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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테러 시대 사상범의 지옥... ⛈
제주도가 관광지로 떠오르기 전, 원래는 죄인들의 유배지였죠. 한양과 멀리 떨어져 있고 바다라는 천연적인 장벽이 있어 통제하기 쉬웠기 때문인데요. 타이완에도 이와 비슷한 섬이 있습니다. 바로 태평양에 자리한 외딴섬 ‘뤼다오(綠島)’입니다.
타이둥(台東)에서 배를 타면 약 50분이 소요되며,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자(ふロウシャ)’를 거두는 수용소가 이 섬에 설치되었습니다. 1950~1980년대 백색테러 시대에는 지난주 소개해 드린 ‘징메이(景美) 교도소’와 함께 타이완의 양대 사상범 감옥으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즉, 수많은 인권침해가 일어났던 어두운 역사의 현장이죠. 민주화 이후에는 조폭 두목들이 많이 수감되면서 ‘형님의 고향(大哥的故鄉)’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뤼다오 교도소 현재 모습 - 사진: 타이둥현정부
이처럼 특별한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배경 때문에 뤼다오는 오랫동안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관광이 허용된 후에는 바다 풍경과 해저 온천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이곳에 새겨진 정치적 기억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습니다.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타이완 정부는 2002년 뤼다오 교도소를 인권기념단지로 지정해 시민에게 공개했고, 2018년부터는 국가인권박물관 소속으로 편입해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태평양의 바람을 따라, 오늘은 타이완 인권운동의 중요한 랜드마크 ‘백색테러 뤼다오 기념단지’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뤼다오 단지 항공샷 - 사진: 교통부 관광서
사상개조의 중심 ‘신생훈도처’ 🖤
최근 몇년 간 타이완의 영상 콘테츠를 보면, ‘뤼다오’가 인기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2022년 개봉한 영화 <류마거 15호(流麻溝15號)>, 그리고 올해 초 방송된 <별빛 아래 흑조의 섬(星空下的黑潮島嶼)> 모두 1950년대 뤼다오의 ‘신생훈도처(新生訓導處)’를 무대로 합니다. 신생훈도처는 기념단지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시설인데요. 이름만 들으면 마치 신입생을 위한 학생과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은 사상범을 가두고 개조하던 교도소였습니다. 당시 수감자들은 ‘신생(新生)’이라 불렸는데, 사상개조 과정을 통해 반공투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신생훈더처 제3대대를 재현한 전시 - 사진: 교통부 관광서
신생훈더처는 원래 타이베이 네이후(內湖)에 있었고, 수감자가 많아지면서 1951년 보다 고립되어 있고 사상개조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뤼다오로 옮겨졌습니다. 위치는 바로 앞서 언급한 일본 식민지 시대 ‘부랑자 수용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수감자들은 삼민주의, 국부유훈, 공산주의 비판 등 사상 교육을 받는 동시에, 병사들과 수감자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막사 건설, 농사, 축산 등 강제 노동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스스로의 감옥을 스스로 만든다(自己的監獄自己蓋)”라는 말이 유행했죠.
참고로 출판인이자 인권운동가 고 차이쿤린(蔡焜霖) 선생님은 1951년 5월 17일, 처음으로 뤼다오 신생훈도처로 이송된 사상범 중 한 명이었습니다. 수감자는 가장 많을 때 2,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관련 프로그램:
문화수출의 새로운 가능성 열어! 백색테러 VR영화 <떠날 수 없는 사람>
만화로 본 백색테러, 《칭수이에서 온 아이(來自清水的孩子)》프랑스 문학상 수상
사상범 교도소 ‘오아시스 산장’ 🌴
1960년대에 들어 뤼다오와 가까운 타이둥에도 사상범 수용소 ‘타이위안(泰源) 교도소’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1970년 타이완독립을 주장한 수감자들이 무력시위 ‘타이위안 사건’을 일으킨 후, 정부는 타이위안 교도소에 있던 사상범들을 모두 뤼다오로 집중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늘어난 사상범을 수용하기 위해 신생훈도처 옆에 새로운 감옥 ‘오아시스 산장(綠洲山莊)’을 건설했고, 신생훈도처도 업무 내용이 강화되어 ‘경비총사령부 뤼다오 지휘부’로 개편되었습니다.

오아시스 산장 내부 - 사진: 교통부 관광서
오아시스 산장, 얼핏 들으면 리조트 같은 공간이죠. 그런데 신생훈도처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 아래 사상개조의 잔혹함을 ‘신생’, ‘오아시스’ 같은 긍정적인 단어로 포장한 이름일 뿐입니다.
오아시스 산장의 주로 건물은 십자 모양의 ‘팔괘루(八卦樓)’로, 감방 안은 통풍이 잘 되지 않고 햇볕은 강하게 들어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감방 한 칸에는 약 10명의 수감자가 함께 지냈습니다. 수감자는 중국통일을 주장하는 ‘빨간 파’와 타이완독립을 지지하는 ‘흰 파’로 나뉘었고, 평소에는 잘 지내지만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징메이 교도소에서 이곳으로 이송된 사람도 많았는데, 대표적으로는 스밍더(施明德) 전 민진당 당대표와 작가 보양(柏楊) 등이 있습니다. 자유가 올지, 죽음이 올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시간 속에서, 이들은 감옥에서 청춘을 바쳤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집이 너무 멀다” 중화민국 고군(孤軍) 이야기, 보양(柏楊) 《이역(異域)》
뤼다오 세레나데’ 🎵 뤼다오의 노래 아니라고!?
이어서 뤼다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 ‘뤼다오 세레나데(綠島小夜曲)’를 함께 들어보시죠. 이 노래는 원래 단순한 사랑 노래고, 가사 속의 ‘뤼다오’는 우리가 아는 섬이 아니라 타이완 전체를 상징하는데요. 노래가 발표된 1954년의 분위기를 보면, 검열 때문에 비유적인 표현으로 그리움을 노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정부가 사상범을 뤼다오로 이송하면서 이 노래는 ‘정치범의 노래’로 오해되기 시작했죠. 2011년 작사·작곡자 딸의 조사를 통해 이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사상범의 감옥에서 인권의 섬으로✨
30여 년간 폐쇄적인 시간이 흐른 뒤, 뤼다오는 마침내 진정한 ‘신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계엄령 해제와 함께 오아시스 산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이어 1997년 입법위원들의 제안으로 산장과 신생훈도처를 비롯한 감옥 지역이 지금의 기념단지로 지정되었습니다. 1999년 세계 인권의 날에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지켜본 가운데, 백색테러 피해자의 이름이 새겨진 ‘인권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2015년 설립된 징메이 단지의 기념비보다 훨씬 이전이죠. 또한 징메이 단지에서 열리는 ‘인권예술생활페스티벌’처럼 뤼다오 단지에서도 ‘뤼다오 인권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됩니다.

피해자 명단이 새겨진 인권기념비 - 사진: 고통부 관광서
타이완 정치사를 바꾼 ‘장난 사건(江南事件)’ 🔫
한편, 계염령 해제 이전, 타이완 민주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84년 발생한 ‘장난 사건(江南事件)’입니다. 현재 징메이 단지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특별한 2층 단독주택이 있는데, ‘왕시링 특구(汪希苓特區)’라고 합니다. 이곳은 장난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왕시링 전 정보국장과 후이민(胡儀敏) 부국장이 구금되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럼 장난은 누구일까요? 그는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전기를 발표한 타이완계 미국인 작가, 본명 류이량(劉宜良)입니다. 1984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화민국 국방부 정보국이 흡수한 강패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장난이 작성한 《장징궈 전기》 - 사진: 聚珍臺灣
사건 진상이 밝혀지자 미국이 대타이완 군비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타이완-미국 관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중화민국 정부는 정보국이 독단으로 집행한 비밀제재라며, 장징궈 총통의 직접 명령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왕시링 정보국장은 사실상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징메이 교도소에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았고, 신체의 자유만 제한되었습니다. 장난을 살해한 조폭 천치리(陳啟禮)와 우둔(吳敦)도 마찬가지로, 뤼다오 교도소에서 ‘애국자’ 대접을 받으며 담배를 피우고 롭스터를 먹는 특권 생활을 누렸다고 합니다.
장난이 살행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주장은 장난이 장징궈 총통 전기의 발표를 고집하며 장씨집안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사건 이후 장징궈 총통은 더 이상 독재를 강행할 수 없었고, 결국 민주화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장난 사건은 타이완 정치의 분수령으로 평가됩니다.

장난 - 사진: 위키백과
자유의 소중함 ❤🩹
자유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에게는 장난 작가가 겪은 일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백색테러 시대, 징메이와 뤼다오 감옥에 수감된 대부분 사람은 아무런 죄가 없었고, 그저 책을 읽거나 한마디를 뱉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청춘을 잃어버렸죠. 이 아픔을 잊지 않고 자유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지난주부터 징메이와 뤼다오 인권기념단지를 함께 걸어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白色恐怖綠島紀念園區,國家人權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