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총통급 독서 리스트 📖
날씨는 몹시 춥지만, 지난주 내내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 안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종이책 특유의 향기,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여기저기서 오가는 열띤 대화 속에서 2026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열린 도서전에는 총 58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 2026년의 출판 시장에 희망의 빛을 비췄죠. 특히 라이칭더(賴清德) 총통과 장완안(蔣萬安) 타이베이 시장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들이 대거 참석해, 각자의 새해 독서 리스트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라이칭더 총통이 2026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구입한 책들 - 사진: 라이칭더 페이스북
이 리스트들을 들여다보면, 정치인의 관심사와 성격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요. 이 중 라이 총통이 추천한 책은 무려 63권! 타이완 문학부터 민주화 역사, 국제정세, AI와 과학기술, 야구, 그림책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우릅니다. 여기에 동성애 만화인 ‘보이즈 러브(BL)’와 ‘걸즈 러브(GL)’ 작품도 포함되어 있어, 타이완 사회의 다원성과 개방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총통 샤오메이친(蕭美琴)의 리스트는 또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데요. 국방안보와 지정학적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고양이와 의료, 양생 관련 책을 통해 개인적인 취향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총통급 독서 리스트’를 참고해서 2026년 나만의 독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아시아 최대, 세계 제4대 도서전으로 꼽히는 2026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을 화고하면서 이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주빈국 🇹🇭 태국식 크리에이티브 라이프
올해 도서전의 주빈국은 ‘미소의 나라’로 알려진 태국입니다. ‘태국식 크리에이티브 라이프’를 주제로, 태국 창작자들이 일상의 경험과 지역의 풍경을 바탕으로 태국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테마관 현장에는 커다란 태국 지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전시 도서는 지도 위치에 따라 방콕 작가, 북부 작가, 남부 작가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어, 마치 태국 여행 가이드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태국 궁궐을 모티브로 한 공간에는 지난해 말 별세한 시리낏 왕태후(Queen Sirikit)를 기념하는 코너도 마련되며, 왕태후가 생전에 예술과 문학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되새겼습니다.
커다란 태국 지도 위에 전시된 태국 문학 - 사진: 안우산

태국 테마관에서 지난해 말 별세한 시리낏 태국 왕태후(Queen Sirikit)를 기념하는 코너 - 사진: 안우산
하오밍이(郝明義) 타이베이국제도서전기금회 회장은 태국 테마관 개막식에서 현재 약 15만 명의 타이완인이 태국에, 또 8만 명의 태국인이 타이완에 거주하고 있다며, 양국은 이미 문화와 생활 면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태국은 영화와 음악, 광고 등 콘텐츠 산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이번 도서전을 통해 풍부한 태국 문화를 타이완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6일 열린 행사에서는 태국의 추리소설가 프랍트(Prapt)가 무대에 올라 최신작 《유포닉(YouPhonic)》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들려줬습니다. 이 작품은 타이완과 태국 출신의 남성 동성애자 커플을 주인공으로, 사랑 이야기를 중심에 두면서도 역사와 정치, 정체성의 요소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태국 출신 주인공은 책을 읽으면 저자의 속마음을 들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인물인데,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타이완에 머무는 동안, 신비로운 타이완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SF적 요소가 가미된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이야기의 바탕에는 국공내전 시기 전쟁으로 인해 타이완과 태국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서사가 깔려 있는데요. 프랍트 작가는 자신의 가족 역시 중국 남부 출신으로, 전쟁 탓에 일부는 태국으로, 일부는 타이완으로 흩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면서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도서전이라는 자리를 통해 타이완과 태국의 인연은 다시 이어지고 있고, 또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죠.
시민 코너 🚥 타이완 거리 감성
테마관 외에도 눈길을 끄는 공간들이 많았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독립서점과 개인 창작자들이 모인 ‘시민 코너’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코너는 신호등와 횡단보도, 점자블록, 빈랑가제, 트럭과 오토바이, 관광버스까지 타이완의 거리 풍경을 행사장으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특히 관광버스 안에서는 실제로 70여 개가 넘는 포럼과 행사가 진행되었고,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공간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시도였으며. 독자들은 버스 좌석에 앉아, 마치 여행을 떠난 것처럼 다양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으로 활용된 관광버스 - 사진: 안우산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공간이 바로 도로 반사경으로 꾸며진 벽인데요. 관람객들은 반사경을 향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반사경 앞의 작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MZ세대 감성이 가득한 인증샷 명소였죠. 뿐만 아니라, 카운터 역시 눈길을 끌었습니다. 로컬 분위기가 강한 ‘빈랑가게’를 재현해, 타이완 특유의 거리 감성을 살렸습니다. 참고로, 빈랑은 빈랑나무의 열매로, 껌 처럼 씹는 기호식품입니다. 다만 씹으면 입안이 붉게 물들고, 과도한 섭취는 구강암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타이완에서는 주로 기사나 공사 현장 노동자처럼 장시간 근무하는 분들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먹습니다.

활력으로 가득한 시민 코너 - 사진: 안우산
이어서 유쾌한 노래 한 곡 띄워드립니다. 타이완 랩 가수 Leo왕과 신세대 싱어송라이터 천셴징(陳嫺靜)이 함께 부른 ‘마지막 종이(最後一張紙)’,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완 거장 소설가 바이셴융의 콘텐츠 세계 ✍️
올해 도서전 현장에는 타이완 문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올해로 88세, 타이완의 거장 소설가 바이셴융(白先勇) 작가는 6일,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상과 무대 콘텐츠 제작 경험을 공유했는데요. 그는 “소설이 외로운 모노드라마라면, 영화와 연극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떠나는 모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드라마로 각색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 《서자(孽子)》를 언급하며, 부자 간 갈등과 동성애자의 처지가 사회적으로 조명되었다고 설명했는데요. 형식은 달라져도 창작의 핵심은 인간성과 감정에 있다며, 앞으로 문학이 다양한 매체와 대화하고 집단 창작의 길로 더 멀리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2026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 참석한 바이셴융(白先勇) 작가 - 사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문학과 영상의 만남 《깊은 고요》 🤫
문학과 영상의 만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는 3월 20일 개봉 예정인 선커상(沈可尚) 감독의 《깊은 고요(深度安靜)》 역시 린슈허(林秀赫)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배우자 가족의 죽음에 맞서, 깊은 슬픔과 우울 속에 빠진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며, 침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을 날카롭게 그려냈습니다.
도서전 기간 열린 대담에서 선커상 감독과 린슈허 작가는 직접 만나, 소설이 영화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선 감독은 소설에서 느낀 거대한 상실감에 이끌려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카메라에 담긴 장면보다 촬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순간에 더 집중했고, 캐릭터들을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대하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본 린 작가는 선 감독이 한국 3대 감독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의 스타일을 세 캐릭터에 나뉘 담아, 소설과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는데요. 이에 선커상은 “인생은 어쩌면 헛된 노력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생명의 가치가 가득하다”고 답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끝은 결국 죽음이지만, 삶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말이겠죠.
지난 6일 선커상(沈可尚) 감독과 린슈허(林秀赫) 작가의 대담 현장 - 사진: 안우산
2026년, 독서로 시작! 💪
이렇게 타이완 문단의 연례행사,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국가와 언어, 문화를 넘어 전 세계 창작자와 독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죠! 설 연휴를 앞두고, 책 한 권으로 새해를 시작해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賴總統書展買什麼?63本書單一覽 陳傑憲自傳、美中冷戰、GL漫畫都有」,中央社。
2. 「蕭美琴戰貓書單一覽 聚焦地緣政治、獨鍾『貓咪抵抗學』」,中央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