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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 청춘의 노래: 1970년대 타이완 교원민가(校園民歌)

1970년대에는 타이완에서 교원민가(校園民歌), 즉 캠퍼스 포크송 열풍이 일었다. - 사진: 국가문화기억은행 제공
1970년대에는 타이완에서 교원민가(校園民歌), 즉 캠퍼스 포크송 열풍이 일었다. - 사진: 국가문화기억은행 제공

지난주 연예계 소식 방송에서, 저는 최근 개봉한 타이완 영화 <1977, 그 해 그 사진>(那張照片裡的我們)을 소개해 드렸죠. 당시 1977년의 타이완은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경제가 점차 성장하고 있었지만 계엄 체제 아래 사회 전반에는 분노와 긴장이 쌓여가던 시기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 언급했던 것이 바로, 1977년이 교원민가(校園民歌),  캠퍼스 포크송’이 활발하게 울려 퍼지던 시기였다는 점이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1970년대 타이완 캠퍼스 포크송, 교원민가’를 대표하는 곡들을 중심으로 그 시대 청춘들의 감정과, 노래 속에 담겨 있던 의미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교원민가는 1970년대 타이완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대중음악 운동입니다. 이전까지 젊은 세대가 즐겨 듣던 음악은 주로 서양 팝이나 포크였지만, 1970년대 초반 국제 정세의 변화, 특히 UN 탈퇴, 미·중 수교, 그리고 이후 이어진 외교적 좌절은  젊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구호가 바로 자기 언어로, 자기 노래를 부르자”였습니다.  

1975, 음악가 양셴(楊弦)과 후더푸(胡德夫)가 타이베이 중산당에서 시인 위광중(余光中)의 현대시를 노래로 만든 공연을 열었고, 이 공연은 타이완 교원민가의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교원민가의 음악적 특징은 단순한 기타·피아노 편곡, 담백한 멜로디, 그리고 시를 노랫말로 삼은 높은 문학성입니다. 노래는 청춘, 향수, 자연,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고,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인문적 책임과 현실 인식을 함께 담게 됐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 타이완 대중음악 산업의 도약을 이끄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당시 민가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훗날 타이완과 중화권 음악계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1970년대 교원민가를 대표하는 곡들을 차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1977년 타이베이에서>(民國六十六年在台北) 

첫 곡은 영화 <1977, 그 해 그 시진>의 모티브가 된 노래, <1977년 타이베이에>입니다. 1977년 발표된 이 곡은 가수 인샤(銀霞)가 불렀으며, 그녀의 형부이자 작곡가인 류자창(劉家昌)이 당시 미국과의 단교가 예고되던 격변의 국제 정세 속에서 만들었습니다.  가사에는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  

바로 이곳이 순간에 분발하리라 

자신을 사회에 보태어  

그대의 삶에 의미를 더하리라 

1977년을 기점으로  

모든 이가 더욱 힘써 나아가리라 

비록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더라도  

당당히 버텨서  

남들이 우리를 다시 보게 하리라.”  

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인샤의 목소리로 <1977년 타이베이에서>를 함께 들어보시죠.  

2. <용의 후손>(龍的傳人) 

이듬해인 1978, 미국과의 단교가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타이완 사회에는 더 큰 충격과 정체성의 고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탄생한 곡이 바로 <용의 후손>입니다. 음악가 후더젠은 단교 소식을 접한 뒤 하룻밤 만에 곡과 가사를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초기에는 본인이 직접 불렀지만, 이후 가수 리젠푸(李建復)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용의 후손> 1900 8개국 연합군의 중국 침략이라는 역사적 기억을 영감으로, 외세에 의해 흔들린 역사가 미국과의 단교를 통해 다시 닥친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타이완은 계엄 체제 아래 있었고, 모든 노래는 정부의 사전 검열을 거쳐야 했습니다. 원래 가사에 있던 사면초가는 서양인의 칼”이라는 표현은 외교 문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삭제되었고, 여러 차례 수정 끝에 사면초가는 관용의 칼”이라는 표현으로 바뀐 뒤에야 발표가 허용되었습니다.  

노래에는 용, 장강, 황하 등 중국적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시 국민당 통치 하의 타이완 청춘들에게 중국은 교과서 속의 조국이자, 현실에서는 닿을  없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문화적 모체였죠. 청춘들은 문학과 악을    꿈과 상상 속에 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시대적 위치를 고민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손〉뿐만 아니라, 1970년  반에서도 이러한 중국적 상징들을    있습. 그럼, 많은 사랑을 받아온 리젠푸 버전으로 용의 후손 함께 들어보시죠. 

3. <올리브 나무>(橄欖樹) 

1979년에는 타이완 민가의 또 다른 대표곡, 치위(齊豫)의 데뷔곡 <올리브 나무>가 등장했습니다. 이 곡은 작가 산마오(三毛)의 시를 바탕으로작곡가 이타이샹(李泰祥)이 멜로디를 붙여 만든 작품입니다. 원래  제목은 작은 당나귀(小毛驢)”였지만, 노래로 부르기에  어울리도록 올리브 나무”로 바뀌었습니다.  

이 곡은 떠돌이와 자유, 먼 곳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는데, 떠돌이’라는 소재가 청소년들에게 나태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먼 곳으로 떠난다’는 표현이 정치적 연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치위의 맑고 감미로운 목소리와 이타이샹의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편곡 덕분에,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이처럼 1970년대 타이완 교원민가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청춘들의 정체성과 시대적 목소리, 문학적 감까지 담아낸 중요한 문화적 흐름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1977년 타이베이에서>, <용의 후손>, <올리브 나무>를 통해 당시 타이완 청춘들이 노래로 시대와 자신을 마주했던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끼실 수 있었길 바랍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도 타이완 음악과 문화 속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의 엔딩곡은 치위의 <올리브 나무>입니다. 지금까지 멜로디 가든, 진옥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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