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모든 영역에서의 개척자✨
타이완 골수이식과 줄기세포 분야의 1인자, 의사이자 작가 천야오창(陳耀昌) 선생님이 지난 11월 17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타이완 의계와 문화계 인사들의 애도가 잇따랐는데요. 천야오창 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한 스충량(石崇良) 현 위생복리부 장관도 자신의 추억을 나눴습니다. 그는 “선생님은 첨단기술이 부자들만 쓰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직접 회사를 차리셨다. 상아탑에 남아 계셨다면 편하게 후광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산업계에 뛰어들어 도전에 맞서셨다. 앞으로 더 이상 선생님께 여쭐 수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의학계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만년에는 역사 연구에 몰두하면서 역사소설로 등단해 ‘63세 신예 작가’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소재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착실한 연구와 현장조사를 통해 가려져 있던 이야기를 발굴해, 살아 있는 캐릭터와 서사로 지나간 세월을 재현했습니다. 이에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은 “의료와 문학, 그리고 잠시 몸담았던 정치까지 모든 영역에서 개척자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는데요. 아마 그의 삶을 가장 잘 요약한 한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주 천야오창 선생님의 삶과 초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 오늘은 이어서 이후의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타이완 3부작 🌼《괴뢰화》《사두화》《고련화》
시간순으로 19세기 타이완 원주민과 이 섬에 온 다른 민족들 사이의 충돌을 다룬 ‘타이완 3부작’. 지난주에는 그 중 1부 《괴뢰화(傀儡花)》, 그리고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카뤄(斯卡羅)>를 소개해 드렸죠. 드라마가 큰 화제를 모이면서 이 세 편의 소설 역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요. 대항해시대라는 국제무대 속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타이완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사두화》🦁
2부 《사두화(獅頭花)》는 1부 《괴뢰화》의 이야기에서 8년이 지난 1875년, 핑둥(屏東) 스즈(獅子)에서 벌어진 ‘사두사 전쟁(獅頭社之役, 스터우서 전쟁)’을 주제로 합니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청나라 시대의 타이완은 중국대륙 끝자락의 변방이라,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원주민과 미국, 일본 사이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점점 청나라 정부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하지만 원주민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한족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이 오히려 더 격해졌고, 그 결과는 끊임없는 무력 충돌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이어진 사두사 전쟁은 청나라의 승리로 끝났지만, 원주민의 치열한 저항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1875년 핑둥 스즈에서 벌어진 '사두사 전쟁'을 다룬 《사두화》 - 사진: 보커라이
오늘날 타이완에서 ‘이행기 정의(轉型正義)’ 하면, 대부분 1945년 이후 독재정권이 국민에게 가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요. 그런데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온 원주민과 한족 간의 충돌도 반드시 마주해야 할 과제입니다. 천야오창은 바로 소설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특히 청나라와 일본 정부의 공식 기록 속에서 ‘패배한 쪽’으로 남아 있는 원주민 부족 ‘다궤이원(大龜文)’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재해석하며, 보다 다양한 관점을 독자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는 소설 서문에서 “목숨을 바친 원주민을 기억하기 위해, 전투가 끝난 5월 21일을 ‘원주민 영웅의 날’ 혹은 ‘원주민 순난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천야오창의 연구에 따르면, 핑둥 출신에 4분의 1의 파이완족(排灣族) 혈통을 가진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은 당시 다궤이원 원주민과 청나라 병사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2016년 8월 1일 원주민의 날을 맞아 차이잉원 전 총통은 정부를 대표해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에게 사과했다. 이어 8월 14일에는 핑둥 산디먼(三地門)을 방문해 파이완족 행사에 참석했다. - 사진: 총통부
원주민의 눈물과 용기를 담은《고련화》⚜️
마지막으로 3부 《고련화(苦楝花)》입니다. 여전히 원주민의 이야기지만, 제목도, 배경도, 형식도 앞의 두 작품과는 많이 다른데요. 우선 제목부터가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 보랏빛 꽃을 피우는 ‘고련수’의 꽃에서 따왔습니다. 천야오창은 이 꽃의 꽃말인 ‘수호’, 그리고 ‘앞을 향해 바라본다’는 이미지를 빌려, 동부 화롄(花蓮)과 타이둥(台東)을 무대로 청나라가 시행한 원주민 정책과 그 속에서 원주민들이 겪었던 폭력을 날카롭게 그려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원주민족은 더 이상 핑둥 파이완족만이 아닌 아메이족(阿美族), 사치라야족(撒奇萊雅族), 다우롱족(大武壠族), 마카다오족(馬卡道族), 베이난족(卑南族) 등 다양한 부족이 있습니다.

고련화 - 사진: 타이베이시공무국
과거 원주민 관련 기록은 문자가 없었던 탓에 한족이 남긴 문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야오창은 책상 앞에만 앉아 있지 않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부족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았죠. 또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과 각본 형식을 택했으며, 타이완 3부작에 또 다른 느낌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청나라가 시행한 원주민 정책과 그 속에서 원주민들이 겪었던 폭력을 다룬 《고련화》 - 사진: 보커라이
원주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타이완 역사 ⛰️
천야오창은 후기에서 3부작을 “청나라 시대 타이완 원주민 정책인 ‘개산무번(開山撫番)’의 과정”이라고 정리했습니다. 1부에서는 원주민이 외세와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2부에서는 원주민과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투, 3부에서는 청나라 통치가 한층 강화된 후, 완전히 달라져 버린 원주민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유독 크게 부각되는 지금 같은 시대일수록, 교과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이러한 역사 이야기는 더더욱 소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이어서 화롄 아메이족 출신 가수 이리·가오루(Ilid Kaolo, 以莉·高露)의 ‘알알이 익은 벼 이삭(結實纍纍的稻穗)’을 함께 들어보시죠. 아이가 천천히 어른으로 자라 가는 과정을 벼 이삭이 조금씩 알알이 영글어 가는 모습에 빗댄 노래입니다.
문화적으로 가장 찬란한 1920년대... 《섬의 햇빛》 ☀️
데뷔작과 3부작 다음에는 일본 식민지 시대 한 타이완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섬의 햇빛(島之曦)》이었습니다. 천야오창은 《괴뢰화》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우연히 ‘린스하오(林氏好)’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린스하오는 타이완 최초의 성악가이자 여성운동가이고, 그의 남편 루빙딩(盧丙丁) 역시 같은 시대를 살던 사회운동가입니다.
특히 루빙딩은 타이완 최초의 대형 문화 단체 ‘타이완문화협회(台灣文化協會, 약칭 문협)’와 타이완 최초의 정당 ‘타이완민중당(台灣民眾黨)’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 부부에 대한 기록과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그 점이 오히려 천야오창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죠. 그는 문협 창립 100주년을 맞았던 2021년, 이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섬의 햇빛》을 발표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문화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1920~30년대 타이완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린스라오 사인 - 사진: 위키백과@린장펑(林章峰)
린스하오와 루빙딩을 위한 위령곡 🎵
또한 루빙딩은 1932년 한센병에 걸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한센병 병원 ‘러성요양완(樂生療養院)’에 수용되었는데, 4년이 지나고 중국으로 이송된 후에는 소식이 끊기고 말았죠. 홀로 남겨진 아내 린스하오는 세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버티고 또 버텨, 결국 일본에 가서 성악을 배우고 유명한 가수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섬의 햇빛》에 대해 천야오창은 “이 부부를 위한 위령곡”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한센병 환자 인권운동에 투신한 천야오창은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누구보다 깊은 슬픔과 공명을 느꼈을 겁니다.
▲관련 프로그램:
세상과 단절된 곳, 한센병 전문병원 '러성요양원(樂生療養院)'
지금 듣고 계신 노래는 바로 린스하오가 부른 ‘붉은 달걀(一個紅蛋)’입니다. 붉은 달걀은 과거 출산을 축하할 때 나누던 선물이었는데, 이 곡은 아이를 낳지 못한 남편 때문에 임신과 출산의 기회를 갖지 못한 여성의 슬픔을 노래합니다. 동시에 이런 상실감을 통해 식민통치를 받던 타이완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의학계, 문학계, 정계, 사회운동 현장까지 뛰어든 천야오창 👨
한편, 타이완을 향한 천야오창의 사랑은 문학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와 사회운동의 현장으로도 발글음을 옮겼는데요. 2006년까지 민진당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비리 사건을 계기로 탈당했고, 이후 타이완인권연맹에 합류했습니다. 의학계, 문학계, 정계, 그리고 사회운동 현장까지 모두 그의 몸짓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타이완을 위해 역사를 남기고, 역사를 위해 타이완의 이름을 남긴 작가” 천야오창 선생님. 그의 삶과 작품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 이 땅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기를 바라면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醫師作家陳耀昌辭世 文化部將呈請總統明令褒揚」,文化部。
2. 陳政偉,「為台灣原住民發聲 陳耀昌苦楝花照亮後山歷史」,中央社。
3. 楊舒媚,「斯卡羅外一章》陳耀昌追出蔡英文原漢譜系 第一手資料直送總統府」,風傳媒。
4. 蔡雨辰,「在《傀儡花》用一條注釋說不完的,就用一本小說講完它──專訪陳耀昌《島之曦》」,博客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