우성군) 님이 우연히 그림 우측 아래자락 당나귀들이 지나간 바로 뒷쪽(화면에서는 오른쪽) 나뭇잎이 우거진 곳에 ‘범관’이라는 두 글자가 숨겨져 있는 걸 발견하였다고 한다. 뉴싱췬 님은 허드렛일을 하시는 문맹이었지만 늘 옆에서 일하며 같이 작품을 볼 기회가 많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심히 그림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 좀 보세요. 여기 나뭇잎 사이로 이거 혹시 글씨 아닙니까?’ 그렇게 전문가 리린찬에게 건낸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은사님의 미술사 이론과 감상, 윈난(운남) 모소족의 한어-티벳어(시노-티베탄) 언어군 연구 관련 저서는 고대 미술과 소수민족 언어의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범관은 북송 초기의 산수화가로 스스로 ‘나의 그림 선생은 자연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생애의 대부분 시간을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을 관찰하였고, 전례없는 독특한 스타일의 산수화 구도와 기법을 창조하였다. 범관의 산수화는 북방의 자연, 화북지역 산수화를 대표하고 있다.
화폭을 가득 메꾼 산들의 윤곽은 아직도 뚜렷하다. 산을 그냥 먹물로 ‘칠’하지 않고, 산 속 나무들을 비교적 짧은 선들로 겹겹이, 짙거나 옅은 먹색으로, 바위는 밝거나 어두운 입체감으로 돌의 질감을 표현하였다. 오늘날의 사실주의 서양 그림과 대조하면 ‘이게 무슨 사실화인가?’라고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북송시대 범관은 자연을 선생으로 모시어 평생 자연 생태를 관찰하면서 산수화를 그렸고, 그림에는 그의 너그러운 마음씨와 겸손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있다. 그는 1천 년이 넘게 중국 회화의 스승님으로 회화나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로부터 숭앙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필자가 범관의 ‘계산행여도’ 감상을 강력 추천드리는 이유이다.
고궁 개원 100주년, 고궁 (타이베이 고궁) 재개원 60주년, 고궁 남원(타이완 쟈이) 개원 10주년의 특별한 해인 2025년, 지난 11월11일부터 오는 12월28일까지 42일 동안 고궁 남원에서 전시된다. (전시기간은 42일이 넘는 것같지만, 월요일 휴관을 제외하면 총 42일이다)
고궁을 대표하는 3대 명작 범관 ‘계산행여도’, 곽희(약1000-1087년) ‘조춘도’, 이당(1066-1150) ‘만학송풍도’는 모두 국보이자 전시 기간이 제한된 보호 작품들이다. 지금으로부터 900년 내지 1000년이 넘는 작품이라서 더욱이 조심히 보존해야 하는 문화유산이다.
이들 3대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유물 보호 차원에서 앞으로는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11월11일부터 12월 28일 사이 고궁 남원에서 ‘갑자만년(甲子萬年) – 국립고궁박물원 개원100주년 특전’ 시리즈의 일환으로 전시되며, 바로 최근에는 2021년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닫혔었음) ‘진원국보’를 주제로 특별전시를 한 바 있다. 조금 더 앞으로 가면 2011년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 축하 ‘국보 총동원’ 테마로 3점이 함께 선보였고, 2006년 ‘북송 서화 특전’에서도 한 번 만난 바 있다. 이건 모두 21세기의 특전이다. 20세기 타이베이 고궁에서는 3점이 동시에 전시된 적은 없다.
이상 11월11일 고궁 남원 ‘갑자만년’의 진원국보 특전 오프닝 세리머니를 다녀온 후 은사님과 작품을 추억하며 북송시대 범관의 ‘계산행여도’ 감상 포인트를 말씀드린 데 이어서 남은 시간은 기타 두 작품 송나라 곽희의 ‘조춘도’와 이당의 ‘만학송풍도’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국립고궁박물원 진원국보 송대 3대 산수화 작품 감상 - 2:
북송시대 곽희(약1000-1087년)의 ‘조춘도’는 북방 산수화의 대표적 걸작 범관의 ‘계산행여도’처럼 큰산이 있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두 화가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다. 곽희의 산수화는 유연하며 뭉글뭉글한 면이 있다.
그림 속의 산들을 보면 중앙 축에서 우회하며 돌아서 가는 듯하고, 산과 산 사이는 주산과 그 산을 보조하는 듯한 비교적 낮은 산이 어우러져 있어서 산세의 다양한 형태와 분위기를 보여주고, 기암괴석 자체는 율동감과 활력마저 보여지고 있는데, 산들이 우회적이지만 아주 질서있게 연출한 구도여서 매력적이다.
높은 산을 애워싸는 듯한 안개와 구름은 부드러움을 더해주고, 산을 중심으로 양측에는 골짜기와 평탄한 들판, 누군가가 담소를 나누거나 깊은 철학이나 경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누각도 보인다.
필자가 보는 조춘도에는 단지 이른 봄날의 생기와 안개 구름의 촉촉함 외에 ‘사람냄새’가 나는 산수라고 여겨진다. 그림 속 인물이 먼길을 가는 건지, 귀가를 하는 건지, 아낙과 아이들이 아빠를 마중 나오는 듯한 장면들이 따뜻하다. 먹색의 농담을 이용해 산수의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조명 효과를 화폭에 담아낸 ‘조춘도’는 작가 곽희가 1072년에 창작하였다는 낙관이 있다.
국립고궁박물원 진원국보 송대 3대 산수화 작품 감상 - 3:
송나라 이당(1066-1150년)의 <만학송풍도>는 소나무숲으로 뒤덮인 그림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림 속의 산은 누가 봐도 깊은 산속이다. 비록 빼곡한 듯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 안에 솔잎향이 가득하고 소나무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듯한 느낌이다. 산속 계곡은 좔좔좔좔 흐르는 물소리가 감상하는 내내 들리는 듯하다. 그림 좌우를 둘러싼 산체는 중앙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전체적인 깊이감을 주고 있다. 빼곡이 우거진 소나무숲이긴 하나 소나무숲과 뒷편의 산벽 사이에는 공백을 두는 방식으로 구름과 안개를 표현하고 있어 산세의 전후 순서가 더욱 분명하고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곽희와 마찬가지로 창작 시기를 명확히 그림에 적어놓았다. 북송이 멸망하기 3년 전(1124년)이라고 표기하였다. 고궁 3대 명작은 송나라 때 궁정 화가이든 산속에 은둔한 문인이든 그림에 낙관을 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그들이 이름을 작품에 남겼고, 북송시대 예술가 황제에서부터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른 궁중에서 이들의 작품을 소장했던 것만으로도 일찍이 이들 3인의 예술성과 우수성을 알아봐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떠한 천재인화(자연 재해와 사람이 일으킨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白兆美
북송(960-1127. 수도 변경, 오늘날의 하남성 개봉)
남송(1127-1279, 수도 임안, 오늘날의 절강성 항주)
취재/원고 보도 : 백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