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 지금 바로 <랜드마크 원정대>에 합류하세요!
2025 금마장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대몽(大濛)> 🥇
요즘 타이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바로 2025 금마장(金馬獎)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대몽(大濛)>인데요. 제목 ‘대몽’은 타이완어로 ‘罩雺(tà-bông)’,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는 뜻입니다. 무언가 똑바로 보이지 않고, 진실이 가려져 막막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는데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타이완 백색테러 시대의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딱 한 단어로 시각화한 표현이죠.
이 영화는 15살 소녀가 사랑하는 친오빠가 총살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그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안개 속을 헤매듯, 끝까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지금 듣고 계신 노래는 영화의 OST ‘안개가 자옥한 밤(大濛的暗眠)’입니다. 음악과 함께, 잠시 그 시대의 공기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보시죠.
타이완의 가장 큰 아픔... 백색테러 🌫
백색테러, 영어로는 ‘화이트 테러(White Terror)’,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대규모 암살과 숙청으로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주로 우파 정권이 좌파 세력을 대상으로 한 경우를 이렇게 부르고, 반대로 좌파 정권이 자행한 폭력은 ‘적색테러(Red Terror)’라고 부르죠. 또 ‘백색’이라는 표현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왕권을 상징했던 백합의 흰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주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계염령 시대(戒嚴時代), 독재정권이 국민에게 가했던 인권침해를 가리킵니다.
민주화 이후에는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이행기 정의(轉型正義)’ 작업이 무척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있다면, 타이완에는 2·28국가기념관과 국가인권박물관이 있습니다. 장제스 전 총통을 기념하던 중정기념당 역시 권위적 상징에서 국민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의 흔적과 민주화 역사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중정기념당 - 사진: 중정기념당
이 가운데, 타이완 백색테러 시대의 자료와 연구를 맡고 있는 국가인권박물관은 과거 사상범 감옥이었던 ‘징메이 기념단지(景美紀念園區)’와 ‘뤼다오 기념단지(綠島紀念園區)’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사의 아픔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매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징메이인권단지에서는 관련 행사가 열리며, 총통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은 물론, 많은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이 자리에 함께합니다.
세계 인권의 날인 오늘, 타이완 국가인권박물관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국가인권박물관 - 사진: 문화부
사상범의 수감 과정... 🚨
영화 <대몽>의 배경으로 잠시 돌아가 보면요. 1947년 발생한 민중봉기 2·28사건을 계기로 타이완 토박이인 ‘본성인(本省人)’과 중국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 사이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여기에 중화민국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타이완으로 옮겨오고, 국제적으로 냉전 구조가 굳어지면서 1949년 5월 19일 ‘타이완성 계럼령’이 선포되었습니다. 1987년 7월 15일 해제까지 무려 38년 동안 타이완 사회는 고도의 통제를 받았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권리가 심각하게 제한되었습니다.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졌죠.
당시 사상범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경찰에 체포된 후 구치소에 구금되고, 군사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되면 타이베이 남쪽의 ‘징메이 교도소’ 혹은 타이둥(台東)의 ‘타이위안(泰源) 교도소’, 외딴섬에 있는 ‘뤼다오 교도소’ 등으로 보내져 복역하게 되었습니다.

징메이 교도소 내부 - 사진: 신베이시관광국
타이완 경비총사령부의 심장, 징메이 교도소 👮
이 중 징메이 교도소는 구치소, 감옥, 군사법정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겸비해서 사상범 대부분이 한 번은 거쳐 가야 했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비슷한 이미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타이완 정치사에서 이름을 남긴 황신제(黃信介)와 스밍더(施明德) 전 민진당 당대표, 뤼슈롄(呂秀蓮) 전 부총통과 천쥐(陳菊) 현 감찰원 원장, 그리고 작가 보양(柏楊)까지 모두 이곳에서 수감된 바 있습니다. 1979년 타이완 민주화에 큰 영향을 미친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의 재판도 징메이의 제1법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징메이 제1법정에서 열린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의 재판 - 사진: 신타이완연구문화교육기금회
백색테러 시대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모든 타이완사람의 마음속에는 작은 경비총부가 있다(每個人心中都有一個「小警總」)”라고요. 여기서 말하는 ‘경비총부’는 타이완 경비총사령부(臺灣警備總司令部), 중화민국 국군 소속의 옛 비밀경찰 및 국가안보 기관입니다. 주로 공산주의와 타이완독립 세력을 통제하는 임무를 맡았고, 계염령을 발포하고 관리하는 핵심 기관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옛 중앙정보부와 비슷한 조직이었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경비총부는 지금도 많은 타이완사람들의 마음속에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경비총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군법처(軍法處)’가 바로 징메이 교도소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상범으로 지명된 이들이 조사를 받고 심문을 거친 후, 안건이 군법처로 넘어가면 이곳에서 기소, 군사재판, 형벌이 차례대로 결정되었습니다. 사형 선고 역시 군법처에서 내려진 겁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공평한 재판과는 거리가 멀었고, 법을 통해 진실을 가리는 작업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92년 경비총부가 해체될 때까지, 징메이는 무고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던 국가의 차가운 손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경비총사령부 군법처 구치소로 쓰인 징메이 단지 런라이러우(仁愛樓) - 사진: 신베이시관광국
민주화 이후의 이야기에 앞서, 영화 <대몽> OST를 조금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이행기 정의의 실천 ✨
2000년대에 들어 이행기 정의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징메이 교도소는 인권기념단지로 지정되었습니다. 2007년 처음 대외에 개방된 후, 2018년에는 국가인권박물관 속소의 ‘징메이 기념단지’로 자리잡게 되었죠. 단지 안에는 사상범이 실제로 수감되었던 감옥, 심판을 받았던 군사법정, 그리고 백색테러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인권기념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행기 정의 작업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2022년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 원장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백색테러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인권기념비 - 사진: 신베이시관광국
또한 국가인권박물관이 주최하는 ‘인권예술생활페스티벌’도 해마다 ‘세계 인권의 날’ 전후로 이곳에서 열립니다. ‘불의의 유적지(不義遺址)’라 불리는 공간에서 음악,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 형식으로 타이완의 역사를 재현하며 다음 세대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사인데요. 올해 축제는 ‘못다한 길: 끊이지 않는 메아리(未竟之路:聲生不息的迴音)’를 주제로, 예술과 정치를 결합해 낯선 타인의 목소리를 우리 삶의 일부로 만들고, 관객이 단순히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이야기의 주체가 되도록 합니다. 축제는 오는 14일까지 진행됩니다.

2025 인권예술생활페스티벌 현장 - 사진: 국가인권박물관
타이완사람의 피, 땀, 눈물이 스며 있는 징메이 교도소, 이제는 과거의 아픔을 힘으로 바꾸는 곳이 되었습니다. 민주화의 산증인으로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죠. 다음주는 계속해서 타이둥(台東) 외해에 있는 뤼다오 기념단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白色恐怖景美紀念園區 - 國家人權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