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역사 도서의 역주행 🔝
지난 한 달 반 동안 타이완에서는 한 미개봉 영화 때문에 역사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펼쳐졌습니다. 덕분에 타이완 최대 온라인 서점 보커라이(博客來)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는데요. 평소 투자, 자기계발, 외국어 학습서가 단골로 자리 잡던 상위권에 역사 도서들이 단숨에 진입한 겁니다.
왜 그럴까요? 시간을 조금 되돌려 한 달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영화 <세기의 참극(世紀血案)> 제작진이 2월 1일 촬영 완료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 작품은 1980년 2월 28일 발생한 일가족 학살 사건(林宅血案)을 배경으로 하고, 기자가 미결 사건으로 남은 참극을 재조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 이후 제작진이 살아 있는 유가족의 허락 없이 영화 제작을 진행했다는 소식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학살 사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물론, 타이완인의 역사 인식 부족 문제도 화두로 떠올랐죠.
이 가운데, 역사학자 저우완야오(周婉窈) 교수의 《소년 타이완사(少年台灣史)》와 《타이완 역사 도설 (臺灣歷史圖說》, 《이행기 정의의 길(轉型正義之路)》 , 타이완 독립운동 대부 스밍(史明)의 《타이완인 400년사(台灣人四百年史)》, 그리고 5명의 작각들이 공동 작성한 백색테러 기록 《전달되지 못한 유서(無法送達的遺書)》 등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이지면, <세기의 참극>처럼 황당한 일도 사라지겠죠.

지난 2월 12일 보커라이 실시간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톱5가 모두 타이완 역사 도서 - 사진: Threads@history.cwy
문학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왔는데요. 최근 첫 시집을 발표한 원뤄차오(温若喬)의 《빛이 꽃처럼 반짝일 때(日花閃爍)》가 톱5에 올랐습니다. 타이완어로 쓴 시집이 이렇게 주목받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요. 저자 원뤄차오는 인스타그램에서 15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타이완어 교육자이자 심리사입니다. 조부모가 쓰던 모국어인 타이완어를 알리기 위해, 2019년부터 SNS에서 타이완어 단어를 공유해 왔는데요. 이번 시집에는 100개의 타이완어 단어를 바탕으로, 인생에서 느끼는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지난 2월 21일 국제 모국어의 날을 맞아, 원뤄차오는 총통부의 초청을 받아 라이칭더 총통과 이 작품을 함께 읽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타이완어로 창작을 이어가는 원뤄차오 시인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모국어가 왜 사라지고 있을까❓
1999년생인 원뤄차오는 또래 친구들의 성장 이야기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접하고, 초등학교에선 일본 애니메이션 속 ‘아이우에오’가 궁금하고, 중학교 때는 케이팝으로 ‘정말’, ‘사랑해’ 같은 간단한 한국어를 입에 붙이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늘 우리한테 외국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시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그분들은 외국인을 대하듯 서툰 중국어로 우리와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나는 타이완어를 배우고, 할머니·할아버지의 언어 속에 담긴 소박하면서도 깊은 힘을 알고 싶다. 동시에 타이완어를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이 오래된 언어에 새로운 질감과 생명력을 주고 싶다.”
중국어가 타이완의 공식 언어로 확립되기 전, 대부분 타이완사람의 모국어는 타이완어, 하카어, 원주민어였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한 ‘국어운동(國語運動)’으로 모국어는 크게 탄압받고, 심지어 저속하다는 낙인까지 찍혔습니다. 이 때문에 어르신들도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쓰게 되었고, 원뤄차오가 말한 ‘외국인 취급’ 같은 상황도 생기게 되었죠. 이렇게 언어가 계급화되면서 세대 간 격차와 언어 학습의 단층도 나타났습니다.
네티즌들의 타이완어 선생 ✨
어렸을 때 원뤄차오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타이완어 드라마를 보고 그들의 대화도 많이 들었지만, 늘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 없다”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타이완 교육부가 출판한 타이완어 사전을 접하고, 타이완어를 구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것도 좋지만, 언어를 잘 배우려면 생활 속에서 직접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이죠. 그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타이완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엔 불편했지만 말할수록 점점 편해지고 중국어와 다른 타이완어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렘은 결국 정식 공부와 연구, 그리고 타이완어에 담긴 가족 감정, 나아가 타이완 사회 전체의 기억을 잘 보존해야겠다는 확신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확신을 바탕으로 그는 대학 2학년 때 인스타 계장 ‘타이완어 배우기(學台語 O̍h Tâi-gí)’를 시작했습니다. 포스팅마다 타이완어 단어 하나를 골라 예문을 보여주고, 영어·일본어·한국어 번역도 함께 제공하며,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타이완어보다 강세였던 언어들의 역할을 뒤집었죠. 또한 낭랑한 목소리로 예문을 직접 낭송해 타이완어만의 리듬을 보여주는데, 이번 시집에도 그의 음성 파일도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은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타이완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타이완어와 한국어 유사성의 포스팅 - 사진: Instagram@ohtaigi
이어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타이완어 노래, 왕훼이주(王彙筑)의 ‘배추죽(高麗菜粥)’를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완어 배우기, 새 트렌드로 부상 📈
원뤄차오의 노력 덕분에 이제 타이완어를 배우는 것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뤄차오에 따르면, 그의 팔로워 중에는 해외 교포 2세, 3세가 많은데요. 이들은 중국어보다 타이완어가 더 유창한 경우가 많아 그의 콘텐츠를 특히 좋아한다고 합니다. 또한 요즘 타이완에서 가장 핫한 SNS ‘스레드’에서는 녹음 기능이 잘 되어 있어, 많은 네티즌들은 자신이 타이완어 문구를 낭독한 녹음을 댓글로 올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활발한 교류를 통해 타이완어는 과거 중국어에 종속되어 차등적으로 여겨지던 언어에서 독립적이고 심지어 ‘힙한’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타이완 문단에는 다양한 모국어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상상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대학생이었던 원뤄차오에게는 타이완어의 문학 창작도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당시 교환학생으로 벨기에에 갔을 때, 그는 현지에서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문학 작품들을 발견하고, 세계 명작을 타이완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마음에 두었는데요. 귀국 후 타이완어 창작으로 유명한 정순충(鄭順聰) 작가에게 연락해,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집 《길 잃은 새들(Stray Birds)》을 번역했습니다. 최초의 아시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의 작품을 통해, 타이완어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이죠.
대부분 타이완인의 눈에 타이완어는 일상적이고 로컬한 언어지만, 실은 우아한 표현들도 많고, 단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졌을 뿐입니다. 원뤄차오는 국어정책 이전 쓰이던 타이완어를 찾기 위해 일본 식민지 시대의 타이완어 사전을 많이 참고한다고 하는데요. 그의 시집 제목 중 ‘日花(ji̍t-hue)’라는 표현이 바로 1931년의 사전에 수록된 단어로, 햇빛이 구름이나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흩어진 꽃잎처럼 보이는 빛의 무늬를 뜻합니다. 중국어에는 직접 대응할 단어가 없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타이완어를 다시 세상에 알리는 것이 바로 그의 목표입니다.
원뤄차오(温若喬)의 타이완어 시집 《빛이 꽃처럼 반짝일 때(日花閃爍)》- 사진: 시보출판 via CNA
역사와 세월의 결정체 💎
한 언어에는 한 사회, 한 나라, 한 민족의 역사와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타이완은 여러 식민정권과 40년간 엄격한 국어정책을 거치고, 타이완어를 비롯한 모국어가 오랫동안 사회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모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한 젊은 세대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2·28 평화기념일이 막 지나고 새해가 시작된 지금, 우리도 타이완어를 포함한 모국어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温若喬,《日花閃爍:台語的美麗詞彙&一百首詩》。
2. 時報出版,「在台語的流光碎影中《日花閃爍》──温若喬用台語詩,接住土地最溫柔的細語」,OKAPI。
3. 陳思安,「親像過宮星——溫柔的台語流轉:温若喬與『學台語 @ohtaigi』」,b.l!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