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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야구의 시작… ‘능고단’과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

라이칭더 총통과 샤오메이친 부총통이 동시에 추천한 야구 소설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蕉葉與樹的約定)》 - 사진: 청핀서점
라이칭더 총통과 샤오메이친 부총통이 동시에 추천한 야구 소설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蕉葉與樹的約定)》 - 사진: 청핀서점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포르모사 문학관>의 문을 엽니다.


야구가 타이완 국구가 될 수 있는 이유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내일(18일) 결승전을 앞두고, 누가 챔피언이 될지 전 세계의 야구 팬들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비록 타이완은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지난 8일 한국과의 경기는 정말 레전드였죠. 연장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타이완은 5대 4로 승리했습니다. 한국의 마지막 타자 김도영 선수가 친 뜬공이 타이완 외야수 숭청루이(宋晟睿)의 글러브에 들어가는 순간, 도쿄돔에 있던 타이완 관객들은 물론, TV와 핸드폰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타이완사람 모두가 동시에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역시 팀 타이완!”

야구 팬으로 유명한 라이칭더(賴清德) 총통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SNS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부터 국가 지도자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 바로 야구가 타이완의 ‘국구(國球)’가 될 수 있는 이유죠.

타이완사람의 야구 사랑은 또 다른 공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해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공개된 라이 총통과 샤오메이친(蕭美琴) 부총통의 추천 도서 리스트를 보면, 유일하게 겹친 작품은 원주민 작가 나카오 에키 파치달(Nakao Eki Pacidal)의 야구 소설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蕉葉與樹的約定)》입니다.

타이완의 야구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도입되며 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일본인 중심의 스포츠였지만, 총독부의 장려 정책으로 점차 타이완 전역으로 확산되었죠. 이 과정에서 타이완 최초의 토박이 야구팀도 탄생했습니다. 바로 화롄(花蓮) 원주민 아메이족(阿美族) 청년들로 구성된 ‘능고단(能高團, NOKO)’인데요. ‘능고’라는 이름은 해발고도 3,262m의 능고산에서 따온 건데요. 일본 식민지 시대 옥산(玉山 위산)과 설산(雪山 쉐산), 그리고 능고산을 함께 묶어 ‘타이완 삼고(三高)’라고 부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총통과 부총통이 동시에 추천한 이 소설은 바로 능고단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타이완 최초의 본토 야구단이자 원주민 야구단 '능고단' - 사진: 위키백과

야구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오늘은 이 소설을 함께 펼쳐보겠습니다!


타이완 야구의 주축, 원주민 👍

원주민은 타이완 인구의 3%도 채 되지 않지만, 타이완 프로야구 선수 중 약 40%가 원주민입니다. 이번 WBC 타이완 대표팀 명단을 보면, 30명 중 17명이 원주민인데요. 이중에서도 아메이족 선수는 무려 12명에 달합니다. 물론 아메이족이 타이완 원주민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이라는 점도 이유가 되지만,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사회적 구조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일본 정부는 야구를 원주민 동화 정책의 한 수단으로 삼아 적극 보급했습니다. 특히 평원에 살면서 한족과의 교류가 비교적 많았던 아메이족에게 ‘모범 원주민’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해 다른 원주민 사회와의 다리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아메이족이 이른 시기부터 야구 문화를 접하게 되었죠. 여기에 사냥과 달리기, 투척 등 원주민 전통문화가 운동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어 원주민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야구가 원주민에게 중요한 진학 통로가 되면서 많은 원주민은 타이완 야구를 이끄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026 WBC 타이완 대표팀의 원주민 선수들 - 사진: 원주민족사업기금회 페이스북


능고단의 탄생과 활약 🌟

그렇다면 능고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1920년대 야구 문화가 수도권에서 타이완 동부로 확산되면서 화롄 지역에서도 여러 야구팀이 생겨났는데요. 이 중 한 야구팀의 타이완 선수는 우연히 아메이족 청년들이 나무 몽둥이로 돌을 치며 노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타이완 최초의 원주민 야구단 ‘다카사고(高砂) 야구단’이 창단되었습니다. 동시에 일본 화롄청은 현지 건설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가들과 손잡아 이 야구단을 적극 지원했고, 1923년 능고산의 이름을 따서 ‘능고단’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결성된 능고단은 타이완 여러 학교 야구팀을 연이어 꺾었을 뿐만 아니라,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야구팀들과 경기를 펼치며 일본 야구계에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결국 능고단에서 네 명의 선수가 교토 헤이안고등학교에 스카우트되었고, 이 중 한 명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첫 타이완 선수가 되었습니다.

능고단의 활약은 타이완 동부 야구의 열기를 한층 끌어올리는 한편, 1931년 일본 고시엔(甲子園)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타이완 팀 ‘카노(KANO)’가 원주민 선수를 적극 기용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카노가 영화의 흥행을 통해 타이완사람의 공동 기억 속으로 스며드는 반면에, 능고단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잊혀졌습니다. 실제로 영화 <카노>의 홍보 문구에는 ‘타이완 최초의 본토 야구팀’이라는 멘트가 있었는데, 사실 이보다 앞선 팀이 바로 능고단이었죠. 이러한 역사적 공백과 오해는 아메이족 출신 나카오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1년 일본 고시엔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타이완 야구팀 ‘카노(KANO)’ - 사진: 위키백과

▲관련 프로그램:
선거 결과 좌우하는 자이(嘉義) 중앙분수대 & 분수대 한가운데 서 있는 야구 전설 ‘카노(KANO)’

소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2024 프리미어12를 배경으로 한 타이완 다큐멘터리 <챔피언을 향한 길(冠軍之路)>의 OST ‘오늘의 나(今天的我)’를 함께 들어보시죠!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 🍌

소설 제목에 등장하는 ‘바나나잎’과 ‘나무’는 바로 일본 학교에 선발된 두 명의 능고단 선수입니다. 원래 화롄 바닷가에서 노동을 하다가 튼튼한 체력으로 능고단에 합류했고, 곧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위해 두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아메이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 제도인 ‘연령계급’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아메이족 문화에서 연령계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공동체에서 추방된 것과 다름없는데요. 취락 밖에서 생을 마치게 되면, 아무도 그의 영혼을 집으로 데려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고향으로 데려다 주기로 말이죠.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 - 사진: 미러문학

결국 ‘나무’는 일본 유학 생활 중 폐렴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은 ‘바나나잎’은 졸업 후 일본 명문대 호세이 대학에 진학해 변호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타이완 원주민이라는 출신이 가진 사회적 불리함을 바꾸고자 했지만, 사랑하던 일본 여성의 부모에게 모욕을을 당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자살하는 등 연이은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의 현실을 절감하고 군 입대를 선택했습니다.

입대하기 전, 바나나잎은 나무의 유골을 지인에게 맡겼으며, 교토의 한 사찰에서 돌 하나를 골라 그 위에 아메이족 언어로 이렇게 새겼습니다. “나무야, 무사히 집에 가.” 그는 나무의 영혼이 그 돌에 머물러 있다고 믿고 일본군 신분으로 전쟁터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패배로 끝났고, 바나나잎이 타고 있던 군함 역시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죠.

그로부터 80년이 흘렀습니다. 나무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같은 교토 헤이안고에서 야구를 하는 아메이족 소년이 우연히 그 돌을 발견했는데요. 소년은 위에 새겨진 아메이족어 문장을 읽었고, 목소리가 멈추는 순간 돌 속에서 나무의 영혼이 나타났습니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무는 아메이족어와 일본어로 소년과 대화하며,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걷었던 길을 다시 걸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과거 바나나잎이 끝내 이루지 못한 약속을 이제 이 소년에게 맡기는 거죠. 소설은 플래시백 기법으로 전개되어 있어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타이완이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저자는 온라인 서점 보커라이(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민주의는 단순한 정치나 제도, 법률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상태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능고단의 탄생은 일본 식민 통치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바나나잎과 나무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동시에 환멸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도 스포츠가 지닌 순수한 힘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의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능고단이 등장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야구는 여전히 타이완사람들의 힘을 응집하고 우리만의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죠.  《바나나잎과 나무의 약속》은 역사의 비극 속에서 원주민의 아픔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동시에,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타이완이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이제 WBC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타이완도 한국도 계속 힘을 모아 다음 대회에서 다시 멋진 경기를 펼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Nakao Eki Pacidal,《蕉葉與樹的約定》。
2. 2026 WBC名單原住民,財團法人原住民族文化事業基金會。
3. 張哲民,「能高棒球隊──第一支打進甲子園的臺灣原住民球隊」,原住民族文獻。
4. 「比 KANO 還早!第一支橫掃日本的臺灣原住民棒球隊『能高團』」,尋「臺」啟事。
5. 許恩恩,「承諾還在,球仍滯空──讀《蕉葉與樹的約定》」,報導者。
6. 陳子軒,「棒球與『光復』回家之路──能高團的歷史足印、高國輝的麒麟臂和《蕉葉與樹的約定》」,報導者。
7. 盛浩偉,「離開是為了找到回家的路——讀《蕉葉與樹的約定》」,Openbook閱讀誌。
8. 朱宥任,「以歷史出發,但不只是『歷史小說』──專訪《蕉葉與樹的約定》作者Nakao Eki Pacidal」,博客來Ok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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