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2·28사건 79주년 🕊
어느덧 2026년 2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설 연휴도 지나고, 이제는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되는 시기죠.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타이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 다가오는데, 바로 1947년 일어난 민중봉기 ‘2·28사건’을 기념하는 평화기념일입니다. 이번주 토요일 2월 28일은 2·28사건 79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이 아픈 날을 맞아, 정부 차원의 공식 추모식은 물론, 사건 전후의 타이완을 다룬 영화 <천마다방(天馬茶房)>도 오는 26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살펴보면, 중화민국 정부가 막 타이완에 들어오고 여런 민족이 이 섬에 뒤섞여 살기 시작하던 때였는데요. 2·28사건은 흔히 정부를 대표하는 ‘외성인(外省人)’과 기존 타이완에 살던 ‘본성인(本省人)’ 사이의 대립으로 단순화되곤 하지만, 그 파장은 특정 집단에만 국한 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이전부터 타이완에 살던 한족과 원주민은 물론, 국민당 정부와 함께 건너온 외성인도 희생자 명단에 올라와 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228사건 최초 발생지, 톈마다방(天馬茶房)
또 2·28사건 2년 후인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연이어 패배하면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타이완에는 이른바 ‘백색테러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약 40년에 걸쳐 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독재체제 아래 목숨을 잃었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타이완 사회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타이완 원주민, 정복하거나 교화해야 할 대상❓︎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독 기록이 적은 집단이 있는데, 바로 원주민입니다. 원주민은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주민이지만, 늘 권력자에게 ‘정복하거나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며, 국가폭력을 당해도 인권침해가 아니라 단순한 치안문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요. 다시 말해, 원주민이 겪은 억압은 2·28사건이나 백색테러 시대부터 시작된 것 아니고, 17세기 이후 여러 정권이 타이완에 들어오면서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구조적인 폭력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문자 체계가 없었던 탓에, 민주화 이후에도 한족 중심 사회에서 쉽게 배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는 원주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신작 《은은한 빛(隱隱微光)》을 발표한 원주민 작가 리그라브 아우(Liglav A-wu)가 바로 이 중 한 명인데요. 이 작품은 작가가 지난 30년간 백색테러 시대 원주민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기록한 이야기로, 지워졌던 역사에 남겨진 매우 소중한 자료이자 원주민이 스스로의 이름으로 내는 목소리입니다.
2·28 평화기념일을 앞두고 오늘은 리그라브 아우 작가의 삶을 통해 타이완 원주민이 겪은 백색테러의 이야기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리그라브 아우의 《은은한 빛》 - 사진: 보커라이
외성인과 원주민의 아이 👧
리그라브 아우가 백색테러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정치범이었던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안후이(安徽) 출신으로, 젊은 시절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이었는데요. 라디오 같은 무선통신을 취미로 하다가 간첩 혐의를 받아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큰 삼베 자루에 묶인 채 끌려가 바다에 바려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났던 어민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이 끔찍한 경험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공포로 남았습니다.
가부장적인 제도 속에서 리그라브 아우는 태어날 때부터 타이완 최남단 핑둥(屏東)에 있는 외성인 마을 ‘권촌(眷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안후이 출신의 외성인이라고 생각하며 성장했죠. 그런데 원주민 파이완족(排灣族)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갈색 피부와 짙은 이목구비 때문에 차별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7살 무렵 어머니의 고향 핑둥 라이향(來義鄉)으로 이사하면서, 그의 정체성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죠. 이 과정에서 그는 사회 제도와 정치 권력이 얼마나 불공평하게 작동하는지를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신과 인간의 만남, 핑동(屏東) 라이이(來義) 파이완족 ‘Maljeveq’ 대축제
원주민에 대한 현장 조사는 바로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막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파이완족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결국 원주민 권익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런데 거리 시위와 활동만으로는 오히려 자신을 소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깊은 현장으로 들어가 인터뷰와 조사, 기록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경험 때문에 백색테러 시대 원주민이 겪은 국가폭력에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색테러 원주민 피해자 리스트 만들기 💪
관련 연구가 거의 전무했던 1990년대, 그는 원주민 타이야족(泰雅族) 출신 작가 왈리스 노칸(Walis Nokan)과 함께 원주민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찾아 인터뷰했고, 결국 피해자 45명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훨씬 보수적이던 시절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작업은 정말 대단한 시도였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3천여 개의 녹음 테이프와 원고는 1999년 발생한 9·21대지진으로 모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30년에 가까운 그의 노력은 한순간에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 20여 년이 지난 후, 기회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리그라브 아우는 2019년 국가인권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원주민 피해자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게 되었고, 동시에 박물관 주재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과거 완성하지 못했던 책, 즉 《은은한 빛》 을 마침내 해냈습니다.
이어서 원주민 자치운동의 선구자이자 백색테러 시대에 목숨을 잃은 가이성(高一生) 선생이 작곡한 노래 ‘두견산(杜鵑山)’을 함께 들어보시죠. 그의 가족이 직접 부른 버전입니다.

원주민 작가 리그라브 아우 - 사진: 국가인권박물관
나비가 될 수 없는 피해자 유가족... 🦋
타이완의 원주민 사회는 부족을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 한족 사회보다 공동체의 결속력이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백색테러 시대에 부족 구성원 한 명이 정치범으로 지목되면, 부족 내 사람은 물론 심지어 도시로 이주해 살던 가족까지 연류되는 일도 있었죠. 따라서 《은은한 빛》을 집필하던 시절 이미 많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유가족이 들려준 이야기는 당사자의 기억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30년 전 조사와는 전혀 다른 이 새로운 성과는 리그라브 아우에게도 색다른 시각을 열어줬습니다. 사건 경과를 세세히 기록하는 대신, 유가족의 어깨 위에 남겨진 슬픔과 상처,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향해 나아가려는 모습을 담아낸 겁니다. 책에서 첫 번째 등장한 인터뷰 대상은 저우족(鄒族) 피해자 탕수런(湯守仁)의 아들 탕진셴(湯進賢)인데요. 그는 어릴 때 간첩을 뜻하는 ‘비첩(匪諜)’을 나비의 한자 ‘호접(蝴蝶)’으로 오해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단어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 후, 남은 인생 동안 아버지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나비’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멈출 수 없는 이행기 정의의 발걸음 ✨
리그라브 아우의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이 겪은 백색테러 사건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는데요. 첫번 째는 1940~50년대 정권 교체기, 민족자결 의식을 가진 지식인이나 엘리트가 구체적 행동에 나섰던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을 가졌지만 행동에 옮기기 직전에 체포된 이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연행된 사람들입니다. 지금 많은 연구에서는 원주민 권익 운동의 출발점을 민주화가 이뤄진 1980년부터로 보지만,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미 수많은 원주민 선배들이 민족의 자주권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현재 타이완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원주민 백색테러 피해자는 고작 67명에 불과한데요. 이는 30년전 리그라브 아우가 정리했던 45명에서 겨우 22명이 늘어난 숫자인데요. 따라서 기록되지 않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고 할 수 있겠죠. 리그라브 아우의 아버지 역시 국가 기록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또한 인터뷰 내용과 정부 문서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록이 곧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켰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파고들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야만 역사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죠.
1950년대 원주민 엘리트들 - 사진: 국가인권박물관
리그라브 아우는 원주민 선배들의 이야기가 시간 속에 묻히지 않도록 스스로 어두운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고통과 비극을 극대화하는 대신, 그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는 거죠. 어두운 시대 속에서 내려온 은은한 빛처럼, 이 책은 원주민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역사를 전하는 기록입니다.
내일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에는 이 책에 소개된 관련 랜드마크를 계속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Liglav A-wu,《隱隱微光》。
2. 邱祖胤,「耗時30年挖掘原民白恐歷史 『隱隱微光』專書問市」,中央社。
3. 沈眠,「讓我們成為更好的人:閱讀利格拉樂.阿𡠄《隱隱微光》」,OPENBOOK閱讀誌。
4. 林欣誼,「我田野,我記錄,故我在:利格拉樂.阿𡠄的女族書寫」,OPENBOOK閱讀誌。
5. 〈原住民政治案件〉,台灣人權故事教育館。
6. 〈利格拉樂‧阿女烏(1969-)〉,臺灣女人。
7. 謝孟穎,「被遺忘的原住民白色恐怖之痛:語言土地都被剝奪,遭當局羅織罪名一生難忘在警局最黑暗8天」,風傳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