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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리쥔이 울린 무대, 사라진 ‘중화체육관’의 영광과 쇠락 🎤

타이베이 아레나 맞은편 위치에 자리했던 12,000석 규모의 중화체육관 - 사진: 위키백과
타이베이 아레나 맞은편 위치에 자리했던 12,000석 규모의 중화체육관 - 사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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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첫 번째 시간이네요. 찬란한 새해맞이와 활기찬 신정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도 계속해서 타이완의 숨겨진 랜드마크들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80년대 타이완 최대 공연장 ✨중화체육관✨

한 해의 마지막 날, 많은 사람들은 콘서트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죠. 지난주에는 타이완 역사상 최초의 새해맞이 콘서트, 1986년 12월 31일 타이베이 중화체육관(中華體育館)에서 열린 ‘해피 파라다이스(快樂天堂)’를 소개해 드렸고요. 지금의 타이완에는 타이베이 아레나, 타이베이 돔, 가오슝 국가체육장 등 대형 공연장이 많지만, 1960~80년대에는 12,000석 규모의 중화체육관이 가장 대표적인 행사장이었죠. 콘서트는 물론이고, 중화권 영화대상인 ‘금마장(金馬獎)’ 시상식, 그리고 총통 취임 경축대회까지 당시의 중요한 순간들이 모두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1988년 한 행사에서 폭죽이 터지며 큰 화재가 발생했고, 체육관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복잡한 소유권 문제와 도시계획, 정치적 이슈가 얽히며 결국 철거되고,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로 남게 되었죠. 오늘은 40년 전 뜨거웠던 그 현장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해외교포 지원으로 탄생한 중화체육관 💰

중화체육관은 이름 그대로 한때 중화민국의 자부심이었습니다.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타이완의 정치·경제·외교 상황과도 아주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죠. 

체육관이 세워진 1960년대, 타이완은 여전히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중국의 부상과 함께 외교적 지위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타이완 농구협회는 제2회 아시아 농구선수권대회의 주최권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대회 장소로 가장 적합했던 ‘삼군 경기장(三軍球場)’이 이미 철거된 상태라 타이완은 마땅한 행사장이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대회를 불과 7개월 앞둔 시점, 애타던 농구협회는 해외교포라는 히든 카드를 꺼냈습니다. 당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 경쟁 속에서 교포 커뮤니티는 또 하나의 전장이었는데, 결국 도움의 손을 내민 인물은 태국 화교 사업가 린궈창(林國長)이었습니다. 그의 협조로 중화체육관은 1963년 3월 28일 착공해, 10월 31일 기척처럼 완공되었습니다. 단 7개월 만에 이런 대형 행사장을 세운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이었죠. 덕분에 같은 해 11월 이곳에서 열린 아시아 농구선수권대회도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중화체육관은 20여 년 동안 타이완 최대 공연장으로서 수많은 ‘처음’의 순간들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타이완 최초의 컬러 생중계 📺

첫 번째 기록은 1972년 타이완 3대 방송국 TTV(臺視), CTV(中視), CTS(華視)가 사상 최초로 공동 진행한 컬러 생중계 특별 프로그램 ‘중싱의 밤(中興之夜)’입니다. 세 방송국의 연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채로운 공연을 펼쳤죠. 당시 타이완의 텔레비전은 아직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는데, 컬러 티비 자체는 아주 트렌디한 아이콘이었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 타이완의 유엔 탈퇴를 비롯한 여러 외교적 어려움 속에서 이처럼 스케일이 큰 프로그램은 국민들을 고무하는 매우 의미있는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중싱의 밤’은 타이완 방직회사 중심방직의 설맞이 행사입니다. 유명 배우와 가수, MC들은 물론, 타이베이 징메이여자고등학교 의장대와 경극단도 무대에 올라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죠.


덩리쥔 데뷔 15주년 콘서트 in 타이베이 🎶

그리고 두 번째 기록은 한국분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타이완의 레전드 가수, 덩리쥔(鄧麗君)의 콘서트입니다. 1984년 1월 7일과 8일, 덩리쥔의 데뷔 15주년 아시아 콘서트 투어가 타이베이를 찾아갔습니다. 콘서트 제목은 ‘10억 번의 박수갈채’, 덩리쥔이 가진 시대적 의미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죠. 이 공연은 타이완 최초의 대형 상업 콘서트로, TTV와 Rti 방송국이 중계 작업을 맡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당시 덩리쥔이 콘서트에서 불렀던 ‘야래향(夜來香)’ 함께 들어보시죠.


대중음악 산업의 기반이자 콘서트 경제의 선도자 💿️ 

타이완 대중음악이 활발하게 성장하던 1980년대, 중화체육관은 이 산업의 토대를 지탱해준 아주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덩리쥔뿐만 아니라, 뤄다유(羅大佑), 수뤠이(蘇芮), 그리고 ‘해피 파라다이스’를 노래한 12명 가수들까지 모두 이 곳에서 목소리로 타이완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죠. 여기에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 커팅 크루(Cutting Crew), 로보(Lobo) 등 해외의 유명 팝 가수들도 잇따라 중화체육관을 찾아 타이완 팬들과 만났습니다.

이 가운데, 훗날 우바이(伍佰) 등 유명 가수를 발굴하고 타이베이시 문화국장이 된 음악 프로듀서 니충화(倪重華)는 중화체육관이 만들어낸 ‘콘서트 경제’에 특히 주목했습니다. 그는 1987년 ‘진언사(真言社)’라는 레이블을 설립해 국내외 가수들을 적극 섭외했는데요. 미국, 홍콩, 독일 가수들의 공연을 세트 상품처럼 판매하는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한편, 직접 콘서트 제작에도 나섰습니다. 그 첫 번째 자체 제작 콘서트가 가수 남매 치위(齊豫)와 치친(齊秦)의 공연이었는데요. 하지만 콘서트를 5일 앞둔 시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화재로 인해 3일간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결국 하루짜리 야외 콘서트로 급히 변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이 없는 법적 다툼... 👩‍⚖

사고의 발단은 ‘홍위안(鴻源)’이라는 투자회사의 창립 4주년 행사였습니다. 체육관 측의 명확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행사장 내부에서 폭죽을 터뜨렸고 이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겁니다. 무려 43대의 소방차가 출동한 끝에 불은 진화되었고, 만여 명의 관객 중 부상자는 15명에 그쳤지만, 건물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홍위안 측은 배상을 약속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악성 부도로 도산했고, 채권자 16만 명과 900억 뉴타이완달러가 넘는 부채를 남겼습니다. 이는 타이완에서 최대 규모의 기업집단형 경제범죄로 기록됩니다. 결국 중화체육관은 재건 공사를 중단한 채, 1990년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중화체육관 건설 자금을 냈던 린궈창의 손자 린밍자(林命嘉)가 재건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자금 부족과 소유권 문제로 인해 타이베이시정부와 체육관 관리를 맡았던 체육관기금회, 그리고 관계 업체들 사이에 끝없는 법적 다툼이 이어졌습니다. 타이베이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해 막대한 개발 이익과 직결된 땅이기 때문이죠. 지금 위치로 치면, 타이베이 지하철 그린라인 타이베이 아레나역 1번과 5번 출구 인근, 말 그대로 번화가 중의 번화가입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중화체육관 🍂

한때 타이완 최대의 공연장이었던 중화체육관은 타이완의 아름다운 세월과 함께 걸어왔지만, 장난처럼 벌어진 인위적 사고와 도시개발을 둘러싼 여러 갈등 속에서 결국 역사가 되고 말았죠. 2005년 타이베이 아레나가 완공되기 전까지 타이완 대중음악은 눈부시게 성장한 반면에, 타이베이는 약 15년 동안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없는 수도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체육관이 자리했던 곳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음에 타이베이 아레나역을 지나게 된다면, 기쁨과 눈물이 뒤섞였던 그 빈터에서 타이베이의 옛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廖明潔,「影響深遠的一把火,讓為音樂演出產業帶來許多養份的中華體育館化為烏有」,放言。
2. 「1988年毀於大火 中華體育館也是鴻源受災戶」,報時光。
3. 「台灣電視界共同合作之始! 1972年「中興之夜」三台彩色轉播開創新舉」,報時光。
4. 張哲生,「即將完工的中華體育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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