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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에 맞선 시민들의 외침! 1977년 중리(中壢)에서 ✊️

1977년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중리 시민들이 경찰서를 포위한 장면 - 사진: 위키백과
1977년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중리 시민들이 경찰서를 포위한 장면 - 사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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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한국 협업 영화 <1977년, 그해 그 사진> 📷

어느덧 2025년도 이제 일주일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오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죠. 날씨는 몹시 춥지만, 거리 곳곳에 번지는 연말 분위기 속에서 마음만은 조금 따뜻해지는 하루입니다.

이런 연말에 반가운 소식 하나 더 있는데요. 한국 배우 진영이 출연한 타이완 영화 <1977년, 그해 그 사진(那張照片裡的我們)>이 오늘 타이완에서 개봉했습니다. 최근 큰 호평을 받고 있는 타이완 백색테러 영화 <대몽(大濛)>처럼,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아픈 역사를 전하는 작품입니다. 지금 듣고 계신 노래는 이 영화의 감독에게 영감을 준 곡, 타이완 가수 인샤(銀霞)의 ‘1977년 타이베이에서(民國六十六年在台北)’입니다.


1977년  중리에서... 부정선거 사건 🗳️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 1977년의 타이완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우선 외교적으로 보면, 타이완이 유엔에서 탈퇴한 지 6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남아 있던 우방국은 고작 23개국뿐이었습니다. 방금 소개해드린 노래에도 이런 가사가 나오죠.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어도 당당히 버텨서 남들이 우리를 다시 보게 하리라.(縱然身處國難裡 爭氣讓外人看得起)” 내부적으로는 눈부신 경제 성장이 이뤄졌지만, 기본적인 자유권에 대한 강한 통제 때문에 사회적 불만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영화 <1977년, 그해 그 사진>이 다룬 ‘중리 사건(中壢事件)’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배경은 1977년 11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였습니다. 이 선거는 1950년 지방자치 시행 이후 규모가 가장 컸던 선거로 꼽힙니다. 얼마나 치열했냐면, 군대에서 특정 선거구 출신 병사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휴가를 허가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타오위안현의 선거전이 특히 치열했는데, 선거 과정에서 집권이었던 국민당의 부정선거 정황이 알려지면서 타오위안의 중심지인 중리(中壢)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타오위안현의 모든 투표소는 개표를 다시 진행하게 되었고, 그 결국 무소속 후보인 쉬신량(許信良) 후보가 23만 표를 얻어, 국민당 후보자의 14만 표를 크게 앞서며 당선되었습니다. 


중리 사건의 핵심 인물, 쉬신량 전 민진당 당대표 - 사진: 쉬신량 페이스북

‘중리 사건’은 타이완 민주화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선자 쉬신량 역시 훗날 민진당의 당대표를 맡을 만큼, 타이완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성격상으로는 1960년 한국의 3·15 부정선거와도 많이 닮아 있죠. 이번 영화가 타이완과 한국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데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는데요. 1970년대, 타이완 정부가 태권도를 군대에 도입하면서 한국인 코치를 초빙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 설정을 바탕으로 한국 배우 진영이 영화에서 태권도 코치 역할을 맡게 된 거죠.

뿐만 아니라, 중리는 하카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이라, 영화의 주요 언어는 하카어입니다. 마침 오는 12월 28일은 타이완 ‘하카족의 날’, 그리고 내년 11월 타이완에서는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기도 하죠. 이 시기를 맞아 오늘은 ‘중리 사건’ 현장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타오위안 사람이 아닌 중리 사람이다”👍

중리 사람들에게는 조금 특이한 점 하나가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타오위안시 중리구(옛 타오위안현 중리시)’지만, 자기소개 할 때 “타오위안 사람입니다”라기보다는 “중리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인데요. 이런 정체성은 타오위안 지역 안에서 두 개의 발전 중심이 서로 경쟁해 온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타오위안 지역은 청나라 시대부터 북쪽의 타오위안과 남쪽의 중리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민족 구성도 뚜렷했는데, 북쪽은 민난인(閩南人), 남쪽은 하카인(客家人)이 중심이었습니다. 민족 구분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던 시절에는 현장이나 의회장 같은 주요 자리를 민난인과 하카인이 번갈아 맡는 불문율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이어진 미묘한 라이벌 관계 속에서, 중리 사람들은 ‘타오위안’보다는 ‘중리’에 대한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 거죠. ‘중리 사건’의 핵심 인물인 쉬신량 전 타오위안현장 역시 중리 출신입니다.


타오위안의 중심 중리(中壢) - 사진: 중리구공소


국민당 신세대에서 당외 운동의 리더로 ⭐️

쉬신량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먼저 살펴보면, 장징궈(蔣經國)가 1972년 행정수반으로 취임한 이후,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동시에 타이완의 외교적 고립에 대응하기 위해, 점차 본성인 엘리트를 등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총통 취임 후에도 본성인 셰둥민(謝東閔)과 리덩후이(李登輝)를 부총통으로 임명했죠. 이런 흐름 속에서 지식인들은 시국을 보다 과감하게 비반하고, 국민당 체계 밖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이른바 ‘당외 운동(黨外運動)’을 적극 펼쳤습니다. 쉬신량은 바로 당외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쉬신량은 원래 국민당 소속이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총통을 꿈꿔왔고, 국민당 소속이었던 정치대 정치학과에 진학하자 국민당에 입당해, 학교와 당 양쪽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았죠. 그러나 영국 유학 기간에는 철학과 좌파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데요. 귀국 후 국민당 개혁파 계열의 간행물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국민당 정부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평론들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77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의 추천 없이, 자발적으로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적이 박탈되어 무소속 후보로 나서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이상을 품은 많은 젊은이들이 쉬신량의 선거 캠페인에 합류하게 되었고, 카니벌 같은 활기찬 유세 활동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사용된 캠페인송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아주 유명했던 타이완어 노래 ‘사계홍(四季紅)’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곡이었는데요. 다만 제목에 들어간 붉은 ‘홍’자가 공산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제목은 ‘사계요(四季謠)’로 바꿔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중리 시민들이여, 일어나라!🔥

당시 사회 분위기가 예전보다 많이 개방되어 있었지만, 부정 선거는 여전히 매우 보편적이었습니다. 1975년 입법위원 보궐선거를 보면, 당외 인사로 큰 주목을 받았던 궈위신(郭雨新) 후보가 낙선되었는데요. 선거에서 무려 8만 장의 표가 무효표로 처리되었고, 궈위신에게 투표된 일부 표가 폐기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쉬신량은 선거를 세 달 앞둔 시점부터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개표를 감시하는 감표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감표 인원들은 투표소 접근 자체 금지되었고, 일부는 경찰의 심문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1977년 11월 19일, 투표가 진행되던 바로 그날, 중리초등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쉬신량에게 투표된 표가 무효표로 조작된 일이 발생했는데요. 이와 비슷한 부정 행위들이 잇따라 드러나자, 시민들은 중리 경찰서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죠. 날이 저물고 밤이 되면서 시민과 경찰의 충돌이 격해졌고, 결국 경찰서 건물이 불에 타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 두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까지 벌어졌습니다. 

참고로, 2014년 ‘신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자신이 헌병이었다고 주장한 인물은 사태를 부추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화를 저질렀다고 증언했는데요. 이 때문에 결찰국 방화가 시민의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정부 측의 자작극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삶은 우여곡절의 연속... 😣

그렇다면, 같은 시간 사건의 중심 인물 쉬신량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투표일 오후 4시, 그는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타이베이로 향했습니다. 타오위안, 특히 그의 고향 중리는 선거의 중점 지역이었던 만큼, 많은 정부 인력과 정보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 그는 타이베이 경무처(현 경정서)를 찾아가 경무처장에게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과도한 처벌을 가하지 말아 달라고 직접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쉬신량은 정식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선거 후에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979년 1월, 그는 가오슝에서 발생한 시위 ‘차오터우 사건(橋頭事件)’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2월,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미국에 있었음에도 반란죄 혐의로 지명수배되었습니다. 그 결과, 쉬신량은 오랜 기간 미국에 머무르며 수배 상태로 귀국이 거부되는 아이러니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민주화 이후에야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와 정치운동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세계 인권의 날] ‘포르모사의 봄’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


가두시위의 시작 💪

중리 사건은 타이완에서 대규모 가두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로, 이후 민주화 운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남긴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이번에 이 사건이,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 한국과의 협업을 통해 한 편의 영화로 재탄생했다는 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접근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5년의 끝자락,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연말을 마무리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萬孟賢,「2025金馬影展|請回答1977!青春戀曲映照台韓歷史—《那張照片裡的我們》導演、主演訪問」,台北金馬影展。
2. 〈民國六十六年在台北〉,台灣流行音樂維基館。
3. 阿諺,「不要分那麼細:桃園、中壢的瑜亮情結」,敘事圈。
4. 房慧真,「【中壢事件40周年】許信良:群眾火燒警局時,我在三溫暖睡覺」,報導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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