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바다의 민족 🐬
타이완과 같은 섬나라에서는 바다가 문화 형성에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생명을 낳은 어머니처럼 인류의 삶은 물론 오늘날의 지구를 형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죠.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바다에 대해 경외의 마음을 품어 왔습니다.
이러한 바다의 모습을 담은 문학 다큐멘터리 한 편이 최근 타이완에서 개봉했는데요. 바로 원주민 작가 샤만 란보안(夏曼.藍波安)을 주인공으로 한 <바다에 떠오르는 꿈(大海浮夢)>입니다. 그가 아들과 함께 나무를 베어 전통 카누를 만들고 바다로 나아가는 여정을 다룬 작품입니다. 문학 다큐 시리즈 ‘그들이 섬에서 글을 쓴다(他們在島嶼寫作)’의 하나로, 바다와 섬,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다큐의 주인공 샤만 란보안은 어떤 인물일까요? ‘바다의 민족’이라 불리는 다우족(達悟族) 출신인 그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해양문학 작가이자 원주민 작가입니다. 소년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우족의 깊은 문화를 문학으로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한족 중심의 타이완 문단에서는 매우 상징적이고 소중한 작가죠.
바다로 직접 떠나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요즘이지만, 오늘은 랜선을 타고 샤만 란보안이 들려주는 바다의 세계로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자신의 이름 찾는 길... ✨
다큐멘터리 티저의 첫 장면에서, 샤만 란보안은 다우족의 언어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타이완 원주민에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원주민은 타이완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사람들이었으나, 17세기 이후 중국대륙에서 이주해 온 한족, 그리고 여러 식민정권을 거치며 고유한 문화와 언어, 나아가 이름까지도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에 도시화가 더해지면서 고향을 떠난 이들은 점차 강세의 한족 문화의 영향을 받아 동화의 길을 걷기도 했죠.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원주민 권익 운동이 본격화된 후에야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문학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문자가 없었던 시절, 원주민 사회의 신화와 역사, 기억은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원주민들은 일본어로 소설과 에세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어로 창작을 이어 왔죠. 또 문학의 주제를 보면 신화와 정체성에 집중하다가 여성문학, 바다문학 등 다양한 방향으로 확정되어 왔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난 란위 다우족의 민족문학 🛶
1957년생으로 올해로 69세를 맞이하는 샤만 란보안은 바로 이러한 원주민 문학의 변화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가 속한 다우족은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외딴섬에 거주하는 원주민족으로, 산이 아닌 바다를 중심으로 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지리적 특성 덕분에 다른 원주민족에 비해 한족 문화의 영향을 덜 받았고, 비교적 온전한 전통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죠. 특히 카누 제작, 날치 신화, 어로 문화 등 다우족의 일상은 지금도 바다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다는 곧 다우족의 정체성입니다. 샤만 란보안도 자신의 작품을 “바다에서 태어난 다우족의 민족문학”이라고 표현해 왔습니다. 다우족이 살아가는 란위(蘭嶼)는 타이둥(台東) 남동쪽 태평양 위에 떠있는 작은 섬으로, 인구는 약 5천 명에 불과하지만, 오랫동안 외부의 결정으로 상처를 입었는데요. 1974년 타이완 정부는 이 작은 섬을 원전 폐기물의 저장소로 지정했고, 1988년 일부 시설이 완공되자 다우족 주민들은 저장소 앞에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샤만 란보안 역시 그 현장에 함께했던 사람 중 하나였죠. 이 작은 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려는 성향을 보여 왔습니다.

란위 원전 폐기물 저장소 앞에 펼쳐진 항의시위 - 사진: COOLOUD 천웨이룬(陳韋綸)
수능 가산점 거부하는 소년! 🥊
타이완에서는 원주민의 대학 진학을 장려하기 위해 가산점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데요. 그런데 대학 진학률이 매우 낮았던 당시, 샤만 란보안은 가산점을 거부하고 세 차례의 재수 끝에 원했던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란위 출신 고등학생이 가산점 없이 대학에 진학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또 계염령이 아직 해제되지 않았던 대학 시절, 원주민 관련 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결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원주민 스스로 개척해 온 역사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국가에 대한 정치적 정체성은 있을 수 있지만, 문화적 정체성까지 국가가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대학 졸업 뒤에는 타이베이에 머물며 다양한 일을 시도했지만,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지 못했고, 결국 1989년 고향 란위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원주민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공식 이름을 한족식 이름에서 원주민 이름으로 되돌렸습니다. 그리고 향후 약 10년 동안 다우족의 기록 정리에 헌신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기존 연구에 오류가 많다는 점을 발견했고, 직접 인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해 결국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처럼, 민족의 역사는 스스로 개척한 거죠.
이어서 다우족 출신 가수 셰융취안(謝永泉)과 샤만 라보안이 함께 부르는 다우족어 노래 ‘拼板舟下水禮讚 mapabosbos’를 함께 들어보시죠.
영혼마다 특별한 별 🌟
샤만 란보안의 눈에, 사람들은 언어와 민족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별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다우족의 신화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다우족 문화에서는 영혼마다 우주에서 대응하는 별이 하나씩 있으며, 그 별이 밝을수록 삶의 숨결이 길어진다고 믿습니다. 샤만 란보안의 별은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중 하나인 직녀성인데, 큰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아버지에게서 들은 오래된 신화를 바탕으로, 그는 결국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첫 번째 작품은 1992년에 발표된 《바다이만의 신화(八代灣的神話)》입니다.
바다이만은 란위를 대표하는 모래사장이고, 언제나 다우족의 전통 카누가 정박해 있는 곳입니다. 다우족의 바다 문화와 전통이 응축된 공간이기에, 책 제목으로 선택된 거죠. 샤만 란보안의 따뜻한 문장과 일러스트 작가의 생생한 그림을 통해 다우족의 생명력과 독특한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샤만 란보안의 데뷔작, 1992년에 발표된 《바다이만의 신화(八代灣的神話)》 - 사진: 보커라이
카누와 다우족 남성 👨
민주화 이후 타이완 사회의 역사 인식은 중국대륙 중심에서 점차 해양 중심의 시각으로 가고 있는데요. 그런데 샤만 라보안에게 지금의 타이완 문단은 여전히 육지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어에는 ‘지나간 배는 물에 흔적을 남지 않는다(船過水無痕)’는 속담이 있는데, 사건이 지나가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에 대해 샤만 라보안은 “흔적이 남지 않는 이유는 그 배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며, 다우족만의 발상을 보여줬습니다.
다우족 전통에서 카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화인데요. 카누는 물고기를 잡는 생계 수단이자 전통 의례의 핵심이며, 사람과 신 사이, 육지와 바다를 잇는 매개체, 곧 생명의 근원입니다. 다우족 남성은 아버지에게서 카누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함께 한 척의 카누를 완성합니다. 카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곧 성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이번에 개봉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샤만 라보안은 아들과 함께 카누를 만들고, 부자 간의 사랑을 넘어 문화의 전승을 보여줬습니다.
란위 다우족의 카누 문화 - 사진: 위키백과
바다 문학과 원주민 문학의 대가 ✍️
샤만 라보안은 타이완 원주민 문학과 해양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며 문단의 지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아이들을 위한 시집과 에세이집을 쓰고 싶다고 합니다. 란위의 바다는 다우족에게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곳이죠. 파도가 잔잔할 때도, 거칠게 일러일 때도, 샤만 란보안은 언제나 바다의 민족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呂珮綾,「名字、星球、拼板舟: 一次又一次地划槳,夏曼・藍波安以身體創作文學」,故事StoryStudio。
2. 李育霖,「臺灣的世界島嶼作家——夏曼・藍波安」,中央研究院。
3. 詹素娟,「大海仍在・浮夢幸福:『他們在島嶼寫作』——夏曼.藍波安」,OPENBOOK閱讀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