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안진경 <제질문고> 1/2
-2026.02.14.-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
중국 당나라(618-907년) 시대는 정치적으로 성세였고 문화 방면에서도 찬란한 유산을 남겨준 왕조였다. 황제와 황족은 물론, 당시 과거시험이 제도화 되어 모든 관원들도 문학적 재능이나 서예와 회화 등 각 방면에서도 뛰어났었다. 당대의 문학가 중에서 지금까지도 우리가 영향을 받는 인물들이 아주 많다. 예컨대 성당시기의 시선(詩仙) 이백(태백), 시성(詩聖) 두보(자미), 시불(詩佛) 왕유(마힐), 백거의(낙천), 이상은(의산), 두목(목지) 그리고 당송8대가로 꼽히는 한유, 류종원 등등 이름만 말해도 누구든 아는 문학가들이 많다. 이 외에도 서예가 그러면 초당4걸로 불리는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설직, 성당시대 이후엔 안진경, 류공권이 있고, 장욱과 회소는 초서의 대표적 인물이며, 전서의 명가로는 이양빙 등이 있다. 이들 역시 누구든 들어본 이름이며 지금까지도 서예 공부를 하는 데 우리가 배우는 대상이기도 하다.
당나라 시대에 그 많은 문학 예술가들이 있으나 그들의 친필 작품은 오늘날 찾기 어렵다. 다행히 역대 모든 미술평론가들이 안진경의 육필이며 가장 그의 품성과 당시의 심정 그리고 처해 있는 환경을 나타내는 작품이 남아있다. 그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절대로 안진경의 친필이라고 보증하는 작품 ‘제질문고’, 즉 조카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초고를 쓴 작품이다. 초고라서 쓰는 순간 순간의 정서가 글에 완전히 전이되어 보는이들도 안진경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원이 베이징의 황궁 자금성에서 개원한 지 만으로 100년이 되었고, 타이완으로 건너온 지 75년, 타이베이에서 국립고궁박물원(이하 약칭 ‘고궁’)을 재개원한 지 한 갑자가 되었으며, 타이완의 문화적 형평성을 이루고 ‘아시아의 창’으로 거듭난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이하 약칭 ‘고궁 남원’) 개원 10주년을 작년(2025)에 맞았다. 고궁은 2024년부터 올해(2026년)에 이르는 3년에 걸쳐 ‘고궁 100+’, 고궁의 100주년을 축하하고, 다음 단계의 100년의 시작을 알리는 일련의 특별기획전을 펼쳐왔는데, 모든 테마의 특전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고, 이중 고궁 남원에서 진행 중인 ‘갑자만년’ 특전의 마지막 ‘국보 제한 작품’이 지난 1월14일부터 오는 3월1일까지 전시하는데 그게 바로 당나라 안진경의 ‘제질문고(조카를 위한 추도문)’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타이베이 고궁에서 겨우 3번밖에 전시하지 않은 ‘제질문고’를 직접 보기 위하여 설연휴 며칠 전 고궁 남원에 갔다. 이 생에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도 들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목도해야 한다는 걸 올해의 희망사항으로 삼았다.
종이의 수명은 1천년, 비단의 수명은 500년 내지 800년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고대 유물 가운데 남아 있는 서예와 그림 작품은 보통 500년 전까지는 잘 보전된 것이 있으나 작품 재질의 취약성 때문에 1천 년 이상 존재하는 건 극히 드물다.
국보이며 전시 기간에 제한을 둔 작품 ‘제질문고’, 고궁은 그동안 어떻게 종이나 비단으로 만들어진 유물들을 보전하고 보존해왔을까?
이번 고궁 남원 ‘갑자만년’ 큐레이터 천졘즈(陳建志) 연구원은 인터뷰에서 ‘유물이 (각종 요인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또 타이완으로 옮겨와 타이중 베이거우에서 15년 머물다가 타이베이에서 고궁이 재개원되며 이미 6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당시 유물을 보호하고 연구했던 선배들의 사명감과 애쓴 걸 충분히 감지할 수 있고 자신도 이러한 우수 전통을 수호해야 함을 안다면서, 서예와 문헌 관련 전시를 위해 사전에 유물의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전시가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복구의 필요성과 작품에 관련 유물을 더하여 전시해야 할 필요성 등에 대해서 관계자들이 함께 결정을 하게 되며, 모든 유물 가운데 아무래도 70점의 제한전시 품목은 더욱이 조심 또 조심하여 보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제한 전시 작품은 한 번에 42일 동안 전시실 진열장 너머로 관람할 수 있고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전시실 환경은 조명과 온도, 습도 모두 엄격하게 통제 관리하는데 기본적으로 조도 50럭스(Lux) 이하, 온도 섭씨 19-23도, 습도 50-60%이며, 전시 후에는 최소 36개월 수장고에 들어가게 되는데 일반 서화 작품이 18개월 쉬는 것보다 ‘칩거’하는 시기는 배가 많다. 이렇게 보면 매번 3년을 쉰다고 해도 60년 동안 3번밖에 전시를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안진경의 ‘제질문고’에 대해 절대 손상이 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는 원칙을 알 수 있다.
안진경(709-785년)의 해서(楷書)는 보통 ‘안체(顔體, 즉 안진경의 서체)’라 부르며,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서예 공부를 할 때 그의 ‘다보탑비’와 ‘마고선단기’ 등을 임서했을 정도로 서예 공부의 스승님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 ‘제질문고’는 우리에게 익숙한 ‘안진경의 해서’가 아닌, 해서와 행서 그리고 초서가 섞여 있는 종합적인 서체이다. 원나라 서예가 선우추(1246-1302년)는 ‘제질문고’를 천하 제2의 행서라는 평가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일부 서예가와 평론가, 그리고 필자는 제질문고는 천하 최고의 행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추후 관련 작품이나 배경을 주제로 할 때 따로 설명을 드리겠다.
자타가 공인하는 안진경의 유일한 육필 작품 ‘제질문고’는 758년도에 쓰여졌다. 지금으로부터 1,249년 전에 완성한 것이다. 종이의 수명 천 년을 훌쩍 넘겼지만 누가 중원을 손에 넣든, 한족, 몽골족, 만주족을 막론하고 1천 여년 동안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여전히 잘 보전되어 온 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붓의 움직임을 마음 가는 대로 운용하고 있는지 눈에 띈다. 비록 가슴 아프고 분개하며 슬픈 순간이지만 서예의 구조와 장법, 먹의 운치를 나타내는 표현과 조직력 등, 그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몹시 괴롭고 슬픈 상황 아래서 조카를 잃고, 형님을 떠나 보내고, 안사의 난(안록산, 사사명의 반란) 때 역적들의 잔인함과 주변 도성을 지키는 관원이 알면서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는 분노가 먹물을 머금거나 먹물이 마르며 붓이 내려앉아 형성된 한 획 한 획의 선이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제질문고는 조카를 추모하는 제문이다. 작품 속 짙거나 옅은 먹 색, 글이 움지기는 시작과 멈춤, 운필의 속도가 보이고, 초고를 쓰다가 삭제한 것과 덧칠을 한 것에서도 그의 감정 기복과 심정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제문은 엄숙하고 장중하다. 그러나 글 속에 그의 진실된 감정이 담겨져 있어서 보는이들이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白兆美
취재/사진/원고: 백조미
(안진경의 758년도 작품 ‘제질문고’ 취재 인터뷰와 문장 내용은 한글로 번역하여 다음주 2월21일 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 프로그램에서 전해드립니다.)